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칼럼] 극한 스포츠를 찾는 이유

[김화성 칼럼] 극한 스포츠를 찾는 이유

나는 늘 고래의 꿈을 꾼다

언젠가 고래를 만나면 그에게 줄

물을 내뿜는 작은 화분 하나도 키우고 있다

깊은 밤 나는 심해의 고래방송국에 주파수를 맞추고

그들이 동료를 부르거나……

……………………………

누구나 그러하듯 내게도 오랜 꿈이 있다

하얗게 물을 뿜어 올리는 화분 하나 등에 얹고

어린 고래로 돌아오는 꿈

-<송찬호 ‘고래의 꿈’에서>

70년대 젊은이들은 청바지 차림에 생맥주를 마시며 ‘고래의 꿈’을 꾸었다. 동해바다로 ‘고래 잡으러 가자’고 울부짖었다. 기성세대들은 개미처럼 일만했다. 두 귀는 아예 꽁꽁 틀어막았다. 캠퍼스는 삭막했다. 도시는 사막 같았다. 우물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젊은이들은 속이 터질 것 같았다. 그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다. 산과 들판이 그들을 키웠다. 도시는 ‘어디가 늪인지, 어디가 뭍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도시가 키운다. 아파트 숲에서 태어나, 빌딩 숲에서 자란다. 콘크리트 숲에서 놀고, 길거리에서 춤을 춘다. 빌딩은 그들에게 산이고, 길거리는 들이다. 산과 들은 둥글다. 하지만 도시는 직선이다. 빌딩은 모두 삐쭉삐쭉한 직사각형. 콘크리트 바닥은 딱딱하다. 일부는 그 ‘직선의 놀이동산’에서 바퀴달린 도구 등을 타고 논다. 바로 익스트림 스포츠다. 스케이트보드, 롤러스케이트, 인라인스케이트, 웨이크보드, 도로썰매타기, BMX(자전거 묘기), 스카이 서핑, 비보이…. 도시는 사막이지만, 도시의 구조물들은 그들에게 멋진 놀이기구일 뿐이다. 도시의 시멘트 광장이나 아스팔트길은 축구경기장이나 육상 트랙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관중이 없으면 어떤가? 언제는 누가 눈길 한번 준 적 있는가?

그냥 도시 뒷골목에서 맨몸으로 노는 아이들도 있다. 쿠션운동화 한 켤레만 있으면 된다. 동네 공원 담벼락을 훌쩍 뛰어넘거나, 담장과 담장을 휙~ 한번에 날아간다. 지붕과 지붕을 가볍게 훌쩍 뛰어넘는 프로도 있다. 원, 세상에! 8층 건물 옥상에서 5층 건물 옥상으로 고양이처럼 가볍게 뛰어내리는 아이들. 바로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신종 익스트림스포츠 야마카시(Free Running·파쿠르)다.

야마카시란 아프리카 랑갈라어로 ‘강인한 사람’ 즉 ‘초인’을 뜻한다. 일본어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1990년 프랑스 젊은이들이 맨몸으로 건물 오르기를 하면서 시작됐다. 이들에게 도시의 모든 구조물은 다 놀이 대상이다. 건물 오르기는 나무 타기나 똑같다. 담장을 뛰어넘는 것은 개울을 훌쩍 뛰어넘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한국엔 2003년 4월에 들어왔다. 김영민 김영수씨 등 몇몇 마니아들이 인터넷카페(cafe.daum.net/yamakasikorea)를 만들고 보급에 나선 것. 영화 ‘13구역’에선 야마카시 창시자 중의 하나인 데이비드 벨이 직접 출연해 각종 묘기를 펼친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넘고, 고층 건물을 맨손으로 기어오른다. 기계체조 선수보다 더 현란한 텀블링, 유도선수보다 더 부드러운 낙법, 거미인간보다 더 능숙한 건물 타기…. 모두 입이 떡 벌어진다.

‘야마카시’나 ‘프리러닝’ ‘파쿠르’는 이름만 다르지 다 똑같다. 창시자 그룹이 분화되면서 이름도 달라졌다. 가령 1인자 데이비드 벨이 이끄는 그룹은 ‘파쿠르’라고 하고, 여기서 떨어져 나온 2인자 세바스챤 푸캉이 이끄는 그룹은 ‘프리러닝’이라고 하는 식이다. 야마카시는 현재 프랑스 일류고수들이 모인 클럽 이름이기도 하다. 2000년 프랑스에서 개봉된 영화 ‘야마카시’로 널리 알려졌다. 프랑스나 영국 등 유럽엔 젊은이들이 야마카시를 맘껏 즐길 수 있는 공원도 있으며 전국 규모의 대회도 있다.

