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날짜를 계획하는 사람들
지난주, 내 남자의 회사 상사가 주최한 저녁식사에 초대받았다. 바깥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28층의 멤버십 레스토랑에서 우리는 와인을 곁들인 아히 튜나와 연어요리를 먹었다. 와인을 한 병 더 따고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잠자리(물론, 내가 섹스 칼럼을 쓴다는 이야기를 한 뒤로)가 화두로 떠올랐다. 상사 M은 인도계 미국인인데, 꽤 개방적인 사고와 유머감각을 겸비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언제 금요일 저녁에 내 아내랑 밥을 먹는데, 그녀가 그러더군. 우리, 섹스는 매주 토요일에 하는 게 어때요? 라고.”
주말부부도 아니고, 같이 살면서 섹스 날짜를 계획하다니. 내가 항상 부르짖는, 섹스의 일상패턴화 사례를 직접 만나 반갑기도 하고, 또 동시에 기분이 묘했다.
“그래서 내가 그랬지. 그 토요일이 내일부터 시작인거야? 아니 그런데 왜 토요일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지? 그냥 오늘하면 안 돼?”
M은 그렇게 말하고, 와인 잔을 쭉 들이켰다. 나는 두 사람이 정말 토요일까지 섹스를 참았는지, 또 인도인들이니 카마수트라 섹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척 궁금했지만 조용히 웃고만 있었다. 인도 사람이지만 어찌되었든 지금은 미국인이니까. 그리고 회사에서 높은 분이니 너무 사생활을 파고들면 내 남자가 곤란해진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서 새로운 오르가슴이 터진다고들 하지만 섹스를 ‘계획’하는 뉴 라이프스타일에서 어떤 종류의 오르가슴을 기대할 수 있을까. 완벽하게 계획된 날짜에 치루는 섹스에서 마법을 느끼는 때는 아마 허니문 정도가 아닐까 싶다. 매주 토요일이든 매월에 한 번이든 섹스에 대해 생각하고, 노력하려는 M의 부인의 자세는 박수칠 만하나 그녀가 놓친 것이 있다. 핵심은 날짜가 아니다. 진짜 포인트는 침실에서 서로 친밀해질 기회를 일상화하는 거다. 비타민을 챙겨 먹는 것처럼 섹스를 일상에 녹이는 방법을 찾는 것.
나도 한 남자와 관계가 길어지면서 보다 정기적인 섹스의 필요성을 느껴 처음에는 요일을 정했다. 월요일. 물론 항상 한 번 비트는, ‘꽈배기’ 응용을 좋아하기 때문에 월요일이면 뒷중심이 끈으로 된 티팬티를 입어 섹스 긴장감을 높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 티팬티였다. 티팬티를 입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것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입는 속옷이다. 엉덩이 골 사이로 끈이 지나가는 구조가 절대 편할 리가 없다. 또, 화장실 볼일의 종류(?)에 상관없이 티팬티의 청결도를 위해서는 무조건 화장지+알파가 필수다. 팬티라이너를 착용하려 해도 면적이 좁은 끈이라 잘 붙어 있지도 않아!
오래 된 남녀관계를 유지하려면 어느 정도 억지가 통해야하지만 내 몸-정확히는 내 엉덩이 골-을 하루 종일 피로하게 만드는 방법을 계속 밀어붙이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좀 더 자연스러운 방법을 찾았는데, 연애 초기의 장면들을 회상하다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나란히 허벅지를 붙이고 앉기.
설사 미리 예약된(?) 시간에 잠자리를 갖자고 약속해도 불을 붙일 타이밍이 중요하다. 이 서로의 허벅지를 붙여 앉기는 친밀하면서도 간단하게 섹슈얼한 타이밍을 연출해 준다. 허벅지를 상대에게 밀착함으로써 가장 민감한 성감대인 성기의 거리도 좁혀지고, 덕분에 손 터치도 자연스럽게 은밀해진다. 이런 친밀한 스킨십은 오래 된 커플에겐 완전 소중한 전희인 셈. 상사 M이 부인과의 섹스 대화를 마주 앉은 식탁이 아닌, 나란히 앉은 소파나 바에서 나누었더라면 D-데이는 바로 그 날 저녁이 되었을 텐데.
글/윤수은(섹스 칼럼니스트, blog.naver.com/wai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