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울제, 감정반응 무디게 만들 수 있어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 복용하면 감정반응 무뎌져
널리 사용되는 항우울제가 감정반응을 무디게 만들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23일(현지시간)《신경정신약리학(Neuropsychopharmacology)》에 발표된 영국과 덴마크 연구진의 논문을 토대로 영국 가디언이 보도한 내용이다.
연구진은 건강한 자원봉사자들이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를 3주 동안 복용한 후 긍정적인 피드백과 부정적인 피드백에 무디게 반응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부정적인 감정에 무디게 반응하게 하는 것은 우울증 회복에 도움을 주는 방법의 일부일 수 있지만 이 약의 일반적 부작용도 설명해준다.
연구책임자인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바버라 사하키안 교수는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이 느끼는 정서적 고통을 어느 정도 덜어주지만 안타깝게도 정서적 즐거움도 빼앗아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항우울제가 많은 환자에게 유익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 이번 연구결과는 해당 약물을 선택할 때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를 미리 알고 대처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유용하다고 밝혔다.
영국 국가의료보험기관인 국립보건시스템(NHS)에 따르면 2021~2022년 영국에서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사람의 숫자는 830만 명이 넘는다. SSRI는 가장 널리 사용되는 항우울제의 하나로 사람의 기분에 영향을 끼치는 신경전달물질의 하나인 세로토닌이 신경세포 수용체에 재흡수 되는 것을 차단해 세로토닌의 농도를 높여 우울증을 치료하는 약물이다. 모든 우울증 환자는 아니지만 대부분에게 효과적이다.
2021년 발표된 중국 연구진의 논문은 SSRI가 감정적으로 지루함을 느끼거나 즐거움을 덜 느끼게 만드는 부작용이 복용환자의 약 40~60%에서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이 증상이 약물 부작용인지 우울증의 일부인지는 불명확했다. 이번 연구는 약으로 인해 감정적으로 둔감해질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했다.
66명의 지원자들은 일련의 인지 테스트를 하기 전에 최소 21일 동안 SSRI 약물인 에스시탈로프람과 위약을 무작위로 투여 받았다. 주의력과 기억력을 평가하는 시험을 포함한 거의 모든 시험에서 아무런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다. 사하키안 교수는 "이 약은 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서 ”그런 측면에선 매우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SSRI 복용군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피드백에 반응을 보여야하는 강화학습에선 적은 반응을 보였다. 강화학습은 화면에서 A와 B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고 A를 선택하면 5번 중 4번은 보상을 받고 B는 5번 중 1번만 보상을 받는 거였다. 참가자들은 이를 몇 차례 되풀이하다 보면 A를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확률이 계속 바뀌기 때문에 그 때마다 새로운 규칙을 배워야 한다. SSRI 복용군은 평균적으로 이러한 피드백 변화에 대응하는 속도가 상당히 느린 것으로 나타났다.
또 SSRI 복용군은 설문조사에서 성관계를 가질 때 오르가슴에 도달하는 데 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는 환자들에 의해 종종 보고되는 또 다른 부작용이다.
논문을 검토한 옥스퍼드대의 캐서린 하머 교수는 이 논문이 환자와 관련이 있는 SSRI 약물의 작용에 대한 중요한 통찰력을 주었고 또한 부작용을 개선하는 약물 개발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환자의 60%가 감정반응의 둔화를 경험했다는 결과는 “과도한 평가일 수 있다”면서 “이번 연구결과를 ‘약을 복용하지 말라’는 뜻으로 확대해석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