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입원 당해도… “이까짓 술, 당장 끊을 수 있어”

코메디닷컴X대한신경정신의학회 공동기획 (4) 알코올 사용장애

알코올 사용장애의 핵심 증상은 ‘조절력’을 잃는다는 것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까짓 술, 내일이라도 당장 끊는다.”

알코올 사용장애 환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다. 술로 일상생활까지 망가져버렸어도, 이들은 언제든 술을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크나큰 착각이며, 환자 치료에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이기도 하다. 이미 알코올사용장애(알코올 중독) 단계에 접어든 환자가 자신의 의지로 술을 끊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대구가톨릭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윤서영 교수는 코메디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알코올 사용장애 환자 중 상당수는 본인이 언제든 술을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병의 핵심 증상이 조절력을 잃는 것인데, 이런 사람이 스스로 술을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라고 조언했다.

이어 “우리 사회에서는 알코올 사용장애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교육이 많이 부족하다”면서 “환자 중에서 본인의 상태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알코올 사용장애 평생 유병률은 11.6%에 달한다. 모든 정신질환군 중 가장 높다.

망가진 보상회로, 환자 스스로 고칠 수 없어

김진현(가명)씨는 36살이 되던 해 사망했다. 돌연사였다. 만성알코올중독으로 심장에 문제가 생겼다. 김씨의 장례에 모인 사람들은 가족을 제외하고는 20명 남짓했다. 10대 후반부터 음주를 시작해 온 김씨는 대학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폭음을 이어갔다. 김씨는 소위 명문대학교에 입학할 정도로 명석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무분별한 알코올 사용으로 곳곳에서 문제가 터졌다. 그럼에도 김씨의 폭음은 멈추지 않고 30대에도 이어졌으며,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즈음 인간 관계에서도 문제가 생겼다. 병원을 가보라는 조언도 무시한 김씨는 더욱 고립됐고, 더욱 술에 의존했다. 사망 수 개월 전 그를 만났던 친구들은 김씨가 이미 그 때  제대로 혼자 국물을 떠먹지 못할 정도로 손을 떨었다고 기억했다.

알코올 사용장애는 간단히 말해 술 문제로 일상 활동이 힘들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병원 입원 등 술을 마셔서는 안되는 상황에서도 술을 찾고, 못 마시면 초조하고 불안해 한다. 직장이나 학교 생활도 이어가기 힘들다. 대부분의 물질 중독처럼 알코올도 기대하는 효과를 얻기 위해 점점 마시는 양이 늘어난다.

“알코올 사용장애는 대표적인 물질중독으로 꼽히며, 쾌락중추가 알코올과 같이 강력한 물질에만 반응하게 되면서 중독이 된다. 이런 환자들은 금주를 하면 우울감이나 불쾌감을 느끼면서 또다시 술을 찾는다. 뇌가 작고 소소한 일상의 일에서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술에 의한 보상에만 반응하는 것이다. 유전적 요소도 상당히 크기 때문에 가족력이 있다면 더욱 주의해야 한다.”

술은 발암 1급 물질로 신체적 정신적으로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상당히 크다. 그러나 술에 관대한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 속에서 알코올 사용장애의 심각성이 제대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김씨의 사례처럼 대학 입학 뒤 폭음 문화에 장시간 노출되다 알코올에 의존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영업사원처럼 술이 곧 사회생활과 연결되면서 알코올 사용장애 환자들은 매일 술을 마시면서도 본인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때문에 다른 병과 다르게 환자 본인이 아닌 가족이나 주변인들에 의해 병원으로 ‘끌려’온다. 가족들이 어떻게 해서 끌고 왔어도 ‘나는 병에 걸린 게 아니다.’라면서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도 많다고 윤 교수는 말했다.

“알코올 장애는 사실 상당히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한 번씩 폭음을 하면서 일상생활도 못할 정도로 엄청나게 많이 먹다가 몸이 안 좋아지고 돈이 없으면 몇 달씩도 끊었다가 한 잔 마시기 시작하면 다시 또 엄청 많이 먹는 이들도 있고, 매일매일 소주 한 병 정도씩 꾸준히 먹는 이들도 있는 식이다. 빈도나 양으로 사용 장애를 특정하기는 힘들다. 때문에 환자들도 자신에게 나타나는 증상이 알코올 사용장애라고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도 많다.”

최근 DSM-5에 따르면 진단 기준 11개 중 1개 이하의 기준에 해당하면 알코올 사용 장애가 없는 것이며, 2~3개의 진단 기준에 해당하면 중등도 알코올 사용 장애, 4개 이상의 진단 기준에 해당하면 중증 알코올 사용 장애로 진단한다.

 

알코올 사용장애, 고칠 수 있나?

