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 점검' 약속 어디로? 10년째 똑같은 편의점 상비약
대국민 수요조사 결과 품목 부족 응답이 '62%'
안전상비약 시민네트워크가 30일 편의점 안전상비약에 대한 대국민 수요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정부 정책 개편을 촉구했다. 편의점에서 안전상비약을 구매한 경험이 있는 국민의 62.1%가 ‘품목 확대가 필요하다’고 응답해 10년째 똑같이 유지된 상비약 품목에 대한 논의도 필요할 전망이다.
2012년부터 시행된 ‘안전상비의약품 약국외 판매제도(이하 안전상비약 제도)’는 약국 영업 외 시간에 국민들이 의약품을 구입하지 못하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제도다. 해열 진통제, 소화제, 감기약, 파스 등 4개 종류의 13개 제품을 약국 외 장소에서 판매해 소비자가 가벼운 증상에 스스로 대처할 수 있다. 의료 인프라가 열악한 도서산간 지역에서는 안전상비약 제도가 약국의 보완재 역할을 수행한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응급 상황에서 안전상비약을 구입하려는 국민도 많아졌다.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이번 수요조사에서 응답자의 94.4%가 ‘안전상비약 제도에 대해 알고 있다’고 응답했으며, 71.5%가 상비약 구매 경험이 있었다. 2013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서 14.3%가 구매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것을 고려하면 지난 10년 새 인식과 이용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안전상비약 제도는 시행 이후 10년간 개정이나 재정비 없이 사실상 방치됐다. 급격히 늘어난 수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012년 보건복지부는 13개 품목을 최초 지정하며 6개월 후 중간 점검, 시행 1년 후 품목 재조정을 예고했지만 지금까지 점검이나 품목의 조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수요조사를 주관한 소비자공익네트워크는 “안전상비약 제도는 여전히 10년 전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라며 “국민들의 의견과 수요를 고려해서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사 참여자들은 ‘새로운 효능군 추가(60.7%)’, ‘새로운 제형 추가(46.6%)’, ‘기존 제품 변경·추가(33.6%)’ 순으로 개편 방향을 요구했다. 70% 이상의 참여자들이 지사제를 추가했으면 좋겠다고 응답했으며, 파우치형 시럽제나 스프레이형 파스 등 제도 시행 시점에는 보편적이지 않던 의약품 제형의 수요도 있었다.
이러한 품목 확대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최대 7개의 품목이 추가될 수 있다. 현행 약사법에서는 안전상비약을 20개 품목 이내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공익네트워크 이명주 사무총장은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점진적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품목 확대와 제도 개편을 위한 정책 논의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이주열 교수는 “연구를 통해 국민들의 구매 경험이나 인지도가 높아졌다는 것이 증명됐지만, 품목 확대는 전문가 집단의 영역이기도 하다”며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안전상비약 지정심의위원회 차원에서 대상 품목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중요한 것은 단순히 품목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주는 것”이라며 “제도 개편은 물론 소비자와 판매자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안전상비약 시민네트워크는 국민의 상비약 접근권 향상을 위해 출범한 자발적인 시민 모임이다. 바른사회시민회의, 서울시보건협회,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미래건강네트워크, 행복교육누리, 그린헬스코리아, 한국공공복지연구소, 고려대 공공정책연구소, 소비자공익네트워크 등 9개 단체가 속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