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쳐도 희망 버려도 안돼”… ‘은톨’ 연구와 고민 없이는 ‘일본’같은 미래

[인터뷰] 최태영 대구가톨릭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전문가들은 은둔형외톨이 문제에 대한 꾸준한 고민이 없다면, 일본이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암울한 현실이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올해 3월 일본 내각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만 15세부터 69세에 해당하는 일본 국민 중 146만 명이 히키코모리(은둔형외톨이) 생활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영향도 있었지만, 충격적 수치라고 당시 일본 언론은 전했다.

6개월 이상 가족 정도를 제외하고 외부와의 교류를 일체 끊고 지내는 은둔형외톨이(이하 은톨) 문제로 우리 사회가 다시 떠들썩하다. 최근 잇따르는 범죄 피의자들이 고립된 생활을 했다는 게 알려지면서다. 언론들도 ‘은둔형외톨이 범죄’라는 단어를 쏟아내고 있다.

이처럼 은톨 문제는 흉악범죄처럼 화제성 뉴스가 발생하면 ‘반짝’ 화제가 된 뒤 시들해진다. 그러나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조용히 규모를 키워가고 있을 뿐이다. 정확한 집계는 없지만, 서울시는 시내 거주하는 은둔형 청년의 수를 무려 13만명으로 집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은톨 문제에 대한 꾸준한 고민이 없다면, 일본이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암울한 현실이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대구가톨릭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의 최태영 교수는 지난 20년간 은톨 문제를 연구해 온 드문 경력의 전문가다. 2021년 중앙대 병원 이영식 명예교수와 함께 장기간의 임상경험 등을 담은 책
‘은둔형 외톨이 탈출기’를 펴내기도 했다.

오랜 기간 은톨들을 만났던 최 교수는 한 시간여 동안 이어진 인터뷰에서 은톨을 찾아내는 것은 물론 세상 밖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최 교수 이야기 중간 중간 “절대 놓쳐서는 안되고, 희망을 버려서는 안되는” 은톨들을 이야기하면서 본인이 놓지 않고 있는 희망의 지점들을 꾹꾹 눌러 강조했다. 또한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은둔형외톨이형 범죄에 대해서는 편견을 가중시키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비치기도 했다.

“은둔형외톨이, 한 덩어리 집단 아닌 개개인의 문제” 

은톨의 원인은 다양하다. 흔히 실업이나, 왕따 등을 생각하지만 현실을 복잡하다. 개개인마다 다른 이야기가 숨어있다. 은톨 문제 해결이 어려운 지점도 여기다. 때문에 최 교수는 지원 정책들이 가장 초점을 둬야 하는 부분이 ‘개별성’이라고 강조한다. 어떤 원인으로 은둔을 시작하게 됐는지를 제대로 파악할 때만이 열쇠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 교수는 정신건강의학과적 관점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들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은톨 중에는 정신과적 문제 때문에 은둔하는 사람도 있고 아니면 오랫동안 은둔하다 보니 정신과적 문제가 생기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은둔과 정신과적 질환과 연결시키는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들도 있다. 다만 최 교수는 치료 가능한 병을 앓고 있는 이들까지 ‘은톨’이라는 이름에 가려서 놓쳐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은톨도 당연히 있습니다. 다만 정신과적 문제가 동반이 되는 경우도 있거든요. 이를 ‘2차성 은톨’이라고 합니다.  이런 경우는 전문가의 치료로 해결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거든요.

앞서 말씀드렸듯, 이게 불안증이나 우울증, 사회공포증 같은 정신질환이 원인이 되어서 은둔하기도 하고, 다른 여러가지 문제로 길게 은둔하다 보니 앞서 언급한 질병이 생기기도 합니다. 때문에 저는 이런 경우에는 동반질환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 필요한 치료는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최 교수는 ‘위장진단’이라는 단어를 내놓았다. 정신질환을 위장하기 위해 은톨을 내세우는 경우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정신질환이 있어서 집안에만 있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아이가 정신질환이 있다고 이야기하기 싫으니까, 부끄러우니까 은둔형외톨이와 같은 일반적 용어 혹은 허용적인 용어로 진짜 질병을 가리는 겁니다. 일본에서도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이들을 히키코모리로 위장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근데 이렇게 되면 치료가 늦어집니다.”

