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닥터] 외과의사와 격투기
척추 측만증 수술의 국내 최고 권위자인 이춘성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 주임교수가 지난달 책을 한권 출간했다. 제목은 ‘독수리의 눈, 사자의 마음, 그리고 여자의 손’. 이 교수가 그동안 여러 매체에 기고했던 칼럼과 평소 써 놓은 글을 모아 만든 것으로 ‘이춘성 교수가 들려주는 의사도 모르는 의사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었다.
재미난 내용이 많아 책을 쭉 읽어가던 중 ‘격투기에서 배우는 담력과 품격’이라는 제목의 글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내용을 보니 어느 분야보다 담대해야 하는 곳이 외과 분야인데, 용기와 담력을 키우기 위해 본보기로 삼을 만한 인물로 일본인 선수인 기무라 마사히코를 꼽고 있었다.
격투기 분야에 대해 기사를 몇 차례 쓰기도 했던 필자도 몰랐던 사실이 많을 정도로 이 교수의 격투기에 대한 지식이 해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기무라에 대해서는 처음 알게 된 사실이 몇 가지 있었다.
1917년에 태어나 76세 때인 1993년 세상을 떠난 기무라는 유도선수 출신으로, 17세 때 전 일본유도대회 최연소 우승 후 3연속 우승을 이룩했다. 이후 1950년까지 13년 무패, 10연속 우승의 기록을 세운 유도 천재였다. 그런 그도 아내가 결핵에 걸려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프로 유도선수가 됐다가 프로레슬링에서 뛰기도 했다.
기무라가 격투기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브라질리안 주짓수’의 원조인 엘리오 그레이시를 제압했기 때문이다. 엘리오가 누구인가. 그는 현재 이종격투기 계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브라질리안 주짓수’를 만든 ‘그레이스 가문’의 장문인. 그의 아들인 힉슨과 호이스는 각각 이종격투기 프라이드 FC와 UFC의 초대 챔피언을 지냈다.
1950년대에 벌어진 기무라와 엘리오의 대결에서 기무라는 ‘기무라 록’으로 알려진 팔 비틀기 기술로 경기 시작 13분 만에 엘리오의 팔을 부러뜨리며 승리해 이름을 날렸다. 브라질리안 주짓수는 기무라가 엘리오를 제압했던 시기를 지나 더욱 발전해 현재 이종격투기 계를 장악한 상태다.
프라이드에서 ‘격투기의 황제’로 불렸던 러시아의 예멜리야넨코 표도르도 UFC에서 주짓수로 무장한 브라질 출신의 안토니오 실바와 파브리시우 베우돔에게 연패를 당했고 결국 은퇴를 했으니….
그렇다면 과연 주짓수가 최강의 격투기일까. 이 점에서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무하마드 알리, 조 프레이저, 조지 포먼, 마이크 타이슨 등 가공할 핵 펀치를 앞세운 프로복싱 헤비급 챔피언들이야말로 최고의 격투기 선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프로복싱의 개런티가 훨씬 많기 때문에 UFC 등 격투기 헤비급 챔피언과 프로복싱 헤비급 세계 챔피언간의 대결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프로복싱과 주짓수 중 어느 것이 더 강한지는 모른다. 하지만 격투기의 인기는 날로 상승세이고, 프로복싱 그중에서도 헤비급의 인기는 하락세니 언젠가는 격투기와 프로복싱 헤비급 챔피언간의 맞대결이 성사되지 않을까 한다. 세계 최강의 격투기는 이때가 되서야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