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암환자의 마지막 선택.. 품위 있는 죽음은?
“회생 가능성도 없는데 기계를 온몸에 주렁주렁 달고 연명하고 싶지 않아요. 가족들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임종기에 접어든 환자가 연명의료를 포기하면서 건네는 말에는 품위 있는 죽음과 가족에 대한 사랑이 담겨있다. 죽음을 앞둔 말기 환자의 마지막 선택은 연명의료에 대한 고민이다.
최근 병세가 나빠져 병원에서 치료 중인 정진석 추기경(90세, 천주교 전 서울대교구장)이 연명치료 거부와 함께 장기기증과 사후 각막기증을 서약하면서 연명의료에 대한 관심이 높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정 추기경은 2018년 9월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서명했다. 오래전부터 자신의 죽음을 잘 준비하고 싶어했다”고 전했다. 정 추기경은 이미 2006년에 서약한 뇌사 시 장기기증과 사후 각막기증에 대해 최근 다시 의료진에게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90세의 나이로 인해 장기기증 효과가 없다면 안구라도 기증해서 연구용으로 사용해 줄 것을 직접 청원하기도 했다.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지난 2018년 2월 시행되고 있다. 이 법은 말기-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등을 중단해 품위 있는 죽음을 맞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치료 효과 없이 무의미하게 생명만 연장하는 것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됐다. 환자 본인, 의사와 환자 가족의 합의 등에 의해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지 3년이 지나면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이 80만 명에 이르고 있다. 건강할 때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미리 서류상 밝혀 놓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상황이 제한돼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의향서를 작성해도 중소병원에서 작성한 것은 전산처리 미비로 인해 법 적용을 받을 수 없고 대형병원에서 사망할 때만 현실적으로 유효하다는 것이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2020년 자료를 보면 실제로 연명의료결정의 대부분은 상급종합병원(44.2%)에서 진행됐으며 종합병원 21.8%, 병원 1.8%였다. 노인 환자가 많은 요양병원은 0.3%에 불과했다. 이는 아직까지 연명의료결정 제도가 윤리위원회 설치 또는 의료진과 환자 교육 등의 문제로 병의원이나 요양병원에서 운영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암환자와 비암환자로 구분하면,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암환자는 48.4%였으나 비암환자는 14.1%에 불과했다. 연명의료계획서는 말기 또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의사에게 요청해 연명의료중단 결정 및 호스피스에 관한 의사를 밝힌 문서를 말한다.
연명의료결정을 선택한 주체를 보면 환자가 직접 연명의료 유보 및 중단에 대한 결정을 밝힌 경우가 52.5%, 가족진술에 의한 환자 의사 추정 및 가족전원 합의로 결정된 경우는 47.5%으로 나타났다.
환자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가족 등이 죽음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아직 금기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말기 암 환자가 임종을 앞두고 있는데도 주변 사람들이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을 회피해 상황이 어렵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제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할 때라는 목소리가 많다.
죽음에 대한 의식 개선과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의료인들을 위한 소통 기술, 대화법 등 뿐 아니라 일반인의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품위 있게 삶을 마무리하고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지킬 수 있을까? 마지막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연명의료결정법 제정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