 

서울특별시 은둔형외톨이 지원사업 포스터 [사진=서울시]
강제로 끌어내는 게 제일 위험…편견은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은톨과 외부를 다시 연결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최 교수는 사람마다 효과적인 방법은 다를 수 있지만, 하지말아야 할 것은 똑같다고 강조했다.바로 강제로 끌어내서는 안된다는 것.

“가장 중요한 건 강제로 끌어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억지로 하면 과격하게 행동하면서 반응적인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아요. 은둔하던 아들을 집밖으로 강제로 내보내려던 아버지를 때린다든지하는 것이죠. 은톨들의 경우는 자신이 머물고 있는 영역에서 억지로 끌어내려고 하면 엄청나게 저항할 수 있어요. 그러면 억지로 꺼내려는 사람을 공격할 수는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죠.”

은톨 중에는 치료협조군이 있고 치료거부군이 있다. 치료협조군 이야기가 나오자 최 교수의 목소리는 절로 높아졌다.

“이런 분들은 절대 놓쳐서는 안됩니다. 거부하는 분들을 데려오는 건 정말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치료를 받겠다고 한다면? 절대로 놓쳐서는 안되고 치료적 접근에 들어오도록 설득해야 되는 분들이지요.”

반대로 비협조군의 경우에는 만나는 것 자체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최 교수의 경우 직접 만나지 못하고 방 밖 문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돌아오기도 하고 이런 시도를 여러차례 해서 결국 좋은 만남을 가지기도 했다. 이같은 가정방문의 효과에 대해서는 일본 정신신경의학 저널에 논문을 내기도 했다.

은톨 문제가 부각되고는 있지만, 사실 직접 연구에 뛰어들면 고충도 있다. 일단 이들을 찾아내는 게 힘들다. 연구 대상자 1만명을 만난다면 진짜 은톨이는 20명-50명 정도를 찾아내는 경우도 있었다고 최 교수는 회상했다. 그는 “실제로 연구를 시작하면 은톨이를 찾아내는게 용이치 않아 연구비 지원을 받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증거 기반 연구 및 정책 실행의 어려운 점이기도 합니다.”라고 털어놓았다.

은톨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문제 해결의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다. 이들을 더 숨게 만들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은둔형외톨이 범죄’라는 표현이다, 최 교수는 (은톨을) 범죄의 원인처럼 연관 짓는 것에 대해 다소 우려스럽다는 목소리를 냈다.

은톨 대부분은 사회적 관계 맺기 기술이 약한 이들이며, 이런 기술이 약하면 사람들한테 거부를 당하거나 왕따될 가능성도 많은 탓이다. 그러면 은둔하게 되고, 미숙함이 개선이 안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실제로 만나보면 사회적 약자들인 경우도 많다.

최 교수는 물론 은톨 중에서도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 있기는 있지만, 비중은 매우 낮을 것이라고 보았다. 다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부정적 부분이 크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게다가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 중 일부는 병이 아닌데도 병인척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데, 정말 정신적 질환이 있는 이들은 우발적으로 저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설명이다,

“이분들은 사실 우리가 겁낼만한 사람들이 아니고 오히려 여러가지 상황에서 겁을 먹는 분들 비중이 높거든요. 사회적 상황(사람들 만나고 대화하는 등)에 대한 공포 및 불안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아주 드문 경우에 어떤 변수가 영향을  미쳐서 범죄를 저지를 수는 있지만, 정말 그야말로 극히 드물어요.”

