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문턱 닳는 한국인… “과다 의료이용, 공급망 망칠 것”

국회토론회서 의료 시스템 개선 문제 토론회서 "더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환자들의 과다 의료이용이 결국 의료생태계를 붕괴시킬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18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에선 ‘제1회 지속가능한 의료 생태계를 위한 연속 토론회’가 개최됐다. 이번 토론회는 의료서비스 이용자(환자)를 중심으로 국내 의료체계 혼란을 초래하는 여러 문제점과 대안이 논의됐다. 

토론회에서는 20년 이상 국내 국내 의료·보건정책이 환자들의 과다의료 이용을 부추겼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많이 진료할 수록 돈이 벌리게 만들어 놓은 행위별 수가체계로 박리다매식 진료행태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 여기에 이른바 ‘명의(名醫)’로 불리는 유명 의사를 선호하는 분위기까지 합쳐지면서 대형병원으로 환자 쏠림 현상마저 의료 공급망 붕괴를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OECD 보건통계(Health Statistics) 2022’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외래 진료 횟수는 연간 14.7회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았다

환자의 과다의료 이용은 발표자로 나선 차의과대 예방의학교실 지영건 교수와 순천향대 부천병원 영상의학과 이은혜 교수를 비롯해 토론에 나선 패널 전체가 공통적으로 지적한 문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급여기준실장을 역임했던 지영건 교수는 “그간 건강보험제도가 국민이 저렴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성 강화에 초점을 맞춘 반면, 의료적정성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면서 “여기에 수가제도와 ‘명의를 찾아가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하면서 과다 의료이용을 부추겼다”고 분석했다.

이어 지 교수는 “이 결과 동네 의원과 대학병원 모두 규모를 키우고 유명한 의사를 모셔 오는 경쟁이 과열하고 ‘고비용의 치료 구조’가 형성했다”면서 “환자들은 고비용의 치료비를 보장받기 위해 실손보험 가입도 늘면서 악순환을 낳고 있다”고 덧붙였다.

«공공의료라는 파랑새», «건강보험이 아프다» 등을 저술한 이은혜 교수는 이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의료·보건정책이 ‘의료보장의 기본적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서 더욱 문제가 심화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 교수는 지금이라도 관련 정책이 △포괄적 제공 △최소 수준 보장의 원칙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교수는 “건강보험 제도가 의학적 필요가 입증된 치료법에 대해 급여를 보장하는 범위를 넓혀야 한다(포괄적 제공)”면서 “대신, 의학적으로 필요가 없음에도 환자의 요구에 따라 비급여로 치료를 보장하는 일은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현재의 저수가 상황도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저수가 책정으로 병원이 의료서비스에 대한 원가 보전조차 어려워지면서 1~3차 의료기관 전체를 비급여 진료로 손실을 충당하도록 경쟁 상황을 조장했다는 분석이다.

이은혜 교수는 “지금은 상급 종합병원에 경증 환자가 지나치게 자유롭게 내원하고 있는데, 이는 중증 환자를 사망으로 몰아갈 수도 있는 일”이라면서 “의료보장과 진료 선택의 자유 모두를 동시에 달성할 순 없기에, 환자의 의료 이용량을 일부라도 제한하지 않으면 한국의 의료시스템 전체가 실패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18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된 ‘제1회 지속가능한 의료 생태계를 위한 연속 토론회’ 모습. 발표자가 순천향대 부천병원 이은혜 교수. 사진=최지현 기자

이날 토론자로 나선 경희대 의료경영학과 김양균 교수는 “의료전달체계 개편과 지역사회 복지서비스를 결합해 적정한 수준의 의료이용을 유도해야 한다”면서 “과다 의료이용뿐 아니라 지역·경제적 문제로 의료서비스를 과소 이용하는 이들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역별 불균형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수가제 인상과 함께 의료기관이 재투자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저금리 대출을 보증하고 건강보험제도 내에 다양한 범위와 종류의 의료 프로그램을 구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에서도 과다 의료이용 문제를 공감하면서, ‘제2차 국민건강보험 5개년 종합계획’이 이러한 고민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고 전했다.

손 과장은 “이러한 문제는 20년 이상 누적한 데다 의료전달체계 전체와 연결될 수밖에 없어 복지부 역시 5년 이상 시간을 두고 근본적인 정책 구조를 개선하는 데 고민하고 있다”면서 “일단은 건강보험제도 차원에서라도 의료기관 종별 역할 재정립, 필수의료 관련 정책 등 실현 가능성이 높은 문제들을 단기 대책으로 제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행사는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실과 ‘건미포럼'(건강한 미래와 지속가능한 의료환경을 위한 정책 포럼)이 주최하고 한반도 선진화 재단과 건강복지정책연구원이 후원했다. 건미포럼과 건강복지정책연구원은 이후 이어지는 토론회에선 의료생태계를 구성하는 또 다른 주체인 의료서비스 공급자(병원과 의료진)와 구매자(사회보험 제도하에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건강보험 제공자)의 측면에서도 해당 문제를 추가 논의할 예정이다.

    최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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