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남편의 착각, “밥 줘” vs “알아서 챙겨 드세요”

[김용의 헬스앤]

은퇴한 남편은 직접 밥도 하고 빨래, 청소도 해야 한다. 배우자 사망 후 아내보다 남편이 훨씬 일찍 죽는다는 논문은 의미심장하다. 나이 든 아내와 가사 분담은 결국 나의 건강을 위한 것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례 1) 중년 돌싱 대상 소개팅 프로그램에서 한 남성 출연자가 “혼자 된 지 오래돼 밥하기가 힘들다. 이젠 아내가 해주는 밥을 먹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 남성에 호감을 가졌던 상대 여성의 표정이 굳어졌다. 내심 “밥하는 여자를 구하러 소개팅에 나온 것인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남성의 의도와는 달리 ‘말 실수’ 하나로 좋았던 이미지가 구겨졌다.

사례 2) 비싼 실버타운에서 살고 있는 노년 여성에게 물었더니, “밥, 청소 등 가사를 안 하니 너무 좋다”고 말했다. 실버타운은 대개 식사-청소 서비스를 제공한다. 여성들이 수십 년 동안 반복해온 식사 준비 등 가사 부담이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남편은 정년퇴직해서 여유롭지만 여성은 ‘가사 퇴직’이 없다.

일부 중년 여성들이 ‘삼식이’이란 말을 쓰는 경우가 있다. 퇴직 후 종일 집에 머물며 “밥 줘”를 외치며 아내에게 삼시세끼를 의존하는 일부 남편들이다. ‘삼식이’는 아내의 불만이 담겨있는 말이다. 퇴직 후 몇 개월 동안은 위로를 해주고 배려를 하지만 1년이 넘었는 데도 ‘삼식이’ 노릇을 하면 열불이 날 수밖에 없다. ‘삼식이’ 때문에 마음대로 외출도 못 하니 불만이 더 쌓인다.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부부가 함께 하는 시간도 길어지고 있다. 퇴직 후에도 20~30년을 같이 살면서 부대낄 수밖에 없다. 남편이 90세까지 끼니 때마다 “밥 줘”를 외친다면 아내의 인내심도 바닥을 칠 것이다. 100세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선 남편의 가사 분담이 필수다. 가사를 ‘돕는’ 차원이 아니라 아내와 ‘분담’해야 공평하다. 남편은 의자에 기대어 느긋하게 TV만 보고 80대 중반의 아내가 주방에서 일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싫은 모습이다.

배우자가 사망한 경우 아내보다 남편이 훨씬 일찍 죽는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주목받고 있다. 특히 노년 남편은 아내에게 의지하는 경향이 커 아내 사별 후 이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일찍 죽는다는 것이다. 덴마크 코펜하겐대 연구팀이 65세 이상 덴마크 노인 약 92만 5000명을 대상으로 6년 동안 추적-조사한 대규모 연구다.

그 결과 65세~69세 남편이 아내와 사별하면 그 다음 해에 사망할 확률이 아내가 생존한 남성에 비해 70% 더 높았다. 반면 아내의 경우 이러한 위험 증가율은 27%에 불과했다. 배우자 사별 후 남편이 일찍 사망할 가능성이 배우자를 잃은 아내에 비해 2.6배 높았다. 아내와 사별한 남편은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의료비가 크게 증가했다. 병원을 들락거리다가 결국 일찍 사망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아내가 남편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돌보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일 것 ”이라면서 “배우자를 잃은 이들을 돌보기 위한 재택 간호 지원, 고립감 해소 정책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별의 상실감은 남편이 더 크다. 여성은 주위와 소통하면서 도움을 받지만 남성은 고립감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특히 아내의 간병에 의지했던 병든 남편은 사별 후 건강악화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아내에게 의존하는 중년-노년 남편의 습성은 동서양을 가릴 것 없이 비슷한 것 같다. 밥 해주고 정신적으로 위안이 되던 아내가 사라지면 남편은 신체적-정신적으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병든 배우자를 간병하는 경우도 아내가 훨씬 더 많다. 특히 주방에서 물 한 번 묻히지 않은 고루한 남편은 아내 사별 후 ‘생존’이 어렵게 된다. 식사 준비가 어렵고 귀찮아서 영양섭취에 부실해 지면 건강이 나빠진다.

요즘은 한국도 맞벌이가 많아 젊은 부부들은 가사를 분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동양, 서양 모두 과거 방식에 사로잡힌 중년-노년 남편이 문제인 것 같다. 내 건강을 위해서라도 나이 들수록 몸을 움직여야 한다. 92세의 한 남성은 매일 집안 청소로 건강을 유지한다고 했다. 거실-방을 쓸고 닦으면 금세 땀이 쏟아져 옷이 젖는다고 했다. 무엇보다 89세 아내가 좋아해서 더욱 신바람이 난다고 했다. 식사 준비와 설거지도 같이 한다. “오늘 무엇을 먹을까?” 고민할 때 젊었을 적 아내의 고충이 이해된다고 했다. 100세 시대 바람직한 부부상이 아닐 수 없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집안 정리, 청소 등 가사도 건강수명을 위한 훌륭한 신체활동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노년에 축구, 농구를 할 것인가? 주방을 들락거리고 청소를 하다 보면 운동효과를 제대로 누릴 수 있다. 평생 운동과 거리가 먼 할머니들이 100세를 사는 이유도 평소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중년-노년 남편도 집에서 ‘자립’을 해야 한다. 직접 밥도 하고 빨래, 청소도 해야 한다. 배우자 사망 후 아내보다 남편이 훨씬 일찍 죽는다는 논문을 가슴에 새겨보자. 나이 든 아내와 가사 분담은 결국 나를 위한 길이다. “밥 줘”가 아니라 ‘알아서 챙겨 먹는’ 남편이 돼야 한다. 그것이 100세 시대를 준비하는 남편의 생존법이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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