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코가 교과서라고요?
이데올로기적 사고가 아니라 우리 현실에 맞게
최근 온라인에서 미국 의료시스템을 비판했다는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가
화제다. 이 영화에서는 보험에 들지 못한 실업자가 독한 술을 마시고 찢어진 무릎을
직접 꿰매는 장면, 신문사 편집장이 보험에 가입했지만 진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파산하는
얘기 등이 충격적으로 이어진다.
네티즌들은 정부가 민영의료보험을 추진하고,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를 폐지하면
‘식코의 세계’가 온다며 정부를 맹공했다. 이에 움찔해서인지 김성이 보건복지부
장관은 10일 “의료시스템의 기본 틀은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필자 역시 민영의료보험의 도입과 요양기관당연지정제 폐지에 부정적이지만, 대한민국의
의사소통이 얼마나 후진적인지 지켜보며 울가망해지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우선 민간의료보험을 도입하겠다는 쪽도, 그것을 반대하는 쪽도 사실(Fact)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없이 자기 주장을 펴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언젠가부터 ‘자본주의 의료 Vs 사회주의 의료’라는 세계에서 유례를
보기 힘든 ‘독창적 이론’에 따라 ‘의료경쟁력’ 논리가 부상하더니, 이 논리를
바탕으로 일각에서 민간의료보험과 민간병원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최근 “2002년도 요양기관 강제 지정제에 대한 위헌소송에서 헌법재판소도 강제 적용이
비효율적이라고 인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가 헌재로부터 “그런 적 없다”는 반박을
받기도 했다.
의료계는 솔직해져야 한다. 2002년 위헌 소송 당시 사립대학의 병원들은 정부가
정상진료에 대해 부당청구로 몰아간다는 이유로 소송을 냈다. 사립대 병원들은 정부가
의료기관의 진료행위에 일일이 간섭해 이익을 낼 수 없는 구조로 만들어 놓고 경영책임은
병원에 떠넘기는 모순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당시 병원장들은 “국립병원처럼
지원을 받는다면 정부의 간섭에 어느 정도 수긍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민간병원에
이럴 수 있느냐”며 분개했었다.
의료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민간병원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과 당시의 소송
배경이 전혀 관련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동일한 선상에 놓는다면 논리의 비약이다.필자가
이 칼럼에서 누누이 주장했지만 미국의 어느 병원도 의료를 외화벌이의 최첨단수단으로
광고하지 않는다. 미국 병원에서도 가장 중시하는 것은 자기 지역 환자를 어떻게
가장 잘 치료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렇다고 《식코》라는 영화를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한국 네티즌과 시민사회단체가
100% 옳다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식코》가 그리는 모습은 있을 법한 일이지만,
미국 의료계의 객관적 현실은 아니다. 수많은 미국 시민은 이 영화가 과장됐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힐러리도 유세장에서 《식코》식의
극단적인 사례를 얘기했다가, 병원 측으로부터 “사실이 아니다”라는 반발을 받고
머쓱해졌다.
우리나라의 의료현실에서 극단적인 것만 모으면 《식코》이상이다.
뇌혈관이 터져도 중환자실이 없어서 앰뷸런스로 병원을 떠돌다 죽는 환자, 응급실
바닥에서 의사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중환자, 병원 로비에서 시신을 놓고 시위하는
보호자, 응급실에서 깡패들이 난동을 부려도 누구도 제어하지 못하는 현실….
수많은 네티즌들이 《식코》를 보고 "우리나라 의료현실이 미국보다 훨씬
낫다"고 자위하고 있는데, 이야말로 이번 여론의 가장 큰 폐해다. 《식코》에서는
그 잘난 미국이 의료시스템 순위에서 37위에 불과하다는 부분이 나오는데, 그 근거가
된 2000년 세계보건기구(WHO)의 순위에서 대한민국은 미국보다 한창 아래인 58위에
불과하다.
미국의 또 다른 ‘열혈남아’는 《식코》에서 비교 우위에 있는 것으로 묘사한
캐나다 의료시스템의 문제를 부각한 영화 《Sick and Sicker》를 만들기도 했다.
캐나다에서는 병원에서 의사 진료를 기다리다 숨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필자가
공부했던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에서도 캐나다 출신의 한 학생이 "캐나다는 의료시스템이
없다"고 단언하기까지 했다.
한국의 식자들은 《식코》의 논거에 따라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이 미국 의료시스템을
피폐화한 주범이고, 힐러리의 의료개혁안이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의회에서
보험회사의 로비 때문에 입법화에 실패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데 이 또한 사실과 한참
거리가 멀다.
