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찾다 사망… “응급실 뺑뺑이 25년째 되풀이”

대한뇌졸중학회 "정부 대책 개선 없어"...현실적 개선책 제시

필수 중증환자가 제때 치료를 못 받고 사망하는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사진=Kwangmoozaa/게티이미지뱅크]
수용 가능한 응급실이 없어 환자가 뺑뺑이를 돌다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하는 사건이 끊이질 않고 있다. 국내 응급의료체계의 고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7월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근무 도중 두통을 호소하다 의식을 잃었다. 응급실 검사를 통해 지주막하출혈 진단을 받았지만 병원 내 수술 가능 인력이 부재해 서울대병원으로 전원됐다. 그 사이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에 이르렀다.

국내 최대 규모 병원에서 직원조차 치료하지 못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국내 응급의료체계의 문제점이 크게 부각됐다. 하지만 해당 사건 이후 반년 이상 흐른 지난달에는 대구에서 10대 여학생이 병원을 찾다가 사망하는 사건이 또 다시 발생했다. 이 학생은 4층 건물 추락 후 119구급대를 통해 응급의료기관을 찾았지만 7개 기관이 수용을 거부했고 결국 2시간만에 사망했다.

이들 사건은 국내 응급의료체계에 문제가 많다는 단적인 예다. 이런 일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유명무실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대한뇌졸중학회는 19일 열린 ‘응급의료 기본계획 및 필수의료 지원 대책 현황과 발전방안 모색’ 간담회에서 “정부가 25년째 똑같은 응급의료 기본계획을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올해 주요 정책 중 하나인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도 3차 내용을 되풀이한 수준이라는 것.

학회 김태정 홍보이사(서울대 의대 신경과)는 “뇌졸중은 적기에 치료를 받으면 환자가 건강한 삶을 회복할 수 있는 질환“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응급의료 기본계획이 수립된 이후 25년째 적기에 치료 받지 못하는 사례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원인으로는 우선 119구급대가 전문진료과와 연계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구급대원은 응급환자 발생 시 응급실(응급실 전공의, 응급의학과 전문의)과 소통하며 병원 수용이 가능한지 문의한다. 치료를 시행하는 전문진료과와 직접 소통할 수 없다는 것. 가령 뇌졸중 환자가 발생했다면 신경과 의사와 소통해야 빠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지만 현재 그럴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치료 전체 과정을 관리하고 환자의 최종 이송을 책임지는 컨트롤타워 역할의 관리센터도 부재하다. 24시간 치료 역량 역시 부족하다. 김 이사는 “대구 여학생 사망 사건 등이 발생하는 건 컨트롤 타워가 없고 24시간 진료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며 “한 번에 어느 병원으로 가서 치료 받으면 된다는 걸 확정할 수 있는 체계가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전체 뇌졸중 안전망을 관리하고 유지할 수 있는 관제센터인 ‘중앙심뇌혈관센터’를 지정하고 의료 인프라를 늘려 골든타임 내 치료가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왼쪽부터) 대한뇌졸중학회 김성헌 병원전단계위원장, 이경복 정책이사, 배희준 이사장, 차재관 질향상위원장이 19일 ‘응급의료 기본계획 및 필수의료 지원 대책 현황과 발전방안 모색’ 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의에 응답하고 있다.

응급실에 경증환자가 넘쳐나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응급실 방문 환자 중 중증 환자는 7%에 불과하다. 50% 이상이 경증 환자다. 경증 환자 과밀화 현상으로 실제 진료가 필요한 중증 환자들이 제때 치료를 못 받는다. 김 이사는 “경증환자와 중증환자를 분리해서 치료해야 한다”며 “정부가 중증응급의료센터 60개를 만든다고 했는데, 이곳은 필수 중증환자 치료에 집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낮은 진료 수가는 뇌졸중센터 유지의 어려움으로 이어진다. 현재 뇌졸중 집중치료실 수가는 상급종합병원 기준 15만5720원이다. 간호간병통합병실 6인실 병실료인 17만1360원보다 낮은 수준이다. 급성 뇌경색 필수치료인 정맥내혈전용해술 관리료는 약 19만 원으로, 해외 대비 40% 수준이다.

신경과 전문의가 뇌졸중 의심환자 진료 시 받는 진찰료와 당직비도 없다. 온콜(호출대기) 교통비 3만 원 정도만 청구 가능하다. 24시간 뇌졸중 집중치료실 근무 시 수가는 2만7730원으로 시간당 1000원 꼴이다. 이렇다보니 올해 신경과 전문의 합격자 83명 중 뇌졸중 전임의 지원은 5명에 불과하다. 권역심뇌센터 전국 14곳 중 전임의가 있는 곳은 1곳뿐이다.

학회는 대학병원에 전공의 최소 2명, 권역심뇌센터에 뇌졸중 전문의 5명 이상이 배치될 수 있도록 수가를 높이고 관찰료 및 당직비 등을 신설해야 한다고 보았다.

정부는 개선 가능한 현실적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배희준 학회 이사장(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은 “계획은 세울 수 있지만 재정 운용 계획이 없으면 변화를 꾀할 수 없다”며 “정부의 응급의료 기본계획에 재정 계획이 빠졌다. 결국 말만 되풀이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가장 시급한 일은 24시간 작동 가능한 병원을 늘리는 일이라고도 덧붙였다.

    문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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