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짝늘짝 걸어야 제맛나는 아홉갈래 올레길

늘짝늘짝 걸어야 제맛나는 아홉갈래 올레길

우리가 걷고 싶은 길은

바닷길 곶자왈 돌빌레 구불구불 불편하여도

우리보다 앞서간 사람들이 걷고 걸었던 흙길

들바람 갯바람에 그을리며 흔들리며

걷고 걸어도 흙냄새 사람냄새 풀풀 나는 길

그런 길이라네

 

우리가 오래오래 걷고 싶은 길은

느릿느릿 소들이, 뚜벅뚜벅 말들이 걸어서 만든 길

가다가 그 눈과 마주치면 나도 안다는 양 절로 웃음 터지는

그런 길, 소똥 말똥 아무렇게나 밟혀도 그저 그윽한 길

느려터진 마소도 팔랑팔랑 나비도

인간과 함께 하는 소박한 길

그런 길이라네

 <허영선 ‘우리가 걷고 싶은 길은‘ 부분>

제주 토박이말은 바다와 닮았다. 유성음 ㄴㄹㅁㅇ이 많다. 이들이 단모음 ㅗ ㅏ

ㅓ ㅜ ㅡ ㅣ와 어우러지면 금세 파도소리가 들린다. 어멍(어머니), 아방(아버지),

할망(할머니), 하르방(할아버지), 아주망(아주머니), 홀어멍(홀어머니), 니영나영(너하고

나하고), 놀멍(놀다가), 쉬멍(쉬다가), 걸으멍(걷다가)….

바닷물이 넘실넘실, 어깨춤이 슬쩍슬쩍 들썩인다. 하지만 그 폭은 ‘울렁울렁

울렁대는’ 울릉도보다 크지 않다. 그렇다고 ‘얄리 얄리 얄라성 얄라리 얄라~’의

들썩임보다 작은 것은 아니다. 굴 따러 간 엄마 대신, 스르르 아기를 잠재운 바다가락과

같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노 젓는 소리나 “또르르 촐랑~ 촐랑…” 부슬비

오는 봄밤의 초가집 낙숫물 리듬이라고나 할까.

아무리 각지거나 날선 것도 제주에 오면 둥글어진다. 울퉁불퉁 바위도 ‘엉’이

되고, 삐죽한 나무도 ‘낭’이 된다. 가시나무는 ‘가시낭’이고, 팽나무는 ‘폭낭’이다.

깎아지른 절벽도 그저 ‘기정’일 뿐이다. 한 여름 이글이글 불타는 땡볕은 ‘와랑와랑한

햇살’로 변한다. 산더미 같은 파도는 한풀 죽어 ‘놀’이 된다.

뭍에서 부드러운 말도 예외가 없다. 제주에 오면 한 번 더 곰삭는다. 홍어처럼

시큼하게 발효한다. 말만 들어도 콧속이 큼큼한 ‘고소하게’는 한층 더 섹시한 ‘코시롱하게’로

휘발한다.

오죽하면 육지 칠순노인들도 부드럽게 소리 내는 ‘반딧불이’조차, ‘불란디야’라고

속삭일까. 서귀포 팔순 할망들이 입을 오물이며 ‘(반딧불이 가지고 함부로 장난하다간)

불란디야!!’  웅얼대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ㅋㅋㅋ …. 슬며시 소 웃음이

나온다. 푹 삭힌 제주자리젓이 따로 없다.

 

‘올레’는 제주 토박이말로 ‘집 마당에서 마을길로 들고나는 어귀길’을 뜻한다.

한마디로 동네 고샅길 같은 것이다. ‘제주 올레길’은 그런 길을 죽 이은 실핏줄이다.

한 때 시사저널 편집국장이었던 서명숙씨(51·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가

지난해 고향 제주에 처음으로 길을 잇기 시작했다.

17일 현재 9코스까지 139.11km의 올레길이 생겼다. 한라산 남쪽 서귀포를 중심으로

좌우해안을 따라 펼쳐진다. 이는 크게 서귀포 해안 길(2~6, 8코스 84.91km)과 성산일출봉

부근의 오름길(1,7,9코스 54.2km)로 나뉜다.

오름은 ‘새끼화산’을 말한다. 제주엔 달 항아리 같은 오름이 여기저기 360여개나

누워 있다. 가운데 큰 쌀 항아리(한라산) 하나에, 빙 둘러 고만고만한 고추장 독,

간장 독, 씨앗 독들이 올망졸망 장독대를 이루고 있다.

다)올레, 마을올레, 하늘올레다. 바다는 검은색 감도는

짙푸름→청자 하늘색 푸름→새싹 연초록 푸름으로 켜켜이 너울댄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선은 아슴아슴하다. 그 사이에 아지랑이가 눈가잔주름처럼 꼬물댄다.

