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기생충으로 자가면역질환 치료한다
돼지 기생충인 ‘돼지편충’을 사람에게 감염시켜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하는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라고 25일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자가면역질환이란 인체 면역계가 이상을 일으켜 자신의 장기를 공격하는 병이다. 만성 장염인 크론병, 류마티스성 관절염, 다발성 경화증, 용혈성 빈혈, 만성갑상샘염(하시모토병), 루푸스(전신성홍반성 낭창) 등이 대표적 예다. 현재 나와있는 엔브렐이나 휴미라 같은 약은 인체의 면역을 억제하기 때문에 환자가 결핵 등의 다른 심각한 질병에 걸릴 위험이 있다. 하지만 이번의 기생충 치료법은 이 같은 부작용 없이 인체 면역계를 조절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새 치료법을 개발 중인 제약회사는 미국의 ‘코로나도 생명과학(Coronado Biosciences Inc)’과 그 파트너인 독일의 ‘닥터팔크(Dr Falk Pharma GmbH)’. 닥터팔크사는 유럽에서 임상 시험을 진행 중이며 코로나도사는 미국에서 FDA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도사는 220명의 크론병 환자를 모집해 12주 동안 시험할 예정이다. 환자는 2주일에 한차례씩 7500개의 ‘돼지편충’ 알을 복용하게 된다.
돼지에서 번식하는 돼지편충은 인체에 들어오면 별다른 이상을 일으키지 않고 2주 이내에 대장에서 파괴된다. 이 기간 동안 환자의 면역계를 조절해 스스로의 장기와 조직을 공격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것으로 보인다. “이 요법은 치료약으로 유망할 뿐 아니라 자가면역질환의 원인에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해줄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코로나도사의 고문이자 터프츠 메디컬센터의 조엘 와인스톡 박사의 말이다. 새 치료법은 와인스톡 박사가 아이오와 대학에 재직할 때 개발한 기술을 기초로 한 것으로 그 배경에는 위생가설이 자리잡고 있다.
◇위생 가설=선진국에서 자가면역질환이 흔한 것은 지나치게 위생적인 생활환경 탓이라는 것이 위생 가설이다. 인간은 흙과 접촉함으로써 수많은 바이러스, 박테리아, 벌레의 침입을 받는데 인체 면역계는 이런 침입자를 통해 누가 적군인지를 식별하고 실제로 싸우도록 훈련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미생물은 인간에게, 인간은 미생물에게 상호 적응했으며 인간은 스스로의 면역계를 자극하는 데 이들 미생물을 이용한다”. 하바드 의대의 데니스 카스퍼 교수의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 비누와 세정제, 항생제, 멸균젤 때문에 이들 미생물과 접촉할 기회는 극히 드물어졌다. 실제로 선진국일수록,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자가면역질환 환자가 많은 경향이 있다. 와인스톡을 비롯한 학자들은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보고 있다. 즉 내장에서 특정 기생충들이 사라진 탓에 면역계를 조절하는 핵심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코로나도의 CEO인 바비 샌디지는 “환자의 3분의 1은 편충알을 한 두차례 복용한 뒤에 설사나 복부 경련통을 일으킬 수 있지만 대개는 하루 이틀이면 증상이 없어진다”면서 “환자들은 크론병 등의 증상을 억제하려면 약을 무한정 계속해서 복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위스콘신대의 신경학자인 존 플레밍 교수는 다발성 경화증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 중인데 “초기 시험결과는 유망한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다만 약의 효능을 확인하려면 추가 연구 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시장은 연간 340억 달러이며 2016년까지 해마다 약 5% 성장할 것으로 추정된다. 두 회사는 2016, 2017년쯤 이들 약의 시판 승인을 받는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