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되는 죽음, 나는 왜 육하원칙을 포기했나

[최지현의 현장에서]

서이초 사건 직후 학교를 가득 메운 추모메시지. [사진=뉴스1]
육하원칙(六何原則).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기사문에 들어가야 하는 필수 요소들이다. 기자 교육을 받을 때도 육하원칙 중에서 무엇을 빼먹지는 않았는 지를 꼼꼼히 점검하라는 지적을 수없이 들어왔다. 그러나 여기에도 예외는 있어야 한다. 육하원칙은 일단 뒷전으로 놓고, 뉴스를 접할 대중과 사건 당사자 및 주변인 보호를 우선으로 해야 하는 사건, 바로 자살 사건을 보도하는 경우다.

한국기자협회의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의 5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기사 제목에 ‘자살’이나 자살을 의미하는 표현 대신 ‘사망’, ‘숨지다’ 등의 표현을 사용한다. 2. 구체적인 자살 방법, 도구, 장소, 동기 등을 보도하지 않는다. 3. 자살과 관련된 사진이나 동영상은 모방자살을 부추길 수 있으므로 유의해서 사용한다. 4. 자살을 미화하거나 합리화하지 말고, 자살로 발생하는 부정적인 결과와 자살예방 정보를 제공한다. 5. 자살 사건을 보도할 때에는 고인의 인격과 유가족의 사생활을 존중한다.

특히 유명인 관련 보도를 다룰 때 더 엄격히 지켜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자살 사건을 전할 때 권고 기준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함께 일하는 구성원들도 이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한다. 다만, 보도를 아예 하지 않으면 모를까, 준칙을 모두 지키면서 기사를 쓰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앞서 언급한 육하원칙 중 상당 부분을 뭉턱뭉턱 잘라내야하고, 대중의 관심을 끌만한 부분도 모두 지워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이렇게 하다 보면 쓸 내용이 크게 줄어든다.

물론 자극적인 제목과 내용으로 빠르게 대중들의 클릭 수를 빨아 들이는 일부 매체들의 보도를 보며, 조바심이 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자살 사건은 아니지만, 이태원 참사부터 최근 서이초 초등학교 교사 사건을 거치면서 언론의 보도가 얼마나 수많은 이들의 삶과 정신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지는 깨달아 가고 있는 상황에서, 준칙을 지키는 것은 ‘권고’지만 ‘필수’가 되어야 한다고 나날이 더욱 굳게 다짐한다.

국내의 대표적인 자살 예방 전문가인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백종우 교수는 미디어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위기의 사람들’이라고 조언을 건냈다. 백 교수는 “미디어의 자극적 보도가 대다수 독자들에게는 괜찮을 수 있지만, 현재 어떤 이유로든 위기에 빠졌거나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기사를 통해 사건의 당사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정황과 수단 등을 참고하고, 결국에는 똑같은 결정을 내리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베르테르 효과’를 무시해서는 절대 안된다는 말이다.

물론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독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경쟁에 시달리는 미디어에게 준칙 준수는 쉽지 않다. 여전히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을 단 자살 보도들이 이어지고 있으며, 구체적 자살 방식을 묘사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서이초 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은 언론이 얼마나 여전히 사람에 대한 존중보다는 자극적 보도에 매몰됐는 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20대 젊은 선생님의 일기장은 버젓이 ‘단독’이라는 이름을 달고 공개됐다. 고인의 사생활은 여과없이 대중에게 알려졌다. 고인과 유족의 사생활을 최대한 존중하라는 준칙의 5번 문항은 쓰레기통에 처박은 셈이다.

높은 자살률은 우리사회의 병증을 명확히 드러내는 수치 중 하나다. 정부의 수많은 대책에도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모두 각자가 선 자리에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는 방법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때문에 기자로서 선 자리에서 준칙을 지키며, 생명의 무게에 대해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자살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발생하는 개인이 맞게 되는 최악의 상황이며, 우리 사회가 해야할 일은 이런 여러 이유를 찾아가면서 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실제론 ‘죽음과 사망’은 선택지가 아님에도 ‘극단적 선택’이란 표현으로 선택지를 제시하는 것을 언론은 피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선택지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분명 기사에서도 이런 고민과 노력은 드러나고 독자 역시 그 진심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백 교수의 말처럼 독자들은 기사로 나의 진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면서.

    최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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