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잘 만난 것이 행운” 희귀 질환 ‘16년’ 치료한 의사
[인터뷰] 가천대 길병원 치과교정과 문철현 교수
2007년 가천대 길병원 진료실을 찾은 7살 A군의 치열은 완전히 붕괴된 상태였다. 뇌 신경이 마비되는 희귀 질환인 뫼비우스 증후군 탓이었다. 신경 기능의 손상으로 입술과 혀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입 안 구조에도 문제가 생겼다. 여러 유형의 환자를 만나왔던 가천대 길병원 치과교정과 문철현 교수에게도 쉽지 않은 환자였다. 그러나 문 교수를 더욱 놀라게 했던 건 환자와 보호자의 태도였다.
"보통은 몇 년만 교정치료를 해도 절망하고 낙담하기 쉬운데, A 군과 A 군의 어머니 모두 놀랍도록 낙천적이었습니다. 지금껏 만나본 환자 중에서도 이런 분들은 없었어요. 제가 한 일이 뭐 얼마나 있겠습니까. 이런 환자를 만난 일이 오히려 의사에게는 행운이고 복이죠."
A군과 문 교수의 인연은 그날부터 16년간 이어졌다.
◆뫼비우스 증후군 치열 정상화 국내 첫 사례
뫼비우스 증후군은 정확한 유병률을 집계하는 것이 힘들 정도로 희귀한 병으로 신생아 50만명 당 한 명 정도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에서는 2006년까지 약 300명, 2015년까지 약 3500명이 보고된 바 있다.
뫼비우스 증후군은 총 열 두 쌍의 뇌 신경 중 6번과 7번 신경에 선천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나타난다. 눈꺼풀, 혀, 턱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해 미소를 짓거나 얼굴을 찡그릴 때 부자연스러운 표정이 생기는 등 일상의 불편함이 크다.
신경 질환이지만 치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은 구강 변형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문 교수는 “치열은 입술과 혀의 힘이 균형을 맞춰야 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데, 뇌 신경에 문제가 생기면 혀를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며 “입 밖에서 치아를 미는 입술의 힘만 있기 때문에 치열이 무너지며 입 안 구조가 변형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A군은 2세 때 처음 진단을 받았고, 7세 무렵부터 가천대 길병원에서 치료를 시작했다. 문 교수는 “이미 치열이 상당히 붕괴되어 있었지만, 당장 적극적인 교정 치료를 하긴 어려웠어요. 아직 영구치가 다 나지 않았기 때문이죠.”라고 회상했다. 첫 5개월 동안은 무너진 치열 구조를 다시 세우고 기본적인 배열을 맞추는 1차 치료가 이뤄졌다.
이후 4년 간은 A군의 유치가 영구치로 교체되는 상황을 관찰하면서 치료 타이밍을 조절했다. 치료 시점이 너무 이르면 교정 기간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12세 무렵부터 2차 치료가 시작됐다. 고정식 교정장치를 사용해 30개월 동안 치아 교정을 진행했고 A군이 중학교에 입학할 때 즈음 마무리됐다.
다행히 치아 교정 결과가 깔끔했고, A군은 현재까지 치열 유지장치를 착용하며 1년에 한 번 내원한다. 유지 장치를 계속 착용해야 하고 여전히 웃을 때 표정이 부자연스러운 문제가 있지만, 일상생활에 무리가 없는 정도로 회복됐다.
문 교수는 A군이 받은 시기별 치료와 예후를 정리해 최근 «대한치과교정학회지»에 보고했다. 희귀병 사례인 것도 중요하지만 긴 시간 부작용 없이 교정 치료를 이어온 것에 대한 학술적 가치가 크다. 장기간의 치료에 대해 묻자 문 교수는 손사레를 쳤다. 문 교수는 ‘대단한 임상 성과’는 아니라는 겸양과 함께 16년 간의 치료 및 상태 호전의 공을 보호자와 환자에게 돌렸다.
