뇌허혈증 충격을 회복시킨 전화 한 통
[유영현의 의학 논문 속 사람 이야기]
논문 10: Lee TJ, Kim EJ, Kim S, Jung EM, Par JW, Jeong SH, Park SE, Yoo YH, Kwon TK. Caspase-dependent and caspase-independent apoptosis induced by evodiamine in human leukemic U937 cells. Mol Cancer Ther 2006;5:2398-2407.
■사람: 권택규 계명대 의대 교수(미생물학교실)
■학문적 의의: Evodiamine에 의한 케스파제 의존성 및 비의존성 세포사
권택규 교수는 2004년 ‘보문학술대회’에서 처음 만났다. 연구책임자급 이상의 생화학분자생물학회 정회원들이 모여 생명과학 분야 연구 관심사를 심도 있게 파악하고 토의하는 학술대회다.
이날은 해부학 전공자로 이 학회에 초청되어 내 연구를 소개한 영예로운 날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연구와 관련된 이야기를 밤늦게까지 나누며 연구 동역자가 되었다.
몇 살 아래인 권 교수는 그날 이후 나를 형님이라 부른다. 세포사 연구라는 공통분모가 있어 수도 없이 전화하면서 연구와 관련하여 겪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다.
국내 심포지엄과 인도 트리반드룸에서 개최된 국제심포지엄에서는 함께 연자로 무대에 서기도 하였다.
권 교수와 인도 학회를 다녀오고 얼마 되지 않아, 2006년 초 나는 일과성 뇌 허혈로 연구실에서 쓰러졌다. 45분간 바닥을 뒹굴다 응급실로 옮겨져 "중뇌 동맥이 막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상황에 기가 죽었다.
소식을 들은 권 교수는 몇 번이나 전화하며 내 건강을 걱정하여 주었다. 한동안 나는 매사에 자신감을 잃었다. 출근 후 즉시 컴퓨터를 켜지 않고 전화를 줄이며 당분간 일에서 멀어져 지냈다.
이처럼 위축되어 있던 어느 날, 권 교수가 다시 전화하여 진행 중인 연구에 대하여 내게 의견을 구하였다. 될 수 있는 대로 전화 통화를 줄이려는 내 마음 때문에 나는 건성으로 답하였다.
권 교수는 내 반응에도 개의치 않고 이후에도 몇 번 더 전화를 걸어 평소 때와 다름없는 밝은 목소리로 집요하게 질문하고 내 의견을 구하였다.
연구 중단 위기에서 날 구해준, 진정한 동역자 권택규 교수
연구를 거의 중단하고 헤매던 나는 권 교수 덕에 이 연구에 스멀스멀 참여하게 되었다. 뒤돌아보면 권 교수는 이 연구에 나를 참여시켜 침체에 빠져있던 내게 연구로 복귀하는 중요한 전기를 제공하였다.
마침내 연구를 마치고 논문을 작성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권 교수는 내게 공동교신저자를 제안하였다. 연구 자료 산출에 실제 역할이 크지 않아 나는 권 교수 제안을 사양하여야 마땅하였다. 하지만 연구를 거의 중단하고 있던 내 형편을 생각하고는 공동교신 제안을 뿌리치지 못하였다.
대신 논문 작성에는 제대로 역할을 하였다. 오랜만에 컴퓨터 앞에서 집중하였다.
이렇게 간행된 이 논문은 연구 업적이 텅 빌 수도 있었던 2006년 한 해를 채워 준 고마운 논문이다. 이 논문은 2009년 SRC 유치 경쟁 시, 내 대표 논문의 하나로 크게 이바지하였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이듯 어려울 때 동력자가 진짜 동력자다. 이 논문 이후 나는 점차 몸도 회복하고 마음도 회복해 연구로 복귀하였다.
지금도 내 귀에는 내 관심을 연구로 돌려준 당시 권 교수의 전화 속 목소리가 생생하게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