히토오코시 캠프에서 활동하는 청년들. 스마트폰 상담 안내도 나오고 있다. [사진=人おこし(히토오코시) 페이스북]
히키코모리 집단농장부터 메타버스까지 

은톨은 당연히 사회적 영향을 받아 생겨난 현상이다. 청년 실업 증가, 경쟁의 심화, 디지털화 등이 대표적 요인으로 꼽힌다. 일본에서는 학교 경쟁이 심해지면서 부등교(장기간의 무단결석) 청소년이 늘어나고 히키코모리 현상이 많아지게 된 계기로 여겼고, 청년 실업이 증가하면서 집에서만 지내는 젊은 청년들이 많이 생겼다. 한국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이에 더해서 디지털 시대니까 은둔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잘 마련돼 있다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은톨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이제 국가가 직접 나서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아무래도 일본이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이미 2021년 고령의 부모가 히키코모리 자녀를 봉양하는 문제는 ‘8050’ 문제로 불렸으나 이제는 고령화·장기화에 의해 ‘9060’ 문제로 이행하기 시작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90대 부모가 60대 자녀를 봉양하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2009년부터 히키코모리를 대상으로 지역지원센터를 만들기 시작했고, 2018년까지 모든 현과 주요 도시로 확대하고 있다. 일본은 2021년 인구 고령화로 인해 악화되고 있는 사회적 고독의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은 지난 2021년 2월 내각관방에 ‘고독·고립대책담당실’을 신설하기도 했다. 지난 5월 일본 국회는 사회적 고립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한 조치를 촉진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최근에는 다양한 시도가 등장했다. 집단농장에서 치료를 돕는 새로운 개념의 회복 프로그램인 히토 오코시(Hito Okoshi) 캠프가 대표적이다. 히키코모리 청년들이 농장에서 노동을 하며, 자립적인 삶을 도모하는 것이다.

온라인을 통한 접근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일본은 2022년 6월에 활동과 대화를 조직하는 온라인 모임 프로그램을 시작했으며, 학교위원회도 학생들에게 메타버스를 통해 온라인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비슷한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최 교수는 많은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모습이 일본을 따라가고 있는 만큼 일본의 사례를 참고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오프라인 인프라도 아직 제대로 돼 있지 않은 상황이라 기본적 시스템을 먼저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만 정보통신(IT) 인프라가 워낙 뛰어난 만큼 가정방문보다 온라인 접촉이라도 활발히 이끌어 내는 것은 좋은 대안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틀에 갇히는 순간, 길은 안보여…”외부로 나온 뒤가 치료의 시작” 

국내에서도 서울시를 비롯해 광주 등 여러 지자체를 시작으로 은톨 지원 논의가 점차 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정책 수립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최 교수는 인터뷰 속에서 ‘개별 접근’의 중요성을 여러차례 강조했다.

“정신건강의학적인 치료적 접근이 우선되는 분도 있을 테고, 경제적인 문제가 우선적으로 지원되어야 할 사람도 있고, 직장이나 학업이 먼저 제공되어야 할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에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마련해주면서 마음 둘 곳을 만드는 정책이 생겼으면 합니다. 어떻게 이런 목표를 실행할 수 있을지는 많은 분들의 아이디어가 필요할 듯 합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센터식 접근, 각자 가정에서 할 일, 병원에서 할 일, 상담소에서 할 일 등의 영역을 나누어 서로 협력 및 연계가 필요해 보입니다.”

은톨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어떠해야 한다’라는 근본적 원칙을 내세우는 걸 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개인이 정확히 어떤 문제로 은둔하고 있는 지 파악하기 위해 가족이나 멘토 등과 시간을 갖게하거나, 은톨 경험을 한 이들과 시간 보내거나 정보 교환하기 등과 같은 프로그램을 운용하는 것도 해결책 중 하나다.

최 교수는 집에서 나오게 한 후가 ‘진짜 치료’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궁극적으로는 일자리까지 제공해 해야 될 일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은둔에서 힘들게 나왔는데 할게 없으면 다시 은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재 일본에서 이 문제 확산의 가장 큰 원인의 시초는 청년 실업입니다. 20대부터 은둔하다 보면 결국 중년이 되어서도 은둔합니다. 이때까지는 부모가 보호하고 돌볼 수 있지만, 부모 사망 후 노년 은둔하다 보니 일본에서는 독거사까지 연결되거든요. 일본처럼 또 노인으로 이들이 늙어가도록 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준비를 하고 연구를 많이 해야 합니다.”

 

대구가톨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최태영 교수 [사진=대구가톨릭대병원]
    윤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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