“(장기간 환자를 추적하는 일이 잦은) 교정 치료에서는 16년이 긴 시간이 아닙니다. 해외에선 20년이 넘는 증례도 허다하죠. 제가 이런 걸 했다고 언론에 자랑하면 동료 선생님들에게 창피해요. 사람이 나이만 많다고 자랑이 아니듯, 오래 치료했다고 자랑할 순 없어요. 의사가 자랑할 일이 아니라 환자와 보호자가 대단하다고 생각할 일이예요.”
문 교수의 겸양에도 뫼비우스 증후군을 앓는 환자의 치열 구조를 정상적으로 복원하고 충치나 잇몸 질환 없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한 사례는 국내에서 이번이 처음이다. 이러한 성과에 대해 그는 “의료진이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지만,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환자”라고 말했다. “A군의 경우 유지 장치를 사용하는 것이 핵심이었는데 오랜 기간 장치를 버텨준 환자와 보호자에게 감사하죠. 의사는 ‘헬퍼(Helper)’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치과 치료는 양치 습관이 기본이라 어린 환자를 진료할 때면 대부분의 시간을 양치를 가르치는 데 쓰는데, 보호자가 워낙 아이를 잘 가르친 덕에 치료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고 문 교수는 회상했다.
“치과 치료에서는 양치가 가장 중요해요. 의사는 고작해야 6개월이나 1년에 한 번 보는 게 전부지만 양치는 하루 세 번, 매일 하기 때문이죠. 어떠한 복잡하고 어려운 치과 치료라고 해도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환자 본인의 양치질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교정 치료는 환자-보호자-의사가 함께 한다고 할 수 있어요.”
장기간에 걸친 교정 치료의 특성 상 사춘기를 지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포기하지 않으려면 세 명이 함께 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긴 시간동안 지친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비관해 유지 장치를 벗어버리거나 병원 방문을 멈추면 그대로 치료가 중단되기 때문이다.
그는 긴 시간 봐온 환자들이 병원을 방문하면서 점점 더 편안한 모습을 보이면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일반적인 치료와 다르게 교정 치료는 길어질수록 치료가 더딘 것이 아니라 환자가 치료에 적극 협조한다는 뜻이다. 유지 장치를 계속 착용하면서 열심히 관리를 해야 병원에 내원해 상태를 점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 구강치료에 대한 관심 더 커져야
앞서 치료의 공을 모두 환자와 보호자에게 돌리기는 했지만, 문 교수는 장애인 구강치료에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앞서 온 전문의다.
문 교수는 자신의 오랜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장애인 구강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인력과 시설을 확충하며 ‘구순구개열(선천적으로 윗입술이나 입천장이 갈라지는 병)’ 등의 치료에 앞장섰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세계 3대 인명사전 중 하나인 ‘마르퀴즈 후즈후’로부터 평생 공로상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보건복지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문 교수는 여전히 구강 장애 치료를 위한 인력과 시스템이 부족하고 홍보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을 언급하며 다양한 구강 장애 치료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천대 길병원은 2013년 보건복지부에 의해 인천권역 장애인구강진료센터로 선정됐고 2016년부터 자체 센터를 운영해오고 있다.
구강 장애를 겪는 환자들이 좋은 의사를 만나 적절한 치료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산부인과, 성형외과, 이비인후과, 치과의 원활한 협진이 가능한 센터를 세운 것이다. 그러나 협진의 벽은 여전히 높다. 이러한 진료가 가능하다는 것을 몰라서 못 오는 사람도 많고, 자신에게 있는 질환을 숨기려는 환자들도 많다는 한계가 있다.
“선천적 구강 장애를 겪는 환자는 굉장히 드물지만, 그렇기에 경험 있는 의사도 많지 않죠. 환자들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치료를 받으러 올 수 있도록 언제라도 준비된 병원, 준비된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문 교수가 밝힌 앞으로의 목표다. 그는 “충분히 치료받을 수 있으니 걱정 말고 편한 마음으로 병원을 방문하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