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조용했던 영업 귀재, 삼원약품 추기엽 회장

4일 별세...1970년대부터 49년간 부울경 의약품유통시장에 큰 발자국 남겨

부울경 의약품유통업계 원로, 추기엽 삼원약품그룹 회장이 4일 별세했다. 1934년 경남 거제 태생이니 올해 89세다.

2000년 의약분업 이후 부울경 약 도매시장을 삼분(三分)했던 복산약품(엄상주)-삼원약품(추기엽)-세화약품(주만길) 창업세대 역사가 그를 끝으로 막을 내린 셈이다.

추기엽 회장. [사진=삼원약품]
그는 나이 마흔이던 1974년, 부산 동구 초량동에서 의약품도매업을 시작했다. 49년 전이다. 제약회사에서 영업에 발군의 실력을 보였던 그가 드디어 자기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처음부터 일반의약품보다는 병원과 의원에 들어가는 전문의약품 위주로 목표를 잡았다. 당시 약국 쪽은 복산약품이 강세를 보이고 있던 만큼 삼원은 애초부터 중·소병원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

83년 법인으로 전환하면서부터 영업망 확대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부울경의약품유통협회 회장도 맡았다. 차분한 성격에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겸손함으로 부울경 의료계의 신망을 쌓아갔고, 의약품 유통질서 확립 등 제도 변화에도 힘을 쏟았다.

특히 병원 의약품 유통일원화를 정부에 적극 건의, 1994년 ‘종합병원 유통일원화’ 제도를 약사법에 도입하게 한 것 등이 좋은 예다. 그로부터 제약업과 의약품도매업이 각각 전문화의 길을 걷는 토대가 만들어졌다.

2000년 의약분업이 시작되며 전국은 물론 부울경 의약품유통시장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약을 약국에서만 살 수 있게 바뀌자 약국 영업망을 잡고 있던 복산약품 매출이 급상승했다.

하지만 병·의원들은 ‘일반’의약품이 아니라 처방용 ‘전문’의약품이 더 필요했다. 곧 삼원약품과 세화약품 매출이 뒤따라 오르며 복산-삼원-세화 삼각체제가 굳어졌다.

당시까지만 해도 사세가 적지 않았던 후생약품(계월화, 곽천) 한일약품(남동석) 미도약품(김용익) 보성약품(이상출) 등을 제치고 추 회장의 ‘천하 삼분지계(三分之計)’가 구축된 것이다.

부울경 의약품도매시장 삼분하며 급성장…M&A 전략에도 일찍 눈 떠

부산 경남 울산 등 동남권 시장을 깊이 파고들던 그는 2010년 대구약품을 인수하며 대구 경북시장으로도 진출했다. 대형 도매상 간 인수합병(M&A)전략에도 일찍 눈을 뜬 셈이다.

현재 국내외 300여 개 제약사로부터 2만여 제품을 취급하는, 부울경 대표적인 의약품 ‘종합도매’ 업체로 한 해 매출만 3천억 원에 달한다. 중소기업 규모를 뛰어넘는 중견기업. 제품 라인업도 전문의약품, 일반의약품, 의료소모품 외에 의약외품, 건강·기능식품, 화장품까지 커졌다.

부산, 경남을 아우르는 낙동강 변 서부산유통단지 안에 1만2천 평 ‘의약품 물류단지’를 유치하면서 콜드체인을 기반으로 한 ‘의약품 물류업’을 본격화한 것도 그의 안목을 보여준다. 자기 제품뿐 아니라 다른 회사 제품들까지 물류시스템 안에서 다루게 되면서 뜨고 지는 의약품 시장 동향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게 된 것.

의약품 유통과 물류센터. [사진=삼원약품 홈페이지 캡처]
삼원약품은 현재 대형 물류센터를 부산, 경남, 울산, 대구까지 모두 4곳에 갖고 있다. 이를 통해 병·의원과 약국 등 3천여 개 거래처에 당일 2배송 시스템을 가동한다. 자체 온라인 주문시스템을 통하여 국내 모든 요양기관에도 의약품을 공급할 수 있는 체계까지 갖추었다. 의약관련 제품 전자상거래 플랫폼 ‘팜박스’도 성장의 1등 공신이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부울경 의약품유통업계에 큰 발자국을 남긴 추 회장의 빈소는 동아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유족은 추성욱 삼원약품 사장을 비롯해 차남 추성택, 딸 추혜윤 등. 발인은 6일 오전 8시 30분, 장지는 부산영락공원 실로암이다.

1996년 대통령 표창을 시작으로 2003년 국민훈장 석류장, 2006년 부산산업봉사대상, 2014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평소 말수가 적었던 고인은 입지, 근면, 극기, 인화라는 4개 덕목을 사훈으로 남겼다.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한 2014년 당시의 추기엽 회장. [사진=삼원약품]
    윤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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