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진실 칼럼] 빌헬름 뢴트겐의 엑스선

요즘 특허에 관련한 분쟁이 뜨겁다. 분쟁이 아니라 이정도면 전쟁이라 해야 옳을 것 같다. 세인의 관심이 쏠렸던 애플, 삼성 양 진영의 법정 특허전은 양측 모두 최정예 로펌 변호사들을 대동한, 사활을 건 전쟁이었으나 미국 법원에서 삼성의 패소로 끝나 천문학적인 비용을 피해 보상액으로 지불해야할 상황에 이르렀다. 스마트폰 싸움에서 최후 승자는 변호사들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피해 보상액이외에 로펌에 지불하는 비용도 엄청나다고 한다.

비단 스마트폰뿐일까. 산업 전 분야에 걸쳐 특허권을 확보 또는 방어하기 위한 노력이 필사적이다. 학문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국책 연구비를 수주한 대학교수들은 인용 지수가 높은 논문을 얼마나 많이 출간했는지 뿐 만 아니라 특허를 몇 건이나 출원/등록했는지에 따라 연구 성과를 평가 받는다.

산업 사회/정보 사회에서 특허권을 방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일 것이다. 특허는 곧 돈(경제)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특허는 기원전 500년 고대 그리스에도 기록이 있다고는 하나 현대적 개념은 1474년 베니스 공화국에서 비롯된 듯 하다. 상업이 국가의 생명줄이었던 나라인 만큼 새로운 도구/물건을 창안해 내도록 독려하기 위한 안이었던 것 같다.

미국에서 최초의 특허는 새뮤얼 윈슬로우라는 사람이 창안한 새로운 소금 제조법이었다고 한다. 이 사람이 소금 제조법으로 많은 부를 축적하였는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독점권을 인정하는 특허의 성격상 이를 산업화하여 경제적 이득을 취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1895년 11월 8일, 독일의 물리학자 빌헬름 뢴트겐박사가 최초로 엑스선을 발견하였다. 금요일 오후였다는데, 흥분한 뢴트겐 박사는 추가 실험하느라 주말은 물론이고 그 후 몇 주간을 꼬박 실험실에서 보내고 나서 자신이 발견한 것을 12월에 논문으로 발표하게 된다.

당시 대학교수로 있었으나 경제적으로 그다지 넉넉하지 못하였던 그에게 친구들의 ‘현명한 충고’가 잇달았다. 이를 특허로 등록하면 연구 목적이든 상업적 목적이든 이를 사용할 때 마다 사용료를 받을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당연한 권리일 것이다. 진공관 연구에 매달려 연구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지내왔다. 미국 아이오와 주에 가족이 있었던 그는 콜롬비아 대학에서 교수자리 제안이 있었고, 미국으로 건너가는 것을 고려하는 중이기도 했다.(이는 나중에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취소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허로 인한 추가 수입은 당연히 적지 않은 도움이 될 터였다.

그러나 그는 이를 인류 모두의 자산이라고 하며 특허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을 자신이 우연히 발견한 것뿐이라고 하면서 겸손함으로 물러섰다. 그의 면모를 보여주는 청소년 시절 일화가 있다. 반 친구하나가 선생님을 조롱하는 그림을 그렸는데 누군지를 알아내려는 학교측의 끈질긴 추궁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친구의 이름을 밝히지 않다가 결국 퇴학처분을 당한다.

이로 인해 지원하는 학교마다 입학이 거부된다. 하는 수 없이 정규과정을 건너뛰고 시험(검정 고시와 비슷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을 통해 입학을 준비하게 되는데 이것이 가능하였던 대학이 취리히 대학이었다. 그는 취리히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물리학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결국 취리히 대학이 훌륭한 졸업생을 배출한 영광을 차지하게 된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과학자들은 자신이 발견한 것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기를 즐겨하였다. 의학자들도 마찬가지여서 특정 질병에서 보이는 독특한 증상들의 모음(증후군), 해부학적 명칭은 물론이고 자신이 창안한 치료법이나 수술법에도 이름붙이기를 즐겨한다. (의과대학 시절 이것 외우느라 꽤 고생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뢴트겐이 발견하여 뭔지 잘 모르겠다는 의미의 ‘엑스 선’에도 이름이 붙었다. ‘뢴트겐 선’이라고. 그러나 그 자신이 생애 내내 즐겨 부르던 명칭은 ‘엑스 선’이었고 지금 우리 모두는 이 명칭을 쓰고 있다.

뢴트겐 박사가 엑스 선을 발견했을 당시, 이 새로운 광선의 성질에 대해서는 매우 제한적인 정보 즉, 엑스 선의 여러 작용 중 필름을 감광시켜서 영상을 얻어내는 작용(감광 작용) 정도만 알려졌던 것으로 보인다. 약 2주 후, 자신의 친구였던 해부학자 알버트 박사의 손이라는 설도 있고 아내의 손이라는 설도 있는 최초의 인체 엑스 선 촬영 사진이 공개된다.

엑스 선 발견이 일반에게도 알려지자 바로 2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서부터 의학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술취한 선원의 등에 꽂힌 칼의 나머지 한 조각을 엑스 선 촬영으로 찾아내고 이를 제거함에 따라 통증과 마비로부터 회복된 사례가 란셋이라는 역사적인 학술잡지의 1896년도 1월호에 보고되고 있다. 이는 엑스 선이 의학적으로 이용된 최초의 사례이다.

특허라는 제약 조건이 없었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호기심 많은 과학자들이 엑스 선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2년도 채 안되어 엑스 선의 특성과 그 유용성이 밝혀지게 되었다. 뢴트겐 박사는 엑스 선 발견의 공로로 1901년에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의 엑스 선 발견이 인류에 끼친 유익한 공로는 감히 측정할 수 없거니와 과학자로서 겸손함 역시 가방 끈 좀 길다 싶은 이들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

[성진실 칼럼] 빌헬름 뢴트겐의 엑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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