온몸의 감각이 슬며시 열린다. 먹통이 됐던 귀와 코가 슬슬 벌름거린다. 짭조름한

바다냄새가 나고, 파도소리, 새소리, 바람소리가 들린다. 문득 바닷물에 발을 담근다.

잔 너울이 밀려와 종아리를 간질인다. 갯바위에선 낚시꾼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성산포 부근의 오름길은 들꽃세상이다. 1코스 출발점인 시흥초등학교 길부터 파란

달개비 꽃(닮의장풀), 붉은 여뀌 꽃이 우우우 피었다. 서울에선 이미 보기 힘든 한여름

들꽃 엉겅퀴와 달맞이꽃이 보란 듯이 웃고 있다.

말미오름 잔등 위엔 노란 괭이밥 꽃에 벌들이 잉잉거리며 달라붙는다. 얼른 잎을

따다 한입 넣는다. 어릴 적 새콤한 맛이 아련히 되살아난다.

쇠뜨기, 바랭이, 쇠비름, 개망초, 질경이, 명아주가 한데 버무려져 진한 생풀

냄새를 풀풀 풍긴다. 쇠똥 말똥냄새가 구수하다. 연보라 쑥부쟁이 꽃이 수줍게 하늘댄다.

그런데 왜 하얀 구절초는 잘 눈에 띄지 않을까. 노란 방가지똥 꽃이 언뜻언뜻

보이고, 연노랑 왕고들빼기 꽃은 이미 시들어 검은 씨앗을 맺었다. 붉은 꿀풀 꽃엔

노란 나비가 세상 모르고 코를 박고 있다. 은빛 억새가 어른거려 눈이 부시다.       

말미오름은 목장 문 열고 들어가 언덕길 따라 오른다. 봉우리(해발 145.9m)는

암말 엉덩이  꽁지 부분. 저 멀리 성산포 앞바다가 파노라마처럼 울렁인다.

온갖 푸른 물감이 한꺼번에 풀어져 정신이 아득하다. 논밭을 둘러싼 검은 색 돌담과

그 사이에 자라고 있는 초록 곡식들. 검푸른 솔밭과 그 너머 빙그레 솟아오른 천연

원형 경기장 일출봉.

문득 조랑말들이 물끄러미 바다를 본다. 나도 하릴없이 저 먼 바다를 본다. 하늘과

바다 사이에 내가 있다. “히히힝~” 풀 뜯는 조랑말들이 있다.  

 


9코스는 중산간 올레길이다. 제주 해안과 한라산 고산 지대 사이에 숨어 있다.

마을과 숲 그리고 밭둑길을 지난다. 우영팟(텃밭)의 파릇파릇 마농(마늘)이 이채롭다.

22km(5~6시간)로 9개 올레길 중 가장 먼 거리이기도 하다.

물통처럼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통오름, 말굽 모양의 독자봉을 지난다. 길이 8km,

너비 8만평의 표선 백사장도 만날 수 있다. 썰물 때는 원형 백사장, 밀물 땐 커다란

호수로 변한다.     

바람은 제주의 넋이다. 바람은 제주의 모든 것들을 둥글게 만든다. 풀과 나무들은

키를  낮춘다. 그래서 나무도 나긋해져 ‘낭’이 된다. 돌하르방도 바람에 깎여

둥글어진다. 제주 초가집도 둥글납작하게 엎드린다. 사람들은 바람이 지나갈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린다.

김영갑씨(1957~2005)는 제주의 넋 바람을 찍었다. 그는 태풍이 밀려오면 미친

듯이 바람을 맞으러 나갔다. 깔깔거리는 바람, 흐느끼는 바람, 미친 듯이 화를 내는

바람…. 정신없이 찍어댔다. 산발머리의 억새밭, 흰 거품을 뿜어내며 씩씩거리는

파도, 참새처럼 재잘거리는 들꽃….   


그는 20여 년 동안 제주 바람에 홀려, 필름에 미쳐, 혼자 살다 갔다. 밥 대신

필름을 샀으며, 배고프면 들판의 고구마나 당근으로 허기를 달랬다. 그의 사진 전시실인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은 9코스 중간에 있다.

두모악은 한라산의 옛 이름. 그의 작업실 책상엔 손때 묻은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모음집이 덩그마니 놓여 있다. 김영갑과 고흐. 황야의 늑대처럼 고독한 사내들.

가슴이 먹먹하다.

지난 5월 열리기 시작한 지리산 둘레길 1,2구간 21km(전북 남원 산내면 매동마을~경남

함양 휴천면 세동마을)는 아버지와 아들이 걷는 길이다. 때론 낮은 곳(구례 토지

50m), 때론 산꼭대기(하동 악양 형제봉 1,100m)를 오르내리며 마음을 튼다. 그 길은

친구들끼리, 혹은 대학 동아리 회원들끼리 걷는 길이다.

