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3300만 원 알츠하이머 신약… 돈 없어도 투약할 수 있어야”

2025년 레켐비 도입 앞두고 제도·정책 정비 필요

신약 개발로 치매 치료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이 전환하는 가운데 신약 도입에 대비한 의료체계와 정책, 제도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신약 개발로 치매 치료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이 전환하는 가운데 신약 도입에 대비한 의료체계와 정책, 제도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치매안심센터 등에서 치매 진단과 치료를 중심으로 노인 질환 전반을 관리하는 ‘통합 돌봄’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를 통해 향후 신약을 활용하는 환자들뿐 아니라 고가의 약제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환자들 사이의 경제·사회적 형평성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회)과 대한치매학회는 29일 국회에서 ‘초기 알츠하이머병 조기 발견과 의료적 치료 접근성 향상방안 모색을 위한 국회 정책 토론회’를 진행했다.

지난 7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일본 에자이제약이 개발한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의 사용을 승인하면서 의료계에는 향후 치매 치료 방침 전반의 변화가 예고된 상황이다. 국내에는 2025년경 도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한치매학회는 의료계는 물론, 보건의료 정책 기관 모두가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이와 관련해 이날 토론회는 알츠하이머 치매를 비롯한 치매 치료·관리 관련 정책과 제도 전반에 필요한 선제적 정비 사안을 제시했다.

우선 △치매 치료 대상을 치매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 환자로 확대하고 △치매 질환 중증도를 현행 C등급에서 A 또는 B등급으로 상향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조기 진단과 레켐비 투약 대상 환자를 선별할 수 있는 진단·치료체계를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행 치매 진단은 뇌 영상 검사와 행동 관찰·면담, 인지검사 등을 중심으로 하는데, 향후에는 여기에 뇌 속의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 발생 정도를 확인할 수 있는 ‘아밀로이드 PET(양전자 단층 촬영) 영상과 척수액 검사 등의 진단 체계가 추가돼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국가건강보험과 의료수가제도의 개편도 지적됐다. 레켐비의 급여화를 시작으로 관련 의료수가 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레켐비가 고가의 약물인 점을 감안해 치매 치료와 치료제 접근에 대한 형평성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또한, 접근성을 보완하기 위한 비약물적 치료 방안도 확대하고 국가치매책임제도와 치매안심센터의 내용과 역할을 보완해 국민 누구나 치매 전(全) 주기 치료·관리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양대구리병원 신경과 최호진 교수(대한치매학회 정책이사)는 “국제 치매 학계에서도 레켐비가 기반하는 치매 원인 가설인 ‘베타-아밀로이드 가설’을 이젠 이론이 아니라 ‘원리(principal)’로 격상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릴 정도”라면서 치매 치료 패러다임의 전환은 의학계에서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은 레켐비의 치료 효과(인지기능 개선)가 30% 내외 정도지만, 이를 시작으로 향후 5~10년 동안 겪을 대대적인 변화의 사회적 여파는 예상보다 더 클 수 있기 때문에 정책과 제도를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연간 3300만 원’ 고가 약제비 대비 방안, 반드시 마련해야

알츠하이머 치매에 대한 항체 치료제의 일종인 레카네맙은 베타-아밀로이드 가설에 기반해 개발됐다. 알츠하이머 치매를 유발하는 유력한 원인이 뇌 속에 쌓이는 노폐물의 일종인 단백질 덩어리(베타-아밀로이드 플라크·신경반)라는 이론이다.

학계는 이에 기반해 이 단백질 덩어리를 제거하고 근본적으로 쌓이지 않도록 돕는다면 병의 진행을 막는 것을 넘어 근본적으로 증상 개선과 치료가 가능하다고 추정한다. 해당 이론에 기반한 치매 치료제는 투약 시기를 앞당길수록 치료 효과가 극대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따라 알츠하이머 치매의 치료·관리 시기를 이미 병이 상당히 진행한 뒤인 진단 시기 이후에서 경도인지장애 등의 치매 전(前) 단계 시기로 앞당길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다만, SBS 조동찬 의학 전문기자는 고가의 신약이 도입되고 치료방침의 무게추가 신약 중심으로만 옮겨간다면 경제·사회적 계층에 따라 치료 형평성이 악화할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했다.

이에 원광대병원 이상학 교수(대한치매학회 홍보간사)는 “사회·경제적 차이에 따라 치매 환자마다의 특성과 치료 환경 차이가 크게 날 수 있다”면서 사회·경제적 상황에 따라 치료 형평성 문제가 심화할 가능성에 공감했다.

이어 “이젠 치매는 병원과 의료진이 역량을 쏟아 치료하면 충분히 관리가 가능한 만큼, 경제적으로 상황이 어려운 환자에 대한 치료와 약제비 지원을 확대하고 레켐비 도입 후에도 누구라도 이를 많이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대학병원과 지역사회 치매안심센터에서 함께 진료를 보고 있다.

치매안심센터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인하대병원 신경과 최성혜 교수(대한치매학회 윤리이사)는 “치매 환자는 활동량이 적기 때문에 ‘노쇠’하기 쉽고 이 결과 노화에 따른 각종 만성질환 발병도 잦다”면서 “그렇기에 치매 관리의 범위는 단순한 인지능력 관리를 넘어 질병과 영양, 활동을 포함한 신체 건강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방향을 추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최 교수는 정책적으론 심리·인지적으로 위축하면서 활동이 움츠러드는 치매 환자의 특성을 고려해 주간보호센터와 치매안심센터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모든 종류의 치매 환자가 이들 센터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인지 중재 치료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개발·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경동대 보건관리학과 정진 교수 역시 알츠하이머 치매의 조기 발견과 치료 접근성 향상을 위해선 우선 치매의 병명을 ‘실지증'(대만), ‘인지증'(일본), ‘뇌퇴화증'(중국, 홍콩) 등으로 변경하고 전문 협의체를 출범해 진단과 치료, 레켐비 투약, 투약 효과의 사후관리 등 전체 과정을 통합적이고 일관성 있게 논의·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이종성 의원은 “오늘 지적된 여러 문제는 치매 치료 분야에서 현재 우리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민낯’과 같다”면서 “그간 관련 제도와 정책이 사후관리 차원에만 머물렀던 부분을 넘어 폭넓은 관리가 필요하다는 화두를 던진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29일 국회 토론회 모습. 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원광대병원 이상학 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최호진 교수, SBS 조동찬 의학 전문기자, 보건복지부 전은정 노인건강과장, 경동대 정진 교수, 이종성 의원, 인하대병원 최성혜 교수. [사진=이종성의원실]
    최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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