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과학은 왜 잘 자야 성적이 오른다고 말할까?

[최한경의 뉴로트렌드] 특징적 수면 뇌파와 장기 기억

사람은 인생의 1/3 정도를 자면서 보낸다.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 더 많은 재미를 위해 잠을 줄이기도 하지만, 신경과학은 푹 자는 것이 신체와 두뇌의 여러 기능이 정상적으로 발휘되는 데 열쇠와도 같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자는 동안엔 여러 가지 일들이 두뇌 속에서 일어난다. 이 가운데 기억해야 할 중요한 한 가지는 바로 기억의 형성이다. 기억은 무언가를 경험하거나 배운 직후 형성되지만, 이 때의 기억은 오랜 시간 유지되기에는 연약한 단기기억이다. 이후 공고화라는 과정을 통해 장기기억으로 전환되어야만 오랫동안 기억에 남게 되는데, 수면은 공고화를 돕는 중요한 과정이다.

[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
자는 동안에 책을 다시 펼쳐 복습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자는 동안 장기기억이 또렷이 새겨질 수 있을까? 최근 독일 튀빙겐 대학병원(University Medical Center Tübingen)의 랜돌프 헬프리치(Randolph Helfrich) 박사는 최근 이에 대한 종설 논문을 《인지과학 트렌드 (Trends in Cognitive Sciences)》 지에 게재했다.

자는 동안 뇌에서 관찰되는 가장 큰 변화는 뇌파의 변화다. 전극이 부착된 모자를 쓰고 두피에서 두뇌의 전기 신호를 관측하는 뇌전도 기법을 통해서 뇌파를 측정할 수 있는데, 깨어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신호들이 자는 동안에 관측되기 때문에 뇌파를 바탕으로 수면의 단계를 분류하거나 수면의 질을 측정할 수 있다.

우리가 자는 중에 크게 두 가지 단계의 수면을 경험하는데, 하나는 눈알이 빠르게 움직이는 렘수면(rapid eye movement sleep: REM sleep)이고 다른 하나가 그렇지 않은 비렘수면(non-REM sleep)이다.

렘수면에서는 뇌파가 비교적 깨어있을 때와 비슷하지만, 비렘수면 시기에는 자는 중에만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뇌파들이 있다. 뇌파 측정과 더불어 전극을 뇌 속에 이식하는 기법으로 밝혀낸, 특징적 수면 신호에는 ‘느린 진동(전반적으로 뇌활성이 오르내림)’, ‘수면 방추(1초에 여러번 오르내리는 패턴이 반복)’, ‘잔물결(1초에 100번 이상 급격한 오르내림이 반복)’ 등이 있다.

사람은 1/4 정도의 수면 시간을 렘수면에 할애하고, 나머지 3/4 정도를 비렘수면으로 보낸다. 앞서 언급한, 수면 시 특징적 신호는 비렘수면에서 관측되는데, 비렘수면 기간 중 1/4~1/2 정도만 특징적 신호로 채워져 있다. 그렇다면 특징적 수면 신호가 관찰되는 시기와 그렇지 않은 시기는 왜 구분되며 어떤 다른 역할을 할까?

기존의 많은 연구가 수면에 특징적인 신호 자체의 역할을 규명하려고 노력해 온 반면, 헬프리치 박사는 특징적인 수면 신호가 아닌 비주기적인 뇌신호에도 주목하여 서로의 관계를 제시하고자 했다.

수면에 특징적이고 주기적인 뇌파의 역할을 이해하기 위한 연구는 최근 동물실험 연구를 중심으로 많은 발전을 거두었다. 빛으로 신경세포를 아주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는 기법인 ‘광유전학’을 활용해, 잘 때만 나타나는 ‘수면 고유 뇌파’를 만들거나 없앨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에게서 수면 중 발생하는 뇌파를 아주 빠른 속도로 판독할 수 있는 컴퓨터 기술의 발전을 통해, 자는 사람에게 수면 뇌파가 발생하는 시기에만 특정 자극을 줄 수도 있었다.

이 결과, 수면 고유 뇌파는 뇌가 기억을 저장하는데 필요하지만 그 자체가 기억의 내용을 알려주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수면 고유 뇌파를 만들기 위해서는 신경세포들이 동시에 동일한 활성을 함께 나타내야 하기 때문에, 이 때 표시할 수 있는 정보의 종류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수면 고유 뇌파는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로, ‘자 이제부터 중요한 이야기가 나올거야’ 하는 결의를 다지는 역할을 하게 해 준다. 그 직후에 등장하는 비주기적 뇌신호는 신경세포들이 다음에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집중하고 있던 바로 그 때 주어져서, 높은 엔트로피 상태의 다양한 정보가 스쳐가지 않고 장기기억으로 전환된다. 마치 롤러코스터의 가장 짜릿한 부분이 맥락없이 나오지 않고 서서히 도달한 정점 직후에 주어지는 것처럼, 수면 고유 뇌파는 뇌가 정보를 가장 효율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자는 동안 장기기억이 단단하게 저장되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자는 사람에게 정보를 전달하려는 시도는 학습법이나 광고기술 등에서 꾸준히 시도돼 왔지만 원하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앞으로 신경과학의 발전을 통해 수면 고유 뇌파를 더 효율적으로 원하는 시기에 형성할 수 있다면, 중요한 내용을 배운 날에 우리 두뇌가 비주기적인 신경신호에 더 귀 기울여 장기기억을 단단히 형성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현재까지 신경과학 연구가 밝혀낸 장기기억을 위한 팁은 복잡하지 않다. 바로 더 나은 수면위생을 갖춘 곳, 즉 조용하고 어둡고 시원한 방에서 자기 직전 컴퓨터나 핸드폰 사용을 줄이고 푹 잘 잘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수면을 통해 장기기억을 향상해 줄 수 있는 방법이다.

에디터 kormedimd@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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