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진실 칼럼] 시계 다이얼판과 방사선 야광 작용
이전엔 그저 시간만 볼 수 있으면 족했다. 부지런히 태엽을 감아야 하던 시계를 차고 다니다가 혼인을 치르면서야 이름 값 한다는 시계 하나를 예물로 받아 평생 차고 다녔던 시절이 있었다. 또 한동안은 대통령 000시계라고, 편가르기의 상징처럼 자랑스럽게 차고 다니던 선량들, 진짜냐고 굳이 확인해보는 이들이 있던 시절도 있었다.
핸드폰이 보급되면서 거의 사양길에 접어들 것 같던 시계 산업이 사업의 돌파구를 찾아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였다. 이제 시계는 몇 개씩 지니며 옷차림에 따라 맞추어 차는 패션의 일부가 되기도 하였다. 또한 고가의 명품 시계는 부를 과시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시계가 인류 역사에 처음 등장한 때는 15세기로 스프링의 탄성을 이용한 아주 초보적인 형태였다고 한다. 그 후 꾸준히 개발되어 왔으나 1900년대 초반까지도 남성들의 전유물이다시피 했다. 당시 유행하던 시계는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포켓형으로서 신사의 품격을 높이는 소도구이기도 했다. 손목시계가 등장하였으나 일부 여성들이 이용하였을 뿐 그다지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1914년 발발한 1차 세계대전은 시계의 판도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전장에서 일부 군인들이 포켓형 시계에 끈을 달아 손목에 감고 다니면서 손목시계의 실용성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원거리에 떨어져 있는 병사들 간에 시간을 맞추어 동시에 포를 쏘는 데도 시계가 한 역할 했다고 한다.
유럽이 온통 세계 대전의 전쟁 속에 휩싸인 한편, 미국에서는 교전국들에게 무기나 필요 물자를 판매하는 군수 산업이 활황을 보였다. 전쟁 초기부터 이미 필요성을 절감한 손목 시계 제조업도 그 중 하나였을 것이다. 과학의 발견은 ‘돈’이 될 때 속도가 붙는다. 라듐에서 방출되는 방사선에 야광 작용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자 수완 좋은 누군가가 이를 곧바로 사업화했다. 어두운 곳에서도 볼 수 있는 야광 손목시계는 전쟁 중에 매우 요긴할 터였다. 미국 라듐 법인체가 설립되었고 라듐을 이용한 야광 손목 시계 제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이 회사는 군수품을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국가 방위 산업체였다.
이회사의 주된 공정은 제작된 시계의 마지막 단계에서 다이얼판에 야광 염료를 입히는 과정이었다. 라듐 분말에 물과 접착제를 섞고 이를 낙타털로 만든 붓을 이용해 시계 다이얼을 칠하는 일은 섬세함과 집중이 필요한 일이다. 따라서 거의 대부분 종사자들은 여성이었다. 이들이 잠시 일 손을 놓고 빵긋 웃으면서 찍은 사진이 책에 나와 있다. 한결같이 젊고 아리따운 아가씨들이었다.
공장에 함께 근무하던 화학자 또는 기타 전문가들이 마스크와 방호복을 입고 근무했다는 기록을 보면 어느 정도 독성에 대한 정보는 알려져 있었던 듯한데, 당시 이 여성들에게는 라듐의 독성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았다. 칠하던 붓이 무디어지면 붓을 입술사이에 넣고 빨아서 붓 끝을 뾰족하게 다듬어서는 다시 칠하는 식으로 일을 하였다는데 이러한 작업 방식으로 인해 시계 다이얼에 야광 염료 칠을 하는 여성들은 상당량의 라듐을 섭취하게 되었다.
라듐에는 원자번호가 다른 몇가지 동위원소가 있으며 이들은 반감기가 서로 다르다. 라듐 224는 3.6일, 라듐 228은 5.8년, 라듐226은 1600년이나 된다! 이 여성들이 작업하던 라듐원료는 반감기가 긴 라듐 228과 226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로 미국, 캐나다에서 성업한 이 라듐 다이얼 시계 제조 공장에는 약 4000명의 여성이 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중 약 80여명 에게서 뼈에 악성종양이 발견되었다. 상업주의의 열풍과 더불어 무지로 인한 비극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