야마카시 마니아 중엔 중고생들이 유난히 많다. 청룡열차나 바이킹을 탄 것처럼 기분이 짜릿하다는 것이다. 남들이 안 하는 것을 즐기는 10대들 특성도 한 몫 한다. 2년 경력의 중학교 조정선수인 정성환군은 “TV에서 처음 보고 ‘저건 내꺼’라는 필이 확 꽂혔다. 현재 내 인생에서 이걸 빼면 아무것도 없다. 이건 해본 사람만 안다. 너무너무 좋다.”며 몸 풀기에 바쁘다. 3년 경력의 대학생 노국래군은 “우슈(1단)를 하다가 야마카시 재미에 빠졌다. 공중에 떠있을 때, 귀에 스치듯 들리는 바람소리가 날 미치게 한다. 게다가 짧은 순간이지만 내가 영원히 떠있을 것 같은 그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야마카시는 경쟁자가 없다. 자신과의 싸움이다. 이걸 하면서부터 모든 일에 자신감이 커졌다”고 말한다.

대부분 익스트림 스포츠의 주인공은 신세대들이다. 영화나 CF가 그걸 놓칠 리 없다. 2000년 프랑스에서 제작된 영화 ‘야마카시’엔 7명의 실제 야마카시가 등장한다. 컴퓨터그래픽, 스턴트 맨, 와이어 등은 전혀 쓰지 않는다. 100% 맨몸 액션. 아이들은 그걸 보고 자지러지고 까무러진다. 햐아! 그만 침이 꼴깍 넘어간다. 캐논 디지틀 카메라 CF에서 카메라를 들고 건물 사이를 뛰어넘는 것도 창시자 중 1인자로 인정받고 있는 데이비드 벨이다. 영화 ‘007 카지노 로얄’ 초반부 추격전도 마찬가지. 야마카시 2인자 세바스챤 푸캉이 건물과 건설 장비를 훌쩍훌쩍 뛰어넘는 묘기를 펼친다.

익스트림 스포츠 중엔 널리 알려진 것들도 있다. 산악자전거(MTB), 번지점프, 래프팅, 윈드서핑, 서바이벌 게임, 스노보드, 스키보드, 스노크로스, 스포츠 클라이밍…. 하지만 산악자전거 등은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쓸 만한 자전거 한대 값이 자그마치 600만~700만원. 1000만원 넘는 게 보통이다. 게다가 번지점프, 래프팅, 서바이벌 게임 등은 이미 신세대들에겐 ‘꼴은 것’이고 ‘쉰 것’들이다. 한참 놀다가 싫증이 나서 버려둔 장난감 같은 것이다. 아이들은 남들이 많이 하는 것엔 금세 싫증을 느낀다.

어른들이라고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지 말란 법은 없다. 아이들이 도시에서 주로 논다면 어른들은 ‘좀 더 센 것, 좀 더 힘든 것’에 올인 한다. 그들은 충동적이지 않다. 하나하나 계단을 밟아 나간다. 마라톤에 싫증이 나면 울트라마라톤(42.195km보다 더 긴 거리)이나 철인3종 경기에 빠진다. 그러다가 그것도 시시해지면 본격적으로 극한마라톤에 도전한다. 서울 100마일(160km)마라톤대회, 제주일주 200km 및 한라산 종주 148km대회, 서해강화도~동해강릉 308km대회, 부산태종대~임진각 537km 대회, 전남해남 땅끝~강원고성 643km대회 등이 바로 울트라마라톤대회다. 국내에만 50여개나 있다. 30~50대가 주 연령층. 마니아만 1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1년 동안 펼쳐지는 챌린지컵이란 것도 있다. ‘24시간 달리기(봄)-철인3종 경기(여름)-100km 카누(가을)-100km 크로스컨트리(겨울)’를 모두 통과하는 것이 그것이다.

2005년 첫 대회에서 우승한 프랑스 외인부대 출신 김연수(39)씨는 충남 보령 출생으로 특전사에서 군복무를 했고 지옥 훈련으로 악명 높은 프랑스 외인부대에서 3년간 생활했다. 그는 말한다.

