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와 모국어 들었을 때…뇌의 반응은?
5개 언어 이상의 다언어구사자에 대한 연구 결과
아무리 외국어에 유창한 사람이라도 모국어와 외국어에 반응하는 뇌의 활성화 정도가 다르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생물학 논문 사전공개 사이트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발표된 미국과 영국, 캐나다 연구진의 논문을 토대로 과학전문지 《사이언스》가 최근 보도한 내용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살면서 모국어 외에 한두 개의 외국어를 배우게 된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5개국어 이상을 구사하는 사람을 영어로 ‘폴리글롯(polyglot)’이라 부른다. 또 미국 워싱턴 DC에 사는 카펫 청소부로 24개국어를 구사하는 본 스미스(47)처럼 10개국어 이상을 구사하는 사람은 ‘하이퍼폴리글롯(hyperpolyglot)’이라 부른다.
매사추세츠공과대(MIT)의 인에브 페도렌코 교수(인지신경과학)는 지금까지 폴리글롯과 하이퍼폴리글롯 같은 다언어구사자의 뇌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었다고 지적했다. “세계 인구의 1%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적기 때문에 연구를 위한 충분한 참가자를 찾기 어려워서”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들을 연구하게 되면 인간의 뇌중에서도 왼쪽 전두엽과 측두엽에 위치한 ‘언어 네트워크’ 영역 이해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페도렌코 교수는 이를 위해 하버드대의 다언어학자인 사이마 말리크-모랄레다와 손을 잡고 미국과 영국, 캐나다의 다언어구사자 25명을 끌어 모았다. 그중 9명은 폴리글롯, 16명은 하이퍼폴리글롯이었는데 가장 많은 언어를 구사하는 1명은 무려 50개국어까지 구사했다.
연구진은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통해 이들이 구사할 수 있는 언어를 듣게 됐을 때 뇌의 어느 영역이 활성화되는지를 조사했다. 25명의 다언어구사자들은 fMRI 기계 안에 들어가 8개의 다른 언어 중 하나로 구성된 16초 길이의 일련의 녹음을 들었다. 기독교 성경이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은 작품에서 무작위로 선택된 텍스트였다.
8개 언어는 참가자들의 모국어, 그들이 나중에 배워 익숙해진 3개의 외국어,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4개의 언어가 포함됐다. 4개의 낯선 언어 중 둘은 참가자의 모국어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에겐 이탈리어어와 유사한 스페인어 같은 언어였다. 다른 2개의 낯선 언어는 관련성이 없는 다른 어족의 언어였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이 8개의 언어를 들었을 때 혈류가 항상 같은 뇌의 영역으로 흐르는 것을 발견했다. 참가자들의 뇌는 어떤 언어를 들었는지에 상관없이 소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위해 ‘언어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언어 네트워크의 활성화 정도는 참가자들이 언어에 얼마나 능통하냐에 따라 달랐다. 언어가 더 친숙할수록 더 뚜렷한 반응을 보였다. 참가자들이 잘 알고 있는 언어와 밀접하게 관련된 낯선 언어를 들었을 때 특히 활성화됐다. 이는 언어 네트워크 영역이 언어 간의 유사성을 기반으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초과 근무를 한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규칙에는 한 가지 예외가 존재했다. 모국어를 들을 때는 활성화 정도가 잠잠해졌다. 이러한 경향은 참가자들이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외국어를 들을 때도 유지됐다 이는 인생의 초창기에 배운 언어를 처리하는 데 더 적은 지능이 필요함을 보여준다고 풀이될 수 있다.
전문지식에 익숙해지면 지능의 사용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말리크-모랄레다는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면 뇌 용량을 덜 사용하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어린 나이에 학습할 때 인지 효율성이 최고조에 도달할 가능성이 더 높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페도렌코 교수는 뇌가 언어를 배우는 데 필요한 것을 이해하는 것은 언젠가 뇌졸중이나 뇌손상 후 언어능력을 회복하려할 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해당 논문은 다음 링크(https://www.biorxiv.org/content/10.1101/2023.01.19.524657v1)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