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진 자의 마음으로 후배와 새 길 개척

[유영현의 논문 속 사람 이야기]

논문 6: S Yoon, HJ Yoo, NR Shim, SY Baek, BS Kim, JB Kim, EJ Jun, YK Son, SY Lee, YH Yoo. Immunohistochemical characterization of macrophage and dendritic cell subpopulations of the spleen, thymus, tongue and heart in cyclophosphamide-induced immunosuppressed rat. Anat Histol Embryol 2003;32:80-88.

■ 윤식 부산대 의대 교수(해부학교실)

■ 학문적 의의: 면역억제제 투여 후 면역 조직에서 DC와 포식 세포 아형

모교 부산대를 떠나 신설 동아대 의대로 부임하게 되었다. 고 김진정 교수님은 제자의 교원 임용을 기뻐하시면서도 내가 떠난다고 너무 섭섭해하셨다. 애제자가 떠난다고 시름에 빠진 교수님에게 선물을 드리고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의학과 4학년생 윤식을 만났다.

윤식은 기초의학 전공을 고민하고 있었지만, 그의 잠정 선택지는 해부학은 아니었다. 나는 소위 하이재킹에 나선 셈이다. 나는 해부학의 가능성과 좋은 점을 설명하였다. 내가 겪었던 어려움은 최대한 드러내지 않았다.

최종 관문에서 난감한 말을 들었다. 윤식은 육안 해부학은 피하고 싶고 면역학을 연구하고 싶다고 말하였다. 해부학을 전공하면서 육안 해부학을 등한시할 수 없다. 게다가 당시 해부학교실에서는 면역학을 연구하지 않았다.

나는 윤식에게 해부학 전공은 옳지 않다고 말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현실과 다른 얘기를 하여 호도하였다. 그의 답을 받았고 나는 교수님에게 가서 내 대를 이을 후배를 찾았노라고 말씀드렸다. 졸업 후 윤식은 해부학교실에 남았다. 하지만 이웃 대학에서 지켜보던 나는 윤 선생에게 늘 미안하였다.

윤식 교수(왼쪽에서 네번째). [사진=유영현 제공]
당시 대부분 기초의학교실은 축적된 학문적 역량도 없었고, 후학들을 제대로 양성할 인프라를 갖추지 못하였다. 내가 겪은 많은 갈등을 윤식 선생도 겪고 있음이 분명하였다.

때로는 우울한 이야기도 들려왔고, 한두 번 직접 개입하여 달래기도 하였다. 게다가 윤식 선생이 부산대 의대 해부학교실에서 학위 과정을 밟는 기간은 부산대 해부학교실의 업무가 폭주하였다. 윤식 선생이 과도한 업무로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나는 윤식 선생에 대하여 빚을 졌다는 생각을 늘 하면서 지냈다.

다행히 빚을 갚을 기회가 왔다

윤식 선생의 제대 시기에 다가왔다. 우리 학교에 해부학 전임교원 신규 TO를 만들기 위하여 나는 선거에 뛰어들어 줄을 섰다. 마침내 신규 TO를 얻어 내었다. 윤식 선생은 제대 후 바로 동아대 해부학교실 전임강사로 교원 경력을 시작하게 되었다.

본 연구 논문은 윤 교수가 동아대에 재직하는 동안 실험하여 얻어 낸 자료로 작성되었다. 내가 빚졌다는 마음을 가졌던 덕에 이 논문이 탄생하였다.

윤 교수는 이후 모교로 복귀하였고 이후 해부학회 총무와 회장을 역임한 중견 해부학자가 되었다.

몇 년 전 윤식 교수는 학회 총무이사로 해외학회 관련 학회 내 갈등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그때 내게 다시 빚진 마음이 발동하였다. 나는 회장으로 갈등을 무마하는 역할을 하여 그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빚진 마음은 빚을 갚을 수 없을 때 가지는 마음이다. 나는 아직 윤 교수께 빚을 모두 갚지 못하였다고 생각하는가 보다.

빚진 자의 마음을 빛나는 마음이라고 묘사한 시가 생각난다. 윤식 교수에게 빚진 마음을 가져 내 마음이 빛났다면, 윤 교수의 해부학 선택은 내게 오히려 축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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