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박수 증가와 불안감, 무엇이 먼저?

뇌가 아니라 심장박동 조절로 정서장애 치료 가능할 수도

불안이 심장을 더 빨리 뛰게 하는 걸까? 아니면 심박수 증가가 불안을 유발하는 걸까?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말하거나 공연할 때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목이 마르고 땀이 줄줄 흐르면서 심장 쿵쾅거리는 소리가 옆 사람에게 들릴까봐 걱정될 정도다. 불안이 심장을 더 빨리 뛰게 하는 걸까? 심박수 증가가 불안을 유발하는 걸까?

심박수가 빨라져 불안이 유발되는 것임을 시사하는 동물실험 결과가 나왔다. 1일(현지시간) 《네이처》에 발표된 미국 스탠포드대 연구진의 논문을 토대로 과학전문지 《사이언스》가 보도한 내용이다.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심장과 뇌 사이의 누화(서로 다른 전송 선로 상의 신호가 다른 회선에 영향을 주는 현상) 가 정신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의심해 왔다. 종전 연구는 심박수를 안정적으로 높일 수 있는 이소프로테레놀(isoproterenol) 같은 약물을 개인에게 투여한 뒤 뇌 영상으로 뇌 활동을 관찰하고 사람들에게 불안 또는 공포를 느끼는지 물었다. 천연적으로 발생하는 아드레날린을 모방한 이런 약물은 전신에 작용한다. 이 때문에 심장과 뇌의 연결 축에서 심장만 따로 떼어놓고 분석할 수는 없었다.

연구책임자인 스탠포드대 칼 데이세로스 교수(신경학)는 공황장애 환자가 종종 심장질환에도 걸린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불안과 공황 발작의 전형적인 징후 중 하나는 심박수가 분당 100회 이상 되는 빈맥(頻脈)이다. 게다가 2010년 발표된 네덜란드 연구진의 연구에 따르면 불안증이 있는 사람은 관상동맥 질환에 걸릴 위험이 26% 더 높다.

데이세로스 교수팀은 뇌와 심장의 연결을 분리하기 위해 조류(藻類)에서 발견되는 크르마인(ChRmine)이라는 빛에 민감한 단백질을 활용했다. 이 단백질은 하전( 물체가 띠고 있는 정전기의 양) 입자가 세포로 유입되는 것을 통제하는 출입문 같은 역할을 한다. 크르마인 게이트는 평소에는 닫혀 있다가 빛에 노출되면 문이 열리면서 주로 칼륨이온 같은 하전 입자가 세포로 유입된다.

연구진은 몸통에 마이크로발광다이오드 전구가 장착된 조끼를 착용한 살아있는 생쥐의 심장 근육 세포에 크르마인을 주입했다. 그런 다음 전구에서 나온 빛이 생쥐의 피부를 투과해 심장세포 내의 크르마인을 활성화시켰다 이를 통해 생쥐의 심장을 더 빠르게 뛰게 하는 작고 비침습적인 심장 박동조율기가 만들어졌다. 연구진의 한 명인 스탠포드대 박사후연구원 리치 첸(생명공학)은 “전구를 키거나 끌 수 있는 이 웨어러블을 사용해 심박수를 제어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안정됐을 때의 생쥐의 심박수는 일반적으로 약 600bpm이지만 빈맥을 유도하기 위해 연구진은 실험대상이 된 생쥐의 심박수를 약 900bpm으로 높였다. 그리고 나서 생쥐를 한쪽은 열린 공간, 다른 쪽은 닫힌 공간으로 구성된 미로에 넣었다. 심박수가 높아진 생쥐는 열린 공간을 피하고 폐쇄된 공간에 머무르는 것을 선호했는데 이는 일종의 불안 행동으로 해석된다. 데이세로스 교수는 이 미로 실험을 통해 “심박수를 높이면 불안감이 높아지는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 분명해졌다”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어 생쥐의 심박수가 높아졌을 때 뇌 영역에서 유전자가 활성화되거나 전기활동이 촉발돼 신호가 켜지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신체의 생리적 정보를 분석하는 데 관여하는 영역, 특히 대뇌 섬피질이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대뇌 섬피질은 감정 조절을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이 유사한 빛에 민감한 단백질을 사용하여 섬피질의 신경 신호를 차단하자 쥐는 미로의 열린 공간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이는 심박수가 여전히 치솟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분한 정신 상태를 시사하는 결과였다.

연구진은 앞으로 몇 주 또는 몇 달에 걸쳐 심박수를 증가시켰을 때 불안이나 우울증과 같은 행동이 증가하거나 악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동물실험을 계속 할 예정이다. 이 연구 결과가 사람을 대상으로 재현될 수 있다면 정신질환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약물은 완벽하지 않으며 효과가 나타나는 데 수개월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심장을 통해 치료하는 것이 더 빠르고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특히 심박수를 낮추는 방법을 찾는 것이 불안과 우울증과 같은 기분 장애를 치료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논문을 검토한 막스 플랑크 정신의학연구소의 나딘 고골라 연구원(신경과학)은 “신체가 감정을 유발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라면서 “심장을 조작하는 것은 뇌를 조작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는 점에서 불안이나 우울 장애 환자를 위한 새로운 치료 전략이 마련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해당 논문은 다음 링크(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3-05748-8)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건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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