제주올레길은 연인들이 손잡고 걸으며 속삭이는 길이다. 엄마와 딸이 도란도란

걷는 길이다. 아버지가 막내 손잡고 걷는 코스다. 밤엔 서귀포 칠십리 앞바다 불

밝힌 갈치 배들을 보며 가슴 적시는 길이다.    

길은 나무늘보처럼 천천히 걷는 게 맛있다. 제주 사람들이 말하는 ‘간세다리(게으름뱅이)’처럼

해찰하며 걸어야 깨소금 맛이다. ‘재기재기(빨리빨리)’ 걸으면 마음이 뜬다. ‘꼬닥꼬닥(뚜벅뚜벅보다

조금 느리게)’ 아니면 ‘늘짝늘짝(느릿느릿)’ 가다보면 바다 같은 평화가 온다.

‘느랏느랏(아주 느리게)’ 라르고 가락으로 가다보면 나도 잊고 길도 잊는다. 나도

없고 길도 없다.  

▼교통 = 요즘 서울-제주 항공편은 만원이다. 수학여행, 신혼 여행객에 일반 관광객까지

겹쳤기 때문. 인천에서 배편을 이용하면 편하다. 매주 월 수 금 오후 7시 출발해서

다음날 아침 8시30분 제주항에 닿는다. 선상에서 일몰 일출을 볼 수 있다. 13시간30분

소요. 032-889-7800, http://www.cmcline.co.kr.

▽제주-서귀포는 600번 공항리무진을 이용하면 편하다. 일반버스는 공항에서 200번,

300번 좌석버스로 제주시외버스터미널로 간 다음 거기서 다시 서귀포행 버스를 타야

한다.

▽현재 올레길은 서귀포를 중심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서귀포에 숙소를 정하고

움직이는 게 편리하다. 서귀포에서 각 코스로의 이동은 시내버스나 택시로 이동해야

한다. 하지만 시내버스는 띄엄띄엄 있을뿐더러 시간도 부정확해 불편하다. T-money

plus 카드(수도권에선 GS25 편의점에서 구입) 사용 가능. 올레꾼 3명 이상이 팀을

이뤄 콜택시를 이용하는 게 편하다. 서귀포콜택시 064-762-0100, OK콜택시 064-732-0082,

천지연콜택시 064-763-4040(이상 콜비용 1000원).

▼음식 = 제주 음식은 담백하다. 고춧가루 등 양념을 많이 쓰지 않는다. 돼지고기,

갈치, 고등어 요리에 각종 생선회가 주축. 소는 ‘제주 전체 하루 2마리밖에 도축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거의 먹지 않는다.

사단법인 제주올레 홈페이지(http://www.jejuolle.org/, 064-739-0815)나 서명숙

이사장이 쓴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걷기 여행(북하우스)’ 책을 참고하면 좋다.

▽서귀포 토박이들이 즐겨 찾는 집

▷갈치요리 = 네거리식당 064-762-5513. 담백하지만 얼큰한 갈치국 으뜸. 갈치

고등어조림이나 구이도 맛있다.

▷고등어회 = 자리돔횟집 064-733-1239. 한치나 자리물회 전문점이지만 요즘엔

산고등어회도 제철. 서비스로 나오는 빈대떡을 미리 먹으면 회 맛이 떨어진다.

▷싼 횟집 = 혁이네수산 064-733-5067. 100% 자연산. 너저분한 츠키다시 없는

대신 싸다. 뿌옇게 끓인 지리 일품. 부담 없이 소주 한잔 하는 데 안성맞춤.

▷해물뚝배기 = 수희식당 064-762-0777.

▷싼 돼지고기 집 = 부산갈비 064-733-2507. 3명이 2인분 먹기 힘들 정도. 소금구이

1인분 먼저 먹고 다음에 양념갈비.

▷흑돼지 = 팜빌리지 064-739-0670. 눈 반, 입반. 경치 빼어나다.

▷돼지고기 점심 = 해운대가든 064-739-7347

▽서울 강남카페도 울고 가는 커피 전문집 = 커피빌딩 064-738-0002(수모루 로터리).

105~465년 된 미국과 유럽의 커피원두 분쇄기가 수십 대나 된다. 세계 각국에서 펴낸

커피 전문 서적도 즐비하다.

각종 커피 관련 연구통계 등 건물 전체가 커피 관련 일색. 일단 향이 그윽하고

맛있다. 십여 년 커피에 빠져 사는 배동근씨가 직접 생두를 갈아준다. 전국의 내로라

하는 커피 마니아들도 수시로 이곳을 찾아 한 수 배우고 간다.

    코메디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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