미국에서는 1920년대부터 블루 크로스, 블루 쉴드 등 공공성이 강한 의료보험
시스템이 도입됐고 1930년대에 민간 보험 회사가 의료보험 영역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민간보험은 건강한 사람에게 요율을 낮추고 상품을 차별화하며 ‘공동체적 보험’을
대체했다. 1, 2차 세계대전 때 정부가 임금억제책을 유지하자 기업들이 근로자 확보
차원에서 서비스가 좋은 민간보험을 앞 다퉈 도입했고 노조가 기업의 민간의료보험
도입을 독려했다. 미국 민간보험의 확대에는 보수논리 뿐 아니라 노조도 크게 기여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의료비가 꾸준히 오르고 보험료가 덩달아 상승하자 의료보험이 미국
가계의 부담으로 작용했고 이때 닉슨이 민간 부문에서 ‘관리 의료’라는 새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관리 의료 체계에서는 새 형태의 보험기구인 HMO(Health Maintenance Organization)가
병원이나 의사와 계약을 맺어 의사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보험가입자와 연결시켜주면서
병원과 의사에 직간접적으로 제제를 가한다. HMO는 병의원의 서비스 품질을 평가하고
진료비도 실사한다. 필자가 미국 대학병원에서 만난 젊은 의사들은 “품질 평가 때문에
진료에 지장이 많다”고 불평하고 있었다.
한편, 힐러리는 1993년 남편 빌 클린턴의 대통령 재임 당시 ‘클린턴 건강보험계획’의
입안을 추진했다가 좌초했다. 당시 이 법안은 고용자가 피고용인의 건강보험을 100%
보장하게 하고, 모든 국민을 의료보험에 가입하게 하는 혁신적인 방안을 담았지만
오히려 국민의 저항에 부딪혀 상, 하원 선거에서 모두 참패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미국 국민들은 연방국가가 일률적으로 모든 것을 강요하는데 대해 저항감을 갖고
있다. 또 열심히 일하고 자신의 건강을 챙기는 사람이 ‘마약쟁이’의 의료비를 대신
내야 하는지에 대해 회의를 표시하는 사람이 많다. 지금은 원체 의료비가 올라 힐러리의
주장이 재조명받고 있지만, 그렇다고 국민의 절대다수가 힐러리의 주장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의료시스템이 고비용, 저효율로 비난받고 있지만 식코가 그리는 것처럼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그런 시스템은 아니다. 메디케어, 메디케이드를 비롯해서 주(State)어린이건강보험프로그램(SCHIP),
군인의료보험(TRICARE), 소수민족 의료보험과 주정부의 각종 공적 의료보험이 민간보험의
빈틈을 메우고 있다. 또 응급실에서는 환자에게 의료보험 가입 여부를 묻는 것이
불법이어서 응급실에서 비보험 환자가 진료를 못 받고 죽는다는 것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미국에서 응급실은 ‘빈자의 병원’으로 불린다. 또 보건소와 지역병원, 종교재단의
병원 등이 미국사회의 버팀목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고비용 의료보험 시스템이 국민에게 부담을 주고 있으며 기업에게도
짐이 돼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지만, 미국 의료보험 시스템은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으며 기업이 종업원의
해외 진료를 장려해 결국 달러 약세화에도 연관이 있다. 또 의료비는 중산층 파산의
큰 부분을 차지하며 요즘 세계 주가를 발목잡고 있는 서브브라임 모기지 부실과도
관련이 있다. 또 일부 부자들도 보험의 보장성에 회의를 표하며, 의료보험을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비용 의료보험 시스템은 이명박 정부의 경제성장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대선 주자마다 의료시스템 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주차원에서 전 주민 의료보험 체계를 도입할 계획이다.
그렇다고 미국의 의료시스템은 악(惡)이고, 따라서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은 선(善)이라는
등식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에 유학온 세계 각국의 학생들 중 어느 누구도 자기 나라 의료시스템에
만족하지 않았다. 의료시스템은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며 완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각국의 학생 중에 미국 의료시스템이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미국 관리 의료시스템의 의료서비스 품질 관리가 세계 최상급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의료시스템은 그 나라의 사회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섣불리 외국
것을 도입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미 의약분업제도를 성급히 도입하고 그 진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의 나라 의료시스템을 멋대로 재단하고 깔아뭉개는 것도 곤란하다. 미국이나
유럽 의료시스템의 극단적인 모습을 떼어내서 왈가왈부할 것이 아니라, 각국의 시스템이
각국의 현실에 접목하는 원리를 하나하나 규명하는 것이 우선이다. 각국 의료 시스템의
항목 중에 우리 것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있으면 철저히 검증해 도입하는
데에도 열려있어야 한다.
요즘 온라인의 식코 열풍을 보면, 모든 정책에서 이데올로기적 이분법적
사고가 지배하는 한국 여론 풍토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이 풍토가 언제 개선되려는지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다. 이 이분법적 논의 구조가 정상적인 의료시스템 개선방안에
관한 합리적 논의조차 막아 버렸다. 이명박 정부가 섣불리 미국 의료정책을 도입하는
것을 막은 그 '힘'은 위대하다. 그러나 그까지이다. 섣불른 정책 도입을 막았다면
이제부터는 합리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의료정책도 단언컨데, 최상이 아니다.
이 와중에서 대한민국의 환자들 역시 수많은 이유로 억울하게 죽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