"모든 코스를 끝내 시원하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완주했다. 외인부대에서 3년간 생활하면서 극한 상황에서 생존하는 법을 터득 했고 그런 점이 이번 대회에 도움이 됐다. 특히 외인부대 시절 알프스 산맥에서 한달 동안 온갖 고생을 하며 스키를 연마했기에 마지막 크로스컨트리에서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처음 타보는 아웃리거 카누에서는 추위와 조류 때문에 고전했다"

국내가 답답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아예 밖으로 눈을 돌린다. 만리장성 달리기, 툰드라달리기, 안데스산맥 가로지르기, 에베레스트산맥 가로지르기, 북극마라톤, 자전거로 히말라야 능선 넘기 등에 나선다. 그러다가 마침내 세계4대 극한마라톤에 도전한다. ①이집트 사하라사막마라톤(250km) ②중국 고비사막마라톤(250km) ③칠레 아타카마사막마라톤(250km) ④남극마라톤(250km)이 그것이다. 남극마라톤은 앞의 3대 사막마라톤을 모두 완주한 사람만이 참가할 수 있다. 참가비용도 1만5000달러나 된다.

사막마라톤엔 참가자들이 직접 옷, 식량 등 자기가 필요한 물품을 짊어지고 7일 동안 달린다. 보통 대회조직위에서는 숙박텐트와 하루 물 9L를 제공하는 게 전부다. 섭씨 50도를 웃도는 한낮 더위와 영하로 떨어지는 밤 기온, 시도 때도 없이 불어 닥치는 모래바람을 뚫고 달려야 한다.

산소가 희박한 에베레스트 고산마라톤도 눈길을 끈다. 1953년 5월29일 셰르파 텐징과 뉴질랜드 힐러리가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것을 기념하기 위해 2003년(5월29일)부터 ‘텐징·힐러리 마라톤대회’를 열기 시작했다. 코스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5364m)~남체 바자르(3440m)의 42.195km. 우승기록은 4시간 안팎.

죽느냐, 사느냐의 ‘지옥의 레이스’도 있다. 킬스 배드워터 울트라마라톤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에서 해발이 가장 낮은 캘리포니아 사막 데드밸리 배드워터(-85m)를 출발해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3개 봉우리를 거쳐 위트니포털스 정상(2533m)에서 끝나는 215km 코스다. 죽음의 계곡 데스밸리는 낮 평균기온이 무려 섭씨 50도. 한증막 속에서 달리는 것과 같다. 참가자들은 출발 후 처음 20시간까지는 잠을 잘 수 없으며 60시간 이내에 주파해야 컷오프를 당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엄청난 상금이 있는 것도 아니다. 48시간(선수들 평균기록)이내에 들어온 선수에 한해 달랑 참가기념 허리띠 장식물 하나를 줄 뿐이다. 160km이상을 달려본 적이 없는 사람에겐 아예 참가자격조차 주지 않는다. 참가자들 중엔 이 대회를 위해 매일 90도가 넘는 사우나에서 1시간가량 땀을 빼고, 3시간 넘게 오르막길 달리는 훈련을 하는 사람도 있다. 야간 달리기에 익숙해지기 위해 새벽까지 야간달리기 훈련을 하는 사람도 있다. 우승기록은 22시간대 안팎. 미국의 피부모발업체인 킬스가 후원하는 이 대회는 1977년에 시작됐다.

등산패턴도 비슷하다. 산에 오르다가 싫증이 나면 암벽타기 쪽으로 눈을 돌린다. 북한산 인수봉(810.5m)엔 바윗길이 60여개 있다. 도봉산 선인봉(708m)엔 40여개의 루트가 있다. 인수봉은 1925년 한 외국인이 첫 발을 밟은 이래 1930년대부터 많은 루트가 개발됐다. 밑쪽 둘레 400~500m, 높이 약 200m의 화강암. 여의도 63빌딩(264m)보다 조금 낮다. 미국 요세미티 계곡의 거대한 화강암절벽 엘 캐피탄(2695m)엔 1000개가 넘는 길이 있다. 엘 캐피탄은 수직 바위만 1086m.

하지만 종착역은 결국 히말라야다. 요즘은 히말라야도 어떻게 오르느냐가 중요하다. 단독 무산소등정은 기본. 96년 한스 카말란더는 에베레스트를 무산소 단독등정 한 뒤 꼭대기에서 사상 처음으로 스키활강으로 내려왔다. 요즘은 패러글라이딩으로 내려오는 산악인도 있다. 암벽은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 루팔벽이 가장 유명하다. 중앙 직등 루트의 수직암벽이 무려 4500m나 된다. 안나푸르나 북서벽 4000m, K2 남쪽암벽 3200m, 몽블랑 수직벽 3960m, 쉽게 부스러지는 석회암 암벽인 알프스 아이거수직북벽은 1830m. 무시무시하다.

