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인간에 영양중단은 법원판단 따라야”

서울대병원 ‘4단계 연명치료 중단 기준’ 마련

존엄사 판결을 받은 김 할머니(77)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인공호흡기를 떼어낸

뒤에도 안정된 상태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서울대학교병원은 지난 3일 의료윤리위원회(위원장

오병희 부원장)를 열고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에 대한 진료권고안’을 공식적으로

통과시켰다고 7일 밝혔다.

이 권고안은 존엄사를 환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등 4가지로

나눠 각 단계에 맞는 연명치료 중단 방법을 미리 결정해 놓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수준 1 (환자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경우)

우선 환자 본인이 의식이 있는 상태이면서 암, 후천성 면역결핍증(AIDS), 만성

질환의 말기 등 상태로 연명치료를 받아야 할 상황인 경우, 환자 자신이 사전의료

지시서에 서명함으로써 연명치료를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대병원은 지난 5월19일부터 말기 암 환자를 대상으로 이러한 사전의료 지시서를

받고 있다.  

▽수준 2 (가족이 결정해야 하는 경우)

김 할머니처럼 환자 본인은 혼수상태에 빠지고 가족이 “평소 환자 본인이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경우의 기준이다. 권고안은 ‘환자의 평소 가치관이나

신념 등에 비추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환자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인정되고, 환자에게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연명치료의

중단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경우’라면 담당 의사의 판단에 따라 환자를

대신해 가족이 사전의료 지시서에 대신 서명할 수 있도록 했다.

김 할머니 같은 경우가 또 발생하더라도 법원의 판단을 구할 필요 없이 의료진과

가족이 환자의 ‘추정적 의사’를 존중해 연명치료 중단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이다.

▽수준 3 (병원 의료윤리위원회가 판단해야 하는 경우)

권고안은 환자가 인공호흡기 같은 특수 연명치료 장치에 의존하는 식물인간 상태일

경우 병원 의료윤리위원회가 의학적 판단에 따라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인공호흡기를 떼기 이전의 김 할머니 같은 상황에 대해 병원 윤리위원회 차원에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수준 4 (법원의 판단을 따라야 하는 경우)

현재의 김 할머니처럼 인공호흡기 없이 생명을 유지하는 식물인간 상태에 대해

영양 공급을 끊음으로써 사망을 유도하는 결정은 법원의 판결에 따르도록 권고안은

결정했다. 수준 3의 경우 인공호흡기 등 연명장치만 제거하면 생명이 끊어질 수 있지만

수준 4의 경우는 인공호흡기 같은 생명연장장치 없이도 생명이 유지되기 때문에 영양공급

같은 적극적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는 법원의 판결을 받도록 규정한 것이다.

권고안은 이런 4가지 상황을 제시했지만 생명을 단축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안락사,

환자의 자살을 유도하는 의사조력 자살 등은 어떤 상황에서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이 권고안은 연명치료에 대한 불분명한 기준 때문에 의료 현장에서 큰 혼란이

빚어지고 있는 가운데 서울대학교병원 내과(과장 박영배 교수)가 여러 의료진 및

법률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만든 안이 서울대학교병원 의료윤리위원회를 통과함으로써

확정됐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서울대병원의 진료권고안이 연명치료에

대한 논란을 줄이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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