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자살 유가족’ 8만 명 발생, 자살 위험 8배 높아

“자살 예방은 어떻게 살게 하느냐의 문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자살률 최상위권. 줄곧 1위를 유지하다가 최근 겨우 2위로 밀려난 우리나라는 매년 약 1만3000명이 자살로 생명을 잃는다.

자살자 수도 많지만, 그 뒤에는 유가족 수가 가려져 있다. 매년 최소 8만 명의 유가족이 발생하는데, 이 유가족의 자살 위험은 일반인의 8배가 넘는다. 하지만 자살 고위험군이라는 유가족이 지역 사회에서 도움 받을 수 있는 사회적 서비스는 거의 없다.

자살예방법 제20조에는 유가족에게 심리 상담 및 상담치료 지원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할 수 있다’일 뿐, 현장은 카오스 상태다. 라이프호프 기독교자살예방센터 장진원 사무총장에 따르면, 자살 예방 전문가의 근무 6~8개월밖에 되지 않는다. 업무가 힘들고 인력이 부족한 탓이다. 상담 치료사가 바뀔 때마다 서로 다시 파악하고, 유대감을 쌓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장진원 사무총장은 “유가족은 국가와 분리된 듯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공식 단체가 없고, 그렇기 때문에 행동력이 없고 유가족이 자체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살 예방의 필요성을 가장 잘 알고,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지만, 단체나 서비스가 없어 현실성 있는 정책 제안이 어렵다.

일본은 자살 유가족이 직접 나섰다. 자살 유가족 4명이 자살 유가족 수기집을 쓰고 그를 기반으로 다큐멘터리를 촬영했다. 자살자와 유가족 문제를 직접 공론화시킨 것이다. 그 후 자살 예방법 제정을 위해 민간 서명 운동을 시작했다. 일본은 3만 명 이상의 국민 서명을 얻으면 국회가 응답하는 제도가 있는데, 이들은 10만 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 국회로 전달했다. 그렇게 국회에 의원모임이 결성되고 긴급 예산이 편성됐다.

이렇게 일본은 세계 최초로 독립적인 자살 예방법을 제정했다. 자살 방지와 자살 유가족 지원에 초점을 두고 범정부 차원의 자살 대책을 추진했다. 1000여 명의 유가족 인터뷰로 자살의 위기 경로 사례를 수집했고, 그 결과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여러 요인과 함께 최종적으로 우울증이나 정신 건강 문제가 생기며 자살한 사례가 많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정책이 성공하며 자살률이 크게 줄었다.

영국은 자살률 11.2%로 우리나라보다 절반 이상 낮은 나라며 선진국 중에서도 매우 낮은 편이다. 영국은 전국적으로 58개의 자살 유가족 자조 모임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각 그룹은 ‘동료 상담가’가 있는데 유가족 가운데 사별 후 3년 이상이 지나면 동료 상담가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교육과 면담을 거쳐 선발되는 이 동료 상담가는 그 누구보다 유가족의 심정을 잘 알고 있는 심리 상담가다. 국비 펀드와 기부금 등으로 운영되는 자조 모임을 포함해 유가족 지원에 박차를 가한 영국의 정책은 성공적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이처럼 영국, 일본 등에서 유가족이 서로를 돕는 서비스의 효과성은 이미 검증됐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유가족이 자살 예방 교육 강사로 나서는 등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지만, 사회적인 인식 변화와 국가의 지원이 조금 더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자살예방협회 백종우 사무총장은 “경험 있는 유가족이 고통을 겪는 유가족을 가장 잘 도울 수 있다”며 “이들의 노력이 자살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태도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Photographee.eu/shutterstock]

연희진 기자 miro22@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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