똑같은 암벽이라도 어느 길로 올랐느냐가 중요하다. 아무도 가지 않은 가장 어려운 길. 소위 난이도가 가장 힘든 코스다. 난이도는 1950년대 말 미국에서 정립된 ‘요세미티 십진법 등급체계(YDS)’가 보편화됐다. 암벽등반은 5.0급부터 시작된다. 보통 5.4급 이하는 특별한 암벽등반 기술이 없어도 오를 수 있는 루트, 5.4~5.7급은 기본적인 기술을 요하는 루트, 5.7~5.9급은 지속적인 훈련과 안전장치를 능숙하게 사용해야 오를 수 있는 루트다. 5.10급은 처음 등급을 만들 당시엔 최고난도 루트. 세계적인 암벽화 회사 ‘파이브 텐’이라는 브랜드도 여기서 나왔다.

하지만 5.10급보다 더 어려운 루트가 나타나자 5.10a, 5.10b, 5.10c, 5.10d급으로 표시했다. 이런 식으로 70년대엔 5.11abcd가, 80년대부터 5.12abcd, 5.13abcd, 5.14abcd의 난이도가 차례로 추가됐다. 현재 최고 등급은 5.15b. 미국 캘리포니아 타호 레이크에 있는 ‘그랜드 일류전’은 '5.13d'이고, 독일 프랑켄유리의 145도로 기울어져 있는 길이 12m의 오버행 암벽 ‘액션 다이렉트’는 5.14d의 고난도 등급이다. 국내 암벽은 5.14급까지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람에 따라 그 평가가 조금씩 다르다.

미국의 로열 로빈스는 ‘거벽의 철학자’로 통한다. 그의 놀이터는 요세미티 국립공원. 1957년 요세미티 하프 돔 북서벽을 초등했고 1968년엔 엘 캐피탄 단독초등에 성공했다. 그는 말한다.

“바위에 오르는 것은 소년이 맨발로 나무에 오르는 것과 같다. 그것은 즐거운 놀이이며 새롭고 흥미로운 것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렇다. 놀이는 변한다. 기성세대들은 ‘더 빨리, 더 멀리, 더 높이’를 추구한다. 요즘 아이들은 ‘더 짜릿짜릿, 더 아찔아찔, 더 아슬아슬’을 즐긴다. 더 새롭고, 더 신기하고, 더 퓨전적인 것에 정신없이 빠져든다. 비보이나 야마카시가 바로 그 좋은 예다. 이것들은 도시가 낳은 놀이다. 기성세대에게 도시는 ‘복잡하고 숨 막히지만, 어쩔 수 없이 사는 곳’이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에게 도시는 ‘삶의 터전이자 놀이터’이다. 건물은 나무이고, 콘크리트 광장은 들판이고, 아스팔트도로는 논둑길이다.

어른들은 ‘더 힘들고, 더 자극적인 것’을 찾는다.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 싶어 한다. 아이들은 그냥 논다. 순간을 즐긴다. 어른들은 한발 한발 앞으로 나간다. 산꼭대기에서 발엔 스키, 등엔 패러글라이딩을 매고 내려오는 것이 바로 그렇다. 패러글라이딩이나 스키 하나만으론 성이 안 차는 것이다.

익스트림 스포츠는 퓨전이다. 도시적이다. 극한적이다. 독창적이다. 아슬아슬하다. 짜릿하다. 때론 돈이 많이 든다. 어른들이 하는 익스트림 스포츠일수록 더욱 그렇다. 10년 후엔 ‘더! 더! 더!’ 그럴 것이다. 야마카시를 즐기는 지금의 10대들이 20대가 될 때쯤이면 이미 야마카시보다 더 짜릿한 것이 유행할 지도 모른다. 지금의 극한마라톤은 한물갔을지도 모른다. 미국 캘리포니아 죽음의 계곡(215km) 달리기인 ‘배드워터 울트라마라톤’ 같은 게 올림픽보다 더 인기를 끌지도 모른다. 언젠간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로 날아가 ‘달 사막마라톤’ 같은 걸 할지도 모른다.

[사진1 출처 : GertjanVH/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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