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지레 포기하지 말라”

1980년 11월 미국 UCLA병원. 마이클 고트리브박사는 생전 처음 보는 환자를 만났다. 환자는 32세의 화가. 목구멍이 진균 감염으로 온통 헐었고 폐렴 증세도 지독했다. 고트리브박사는 환자의 피를 검사하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이럴 수가, 면역체계가 이토록 망가져 있다니….”

이듬해 6월 미국 질병관리센터(CDC)는 주보(週報)를 통해 세계에 새 병의 출현을 알렸다. 후천성 면역결핍증, 바로 에이즈였다.

85년엔 왕년의 인기스타 록 허드슨이 에이즈 환자임을 고백했다. 당시 레이건 미국대통령부부도, 모든 미국인들도 슬퍼했다. 이로써 ‘동성애의 병’‘20세기의 천형(天刑)’으로 여겨졌던 에이즈가 반드시 정복되야 할 질병으로 부각됐다. 88년 UN은 12월1일을 세계 에이즈의 날로 정했다.

▽‘포기하지마’〓에이즈 환자 이모씨(36)는 13번째 에이즈의 날을 맞는 소감이 남다르다. 그는 최근 사지(死地)에서 다시 태어난 기분이다. 톰 행크스가 에이즈에 걸린 변호사역을 맡아 사회의 천대에 맞서 싸워 이기는 과정을 그린 영화 ‘필라델피아’(92년)의 주인공처럼 삶에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96년 혓바닥이 백태로 뒤덮혀 이비인후과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걸핏하면 재발해 고생했다. 98년엔 목이 아프고 쉰 소리가 나서 병원에 갔다 결핵이란 진단을 받았다.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았다. 갑자기 주위의 소리가 안들리기 시작했다. 자장면과 짬뽕 맛도 구별하기 힘들었다.

이씨는 지난해에야 에이즈 감염 사실을 통보받았다. 아내와 두 아들의 얼굴이 떠올라 죽을 수도 없었다. 곧바로 치료에 들어갔다. 치료를 받다 고통 때문에 실신한 적도 여러 번.

그러나 ‘기적’이 일어났다. 3개월이 지나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호전되기 시작했다. 치료 6개월째에는 한때 8㎏까지 빠졌던 몸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이씨는 요즘 성진우의 노래 ‘포기하지마’를 흥얼거린다.

▽불치병이 아니다〓미국 애런 다이아먼드 에이즈연구소의 데이비드 호박사는 “에이즈는 당뇨병 고혈압처럼 약물로 조절이 가능한 질병이며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니다”면서 “초기에 치료를 시작하면 발병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수명을 다할 수 있다”고 말한다.

현재 의사들은 최소 3가지 약을 동시에 쓰는 ‘칵테일요법’으로 환자를 치료한다. 6개월만 약을 먹으면 80%의 환자에게 바이러스가 발견되지 않는다. 하지만 약을 끊으면 바이러스가 다시 활동한다.

▽국내 환자 폭발 위험〓에이즈는 여전히 위험한 질병. 환자의 20%에게는 칵테일 요법이 듣지 않는다. 효과가 있었던 환자들에게 내성을 갖고 다시 활동하는 바이러스가 발견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국내 환자 수가 숨은 환자까지 합치면 최소 5000명 이상이라고 추정하면서 아직 환자는 적지만 언제 급증할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동유럽과 남아시아 각국은 80년대까지 환자가 한해 수 백 명이었지만 지금은 몇 만 명이라는 것. 특히 내국인끼리 이성 접촉에 의해 전파되기 시작하면 환자가 급증하는데 국내에서 최근 4, 5년 동안 발견된 환자의 70% 정도가 내국인 이성 접촉에 의해 감염됐다.

▽예방이 중요〓에이즈는 주로 혈액으로 옮긴다는 점에서 B, C형 간염과 유사하다. 침이나 눈물 땀 등으로는 전염되지 않으므로 환자와 식사 악수 포옹은 괜찮다.

현재 미국 태국 등지에선 예방 및 치료 백신의 임상실험이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콘돔 사용이 가장 효과적 예방법. 일부에선 에이즈 바이러스가 콘돔의 미세한 틈을 뚫고 나온다고 주장하지만 낭설. ‘찢어진 콘돔’이 아니면 투과하지 못한다.

우간다는 대대적 콘돔 사용 캠페인으로 환자 수를 격감시켰다.

혈액검사에서 에이즈 양성 반응이 나오면 대부분 감염자의 첫 반응은 ‘죽고 싶다’는 것. ‘천형’이라기 보다 ‘질병’으로 보고 하루 빨리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에이즈는 주위의 따뜻한 손길이 무엇보다 필요한 질병이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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