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방역, 누가 좌우했을까?

[Dr 곽경훈의 세상보기] 방역과 영웅주의

바이킹의 후예인 노르만족은 용맹한 선조를 본받아 10~12세기에 유럽의 곳곳을 정복한다. 프랑스 왕을 위협하여 프랑스 북부에 노르망디 공국을 세우고 시칠리아에서는 무슬림 정복자를 쫓아내고 나폴리 왕국을 성립하며, 심지어 비잔틴 황제의 근위병으로 콘스탄티노플에서 복무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노르망디 공국을 다스리는 대공으로, 형식적으로는 프랑스왕의 신하인 윌리엄 1세가 1066년 잉글랜드를 정복하여 왕위에 오르면서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관계가 꼬이기 시작한다. 정복왕 윌리엄 1세 이후 잉글랜드왕은 형식적으로는 노르망디 대공으로 프랑스왕의 신하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프랑스왕의 권력은 쇠락하고 잉글랜드왕은 잉글랜드와 노르망디를 다스릴 뿐만 아니라 정략결혼을 통해 프랑스의 다른 지역에서도 영향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급기야 신하인 잉글랜드 왕이 프랑스 왕위를 요구하며 전쟁이 발발한다. 1337년에서 시작해서 1453년까지 100년 남짓 지속한 이 전쟁은 훗날 ‘백년전쟁’으로 불리며 전투의 대부분이 프랑스 영토에서 일어났다. 전황 역시 프랑스에게 매우 불리하게 진행했지만 평범한 소녀가 ‘프랑스를 구하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기적과 같은 승리를 거두면서 반전이 일어났다. 이 평범한 소녀가 유명한 ‘잔 다르크’이며 오늘날에도 ‘백년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프랑스를 구한 영웅’으로 추앙한다.

그런데 정말 잔 다르크가 백년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을까? 잔 다르크가 없었다면 프랑스가 백년전쟁에서 패배했을까? 역사에 등장하는 다른 영웅과 위인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카이사르가 없었다면 로마제국이 꽃피우지 못했을까? 샤를마뉴가 없었다면 오늘의 유럽은 존재하지 않았을까? 엘리자베스 1세와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없었다면 영국은 대영제국이 아니라 스페인의 식민지로 전락했을까? 표트르 대제가 없었다면 러시아 제국은 나타나지 못했을까? 윈스턴 처칠이 없었다면 2차 대전에서 히틀러가 승리했을까?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없었다면 미국은 대공황을 극복하지 못했을까?

‘역사는 영웅이 남긴 업적의 기록이다’란 고정관념이 우리를 오랫동안 지배해서 많은 사람이 위인과 영웅이 없었다면 승리와 영광, 발전과 진보가 불가능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역사는 걸출한 몇몇 개인의 활약이 아니라 거대한 시스템의 흐름에 따라 나아간다. 잔 다르크가 출현하지 않았어도 많은 프랑스인이 오랜 전쟁이 남긴 고통을 통해 국가의식을 지니기 시작했기에 결국에는 잉글랜드 군을 몰아내고 승리했을 가능성이 크다. 카이사르가 등장하지 않아도 고대 로마에서 공화국이 무너지고 제국으로 나아가는 흐름은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엘리자베스 1세와 프랜시스 드레이크의 활약이 없었다면 시행착오와 고통을 추가로 겪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스페인을 물리쳤을 것이다.

이런 법칙은 오늘 우리가 맞이한 코로나19 대유행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을 맞이하여 한국이 다른 국가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우수한 방역 성과를 거두는 것을 두고 몇몇은 특정 정치인에게 공을 돌리며 찬양한다. 반면에 몇몇은 특정 정치인이 아니었다면 한층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 것이라며 비난한다.

그런데 정말 특정 정치인의 역량이 코로나19 방역을 좌우했을까? 물론 통치자의 역량이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코로나19 대유행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막아내는 것에는 그런 몇몇 개인의 활약보다 대한민국이란 시스템이 지금껏 많은 시민의 노력으로 발전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 정치성향에 따라 특정 정치인을 찬양하거나 비난하는 행위보다 대한민국의 시스템을 개선하려고 지금껏 묵묵하게 일한 많은 시민에게 감사하며 연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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