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 에 대한 짧은 고찰

해외에선 베드 토크, 그러니까 섹스 도중의 대화를 ‘더티 토크 Dirty Talk'라고 부를 정도로 카테고리 화 시킨 모양이나 개인적으로 섹스 도중에 이야기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침대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까지 가이드를 해줘야 하다니. 다들 바보인가? 뭐, 나도 예전에 베드 토크를 소재로 칼럼을 쓴 적이 있으니 작금의 현실에 약간의 책임감(?)은 느끼고 있다. 상대방이 얼마나 뜨거운지, 얼마나 단단한지 등의 아주 상세한 이야깃거리를 침대에서 제공하는 게 핫 하고, 뭘 좀 아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시대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섹스 도중에 서로가 기대하는 말은 “좋아?” 정도였다. 얼마나 간단하고 편리한가. 정말 좋아도, 혹은 별로여도 흐응, 정도로만 반응하면 두 사람 다 만족한다. 물론 상호간의 긍정적인 반응을 전제하는 하에서다. 좋으냐는, 클래식한 물음에 이제는 섹스에 대한 정보를 너무 많이 알아 불편한 나 같은 여자도 이 규칙만큼은 잊지 않고 있다.

“좋아?”

이제 막 자세 한 번 바꿨다. 심지어 볼에 열도 오르지 않았는데, 내 남자는 벌써 좋으냐고 나에게 피드백을 바란다. 아니, 별로야. 니 페니스가 아직 내 질 안쪽 XX한 곳에 XX하게 꽂히지도 않았고, 내 클리토리스는 여전히 XXX해. 그러니 벌써 좋아 죽기를 바라는 건, 오버 아니야? 라고 대답하지 않을 정도의 이성 정도는 나도 가지고 있다.

사실 남자들은 네 페니스는 정말 거대해서 내 질 안쪽이 터질 것 같아, 라고 상대방을 치켜세움과 동시에 아주 상세한 정보를 전하는 걸 기대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경험 상 섹스 도중 어떤 화제를 입에 올리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얼마나 연기를 잘하느냐가 핵심.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남자를 잠깐 만날 때였다. 그와 처음으로 섹스한 날, 전희 도중에 그 남자는 나에게 fuck me!를 외쳐달라고 부탁했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그 때의 ‘fuck'이라는 단어를 내뱉었을 때의 느낌이 생생하다. 왜냐하면 내가 정말 연기를 잘 했다. 저번 칼럼에도 잠깐 언급을 한 적이 있지만 그 때 내 방은 형광등도 끄지 않아 기분 나쁘게 밝았고, 그로 인해 나는 섹스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지만 어찌되었든 내 안의 ‘섹시 여배우’를 꺼내어 대사 전달을 멋지게 해냈다. 물론 그가 내 연기를 보고 기뻐한 것은 당연지사. 좋아! 든 fuck me! 든 낮고, 섹시한 보이스-약간의 콧소리와 헐떡임은 기본양념-로 전달하는 게 최선이다. 그리고 꼭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아도 가끔 그런 연기를 하다보면 갑자기 더 흥분하기도 하니까 재미있다.

나는 취미삼아 일본 만화책을 종종 보는데, 장르를 막론하고 러브신에서 자주 나오는 대사가 있다. 바로 “여유 없어...”, 라는 대사인데, 처음 들었을 때 참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나라 만화도 자주 봤지만 섹스신에서 여유가 없다는 말을 하는 주인공은, 적어도 내가 본 만화에선 없었다. 어쩌면 섹스 장면에서 기대하는, 일반적인 일본식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자기 때문에 몸이 달아 여유가 없다고 침대에서 고백하는 남자라니! 속으로는 이 여자, 오늘 샤워 안 했으니 오럴 섹스 정도는 건너뛰어도 뭐라고 하지 않겠지 라고 재고 있어도 겉으로는 나 여유 없어, 라고 헐떡이는 남자를 바라볼 때 기뻐하지 않을 여자가 있을 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내가 “좋아...”, 라고 말할 때 남자가 기뻐하는 것처럼 말이다.

“좋아?” 에 대한 짧은 고찰

글/윤수은(섹스 칼럼니스트, blog.naver.com/wai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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