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깨우고 귀신 쫓고...신묘한 종들의 사연
●이재태의 종 이야기 (1) / 칼럼을 시작하며
종은 세계에 널리 분포되어 있으며 각각의 문명이나 나라에 따라서 그들의 종에는 뚜렷한 문화적인 차이가 내재되어 있다. 종을 둘러싼 신기한 전설도 많고, 자연 재해를 이기고자 하는 특별한 힘이나 역병이나 마법을 없애주는 영험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 고대시대부터 사람들은 신들과 소통하거나 영혼이 된 조상이나 초자연의 말씀을 듣기위하여 종을 울렸고, 근대에는 인간과 인간과의 소통을 위하여 종을 만들었다. 이제는 기계 소리, 녹음한 멜로디에 자리를 내어 주었으나, 아직도 종소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평화롭고 인정이 넘쳤던 옛날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가슴깊이 지니고 있다.
우리가 어릴 때에는 어디서나 종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학창시절에는 자명종 소리로 잠에서 깨어나 하루를 시작하였고, 학교 수업시간은 교무실에서 치는 종소리로 시작하고 끝을 맺었으며, 이른 새벽에 은은하게 온 동네로 울려 펴지던 성당과 교회의 종소리는 신자가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길거리에는 따르릉 자전거 소리가 있었고 시골 외양간 황소의 워낭소리는 풍요로움의 상징이었다.
종소리의 추억을 기억해내고, 아름다운 종들을 수집하기 시작한지 20년 이상이 지나니 이제는 예상치도 못하게 종 수집가로 알려지게 되었다. 물론 내 스스로 생각하는 멋있는 수집가의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하였으나, 나의 종에 대한 사랑에 제법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자되었던 것 같다. 그 시작은 1992년부터 2년간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연구원 생활을 할 때, 우연히 내가 살던 동네의 벼룩시장에 갔다가, 조그만 좌판위에 아기자기한 소품과 종을 파는 아주머니를 만남으로서 시작되었다. 이 벼룩시장은 봉사 클럽의 주최로 매달 마지막 토요일에 열렸고, 그 수입을 학생들을 위한 공공도서관의 도서 확충에 기증하는 자선 활동이었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팔던 조그만 도자기 종은 동화에 등장하는 신데렐라, 백설공주, 피터팬이나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소년이나 소녀 모양을 한 도자기 종이었다. 그날 도자기 인물 종 10개 모두를 10불에 구입한 것이 나의 종 수집의 시초가 되었다. 아주머니는 자기의 어머니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는데, 어머니가 생전에 애지중지 모은 작은 종들은 자기에게 필요하지 않기에 벼룩시장에 가지고 왔으며, 혹시 종에 관심이 있으면 다음 달에도 어머니가 남긴 종들 중에서 집에 남아있는 것을 벼룩시장에 가지고 오겠다고 하였다. 이후 두 달 동안 이 아주머니에게서 일본, 한국, 대만, 중국, 태국, 필리핀 등에서 만들어 미국에 수출한 40개의 귀여운 도자기 종을 구입하였고, 2년간의 미국생활 후 귀국할 때까지 틈틈이 200여개의 종을 모았다. 우리나라는 종교적인 의식 외에는 종을 사용하는 문화가 아니어서 주변을 돌아보아도 멋있는 종을 찾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해외여행을 할 때마다 눈에 보이는 종을 구입하였으나 짧은 기간 동안의 학술대회에 참석하는 여행 일정상 그 도시의 기념품 종외에는 특별한 종을 수집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외국 여행시에 종을 구입하기 위해 현지의 벼룩시장을 둘러보았고, 길거리를 지날 때에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인터넷을 비롯한 디지털 세상으로의 변화는 나의 수집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1990년대 후반 오랜 전통의 미국 종수집가협회(ABA, American Bell Association)에 가입하게 되었다. 거기에는 종에 미친 많은 아마추어 수집가들이 그들의 수집품을 소개하고 종에 대한 전문가적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이 들도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하였음이 분명하나, 서로 도와가며 만든 그들의 잡지나 책에 기록된 종에 대한 기록은 실로 깊고 방대하였다. 세상에 종에 미친 매니아, 일본말로 오다쿠라 불리우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도 경이로웠지만 그 할아버지 할머니 회원들이 종에 대한 역사와 지식을 기록한 전문서적들의 깊이와 이를 만든 그들의 열정에 정말 감동했기에 나도 배운 사람답게 무었을 제대로 알고 그 바탕 위에서 어떤 것을 수집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내가 수집하는 종들도 관광지에서 판매하는 기념품에서 벗어나 가끔은 품격있고 예술적인 종들도 찾아내기 시작하였다. 이후 외국에서 발행된 책과 인터넷 검색으로 많은 지식을 가질 수 있었고, 외국의 경매 사이트나 종 수집가들의 잡지를 통하여 새로운 수집품들을 확충해 나갔다.
가끔은 종을 수집하는 것이 나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하고 생각해본다. “수집”은 사라져 가는 물건에 다시 혼을 불어넣어 살려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수집(蒐集)의 원래 한자 뜻은 수풀 속에 숨은 귀신을 불러 모으는 것이라는데, 물건에 혼을 다시 불어넣어 주는 것은 귀신이 할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난 30여 년간 우리 인간의 육체가 명멸하지 않게 혼신의 힘을 다하여야 하는 의사로서 살아왔으니, 영혼이 사라지는 그 무엇에 다시 혼을 불어 넣을 수 있다면 그 어떤 일보다 더 사명감을 가지고 해 볼 수 있는 유쾌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그간 내가 수집하였던 거의 10,000점에 가까운 종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그들이 웃거나 때로는 울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종을 하나하나씩 모으는데 쏟았던 열정, 마음에 드는 종을 너무나 쉽게 그리고 싼 가격으로 구하였을 때의 희열감, 미사여구에 속아 가짜 종을 구입한 후의 씁쓰레함 모두가 나의 종 속에 각인되어 남아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종의 수집활동은 삶을 살아가며 잠시 나 만이 몰두할 수 있는 활력소가 되어 주었고, 종 수집을 통하여 세계 문명과 역사, 문학, 종교 뿐만 아니라 공예를 비롯한 유럽 예술 사조에 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어 국제적인 감각을 갖출 수 있었다. 또한 수집을 통하여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종 수집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면에서 교류할 수 있었다.
마침내는 코리아메디케어가 귀중한 자리를 마련해주어, 세상 사람들의 삶이 묻어있는 종에 관한 이야기들을 소개하게 되었다. 소위 문학-역사-철학(文-史-哲)의 인문학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도 아닌 의과대학병원에서 핵의학, 갑상선학을 전공하는 임상의사로서 세상의 이치와 인간사와 복합적으로 얽힌 종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매일 눈으로 보고있는 내가 수집한 종들에 숨겨져 있는 사연들을 하나하나 기록해 보려 한다. 미숙한 글에 대한 해량이 있으시길 빌며, “우리의 삶과 종” 이야기를 시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