물질중독 치료를 혼자 고치기는 어렵다. 이미 망가진 보상체계 탓에 조절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망을 없는 것은 아니다. 전문기관을 찾으면 된다. 알코올 사용장애는 극단적이고 심각한 사례가 미디어 등에서 널리퍼진 탓에 치료가 어렵다는 인식이 많다. 그러나 윤 교수는 “알코올 사용장애 환자의 경우 널리 퍼진 우려와는 달리 예후가 좋은 경우가 더 많다.”면서 “일단 병원을 찾아 전문적인 치료를 받으면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환자들이 병원을 찾으면 어떤 치료를 받게 될까? 일단 금주로 인한 금단 증상에 약물 등으로 대처한다. 알코올 금단은 심하면 사망까지도 이를 수 있다. 이처럼 위험하기 때문에 상태가 심각한 경우에는 입원 치료 받는 게 좋다. 이 과정에서 항불안제 등을 처방 받아 금단 증상을 완화할 수도 있다.

알코올 사용장애 환자들은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영양불균형 상태에 놓인 경우도 상당히 많다. 게다가 술 자체가 비타민의 흡수를 방해해 신경학적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비타민(티아민)을 비롯한 영양부족을 교정한다. 해독 과정이후에는 술에 대한 갈망을 낮추기 위한 약물 치료를 하기도 한다.

물리적인 해독 치료나 약물 치료와 더불어 환자가 놓인 개별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교육과 치료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윤 교수는 강조했다.

“환자가 술을 마시게 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또한 약물 치료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본인이 병에 걸렸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술을 마시는 상황과 환경을 피하고 본인이 왜 술을 마시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음주가 아닌 대안으로 할 수 있는 활동들을 찾아보고 직접 실행하는 치료도 한다. 알코올에 대한 인지행동치료가 상당히 중요한 것이다. 보상회로 및 쾌락중추의 변화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치료는 사실 반년에서 1년 이상씩 걸린다.”

알코올 사용장애 치료는 심할 경우 몇 년 이상의 지속적인 관리와 치료가 필요하다. 문제는 치료에 실패했을 경우다.

“치료 중 술을 마셨을 때 자포자기 하고, 그냥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지속적 노력이다. 어쨌든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게다가 본인이 아직은 술을 조절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지하는 게 핵심이다. 여기에 음주의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우울과 불안 등 정서의 문제인지 인간 관계 때문인지를 파악한 다음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절주를 하겠다는 이들도 있지만, 어쩌다 한 잔은 대부분의 경우 폭음으로 이어진다. 때문에 절주보다는 금주가 더 쉽다라고 환자들에게 조언하고 있다.”

 

 

술-정신질환은 악순환의 질긴 고리로 ‘연결’

술과 정신질환은 질긴 악순환으로 연결돼 있다. 알코올 사용장애는 불안장애 등 여러 정신과 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반면 정신과 질환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이 안정감을 얻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경우도 있다. 조금 편해지는 느낌을 가지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는 위험한 생각이다.

“이런 정신질환이 있으신분들이 편안한 느낌을 얻기 위해 술을 마시게 되면 이 자체가 정신과적 질환을 더 악화시키고 없던 질환도 만들 수 있다. 나중에는 이게 우울이나 불안 때문에 생긴 증상인지 술 때문에 생긴 증상인지 구별이 잘 안되면서 치료가 더 어렵고 만성화되는 경우들이 많다.
술은 마실 때는 모르지만, 깨면 불안을 더욱 높이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되면 다시 술을 찾고 기존의 불안에 술로 인한 불안이 더해지면서 상황은 악화한다. 수면도 마찬가지다. 술을 마시고 잠이 들면 수면의 질이 떨어지고 알코올 금단은 오히려 각성을 일으켜 불면증이 악화하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술 때문에 생긴 수면장애는 일반적인 수면제로도 완화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술은 충동성에 영향을 주면서 자살의 위험을 높일 수도 있다.”

알코올 사용은 스트레스와 관련된 경우가 많다. 기분을 개선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마시는 것이다. 윤 교수는 “노년의 우울증을 겪다가 알코올 사용장애로 빠지는 이들도 있는데, 알코올이 아니라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을 찾게 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디어에서 기분이 좋아도 안좋아도 술을 마시는 모습을 지나치게 노출하는 것도 알코올 사용장애 환자를 늘리는 치명적인 요소들 중에 하나라고 윤 교수는 지적했다.

“작은 스트레스 하나하나도 술과 연결시키다보면 어느새 알코올 사용장애를 겪게 된다. 사회적으로 알코올 사용의 위험성에 대한 교육을 지속하고, 술에 대해 지나치게 허용적 분위기를 바꿀 필요가 있다.”

 

    윤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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