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엔 없지만 대한민국은 치질수술 공화국. 왜?

“수익 된다” 의사 몰리며 수술 급증…자연치유 가능한데도…

회사원 이 모(36) 씨는 최근 치질 때문에 항문전문병원을 찾았다. 1년 전부터

조금만 피곤하면 팬티에 피가 묻어 신경이 쓰였는데 얼마 전부터 변을 볼 때 창자가

변과 함께 나가는 느낌이 들자 겁이 난 것. 의사는 “수술이 간단해 길어야 1주일만

하면 회복할 수 있다”며 수술을 권했다. 그러나 이 씨는 수술 뒤 2주일 이상 매일

아침 변을 볼 때 살을 찢는 통증과 싸워야만 했다. ‘도대체 의사 중에 이 수술을

받은 사람이 있을까? 간단한 수술이라고? 찢고 꿰매기만 하는 의사 자신은 간단하겠지만

환자는….’

이 씨처럼 ‘간단한 수술’ ‘하루 만에 퇴원’ 등의 말에 혹해 치질수술을 받고

고통 속에서 후회하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 이에 대해 상당수 의대 교수들은 “수술

환자 중 상당수는 굳이 수술이 필요 없지만 의사들이 경쟁적으로 수술을 권유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의사가 늘면 수술도 증가한다”

치질은 국내 수술 1위의 병이다.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06 주요수술통계’에

따르면 21만 1970명이 치질 수술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2000년 12만 명에 불과했는데

6년 새 두 배로 껑충 뛰었다.

치질수술의 증가추세는 1990년대 초 치질전문병원이 잇따라 등장한 시점과 궤를

같이 한다.

1987년 서울 송도병원이 치질 항문 전문병원으로 출발했고 뒤이어 대항병원(구

서울외과), 한솔병원(구 이동근 외과), 양병원 등 ‘항문 병원’이 잇따라 생겼다.

이와 함께 언론에서는 레이저 수술, 무통 수술 등 ‘간편한 치질수술’에 관한 보도가

봇물을 이루기 시작했고 전국적으로 치질 항문 전문 병원들이 우후죽순으로 문을

열었다.  

대한대장항문학회 이우용 총무이사는 “외과 의사 절반 이상이 치질 전문으로

개원하기를 원한다”면서 “치질수술이 성형수술만큼은 못해도 암(癌) 수술보다는

보험수가가 높아 개원가에서는 수익이 괜찮은 편”이라고 말했다.

“의사 한 명이 하루 10명 수술하기도”

이름난 전문병원에서는 병원 홈페이지에 수술 건수를 제시하고 있다. 이른바 ‘수술

많이 하는 우리 병원이 최고병원’이라는 식으로 환자를 유혹하고 있는 것. 

A병원은 7년 동안 치질, 대장암, 탈장, 충수염(맹장) 수술을 모두 합친 12만 건

중에서 치질 수술이 10만 건에 이른다. 1년 동안 1만 2000건 중에서는 9000건을 차지한다.

이 병원은 2008년 현재 매달 700~800건의 치질수술을 하고 있다.

의사들은 일주일에 3, 4일 수술을 하며 이날에는 아침 8시 30분부터 오후 2시까지

약 25분 정도 소요되는 치질수술 계획이 꽉 차 있다. 수술이 많은 의사는 한 달에

120~150건 정도, 대개는 100건 정도 수술한다. 많을 때에는 하루 10명도 수술한다.

그야말로 ‘수술 기계’라고 할 수 있다.

B항문질환 전문병원 관계자는 “환자들 대부분이 초진하면서 수술을 예약한다”며

“부끄러운 질환이다 보니 한 번 온 김에 해결하려는 성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치질의 치료방법으로는 환부에 주사를 놓아 사이즈를 작고 딱딱하게 만드는 주사요법,

직장부터 치질이 시작되는 부분까지 절개하는 스테플러(자동문압기) 수술법, 절개법이

있다. 절개법은 칼, 전기, 마이크로웨이브, 레이저 등 기구에 따라 여러 방법으로

분류한다. 대학병원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수술한다.

치질수술, “서두를 것 없다” VS “참는 것 능사 아니다”

대부분의 치질은 암처럼 서둘러 수술을 받아야 하는 질환이 아니다. 대학교수들은

“일부 개원 의사들이 환자에게 근본적인 치료법은 알리지 않고 수술로 당장의 문제만

없앤다고 광고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서울대병원 외과 박규주 교수는 “대체로 치질수술은 서두를 필요가 없다”면서

“치질을 예방하는 식습관이나 배변습관이 익숙해지도록 1주일 정도 노력하는 것이

수술을 받고 1~2주 동안 통증에 시달리는 것보단 현명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사들이 환자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 치질이 악화되는 것을 막고 예방하는데

더욱 더 중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송도병원 항문질환클리닉 남우정 과장은 “‘불편한 것 참고사세요’가

능사는 아니다”면서 “암처럼 위험한 병을 다루는 의사들은 치질을 별 것 아니라고

여길 수 있지만 매일 배변하면서 불편을 느끼는 환자 입장은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병원 교수는 “상당수 개원 의사들이 자연 치유가

가능한 환자에게도 수술을 권하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며 이는 결국 돈과 관련이 있다”고

단언했다.

현재 대학병원에서는 치질 환자에게 치료 행위마다 치료비를 받는 ‘행위별수가제’를

적용하고 있지만, 개원가에서는 수술을 하면 병원비가 똑같은 ‘포괄수가제’를 적용한다는

점도 결과적으로 수술 남발의 원인이 되고 있다. 병원으로서는 수술 환자가 많을수록

이익이기 때문에, 입원 기간을 줄이고 건수를 늘이는 방향을 선택한다는 것. 거기에다가

무통치료, 한방치료 등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부분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설명이다.

수술하면 치질과 영원히 안녕?

문제는 치질 수술을 해도 남아있는 조직에서 언제든 새로운 치질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소화기외과 전호경 교수는 “치질 수술을 할 땐 치질이

잘 생기는 위치 세 군데를 주로 떼어내는 방식으로 한다”고 말했다. 박규주 교수는

“항문을 360도 도려내는 수술을 하면 재발할 가능성이 사라지지만 이 수술법은 합병증이나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 거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호경 교수는 “상당수 치질은 재발이 아니라 새롭게 생겨나는 것”이라며 “화장실에서

신문이나 잡지를 보며 오래 앉아있는 것처럼 치질을 생기게 하는 나쁜 습관을 계속

갖고 있으면 수술을 해도 소용이 없다”고 일축했다.

이에 대해 대항병원 치질클리닉 김혜정 외과 전문의는 “수술 후에 재발하는 사례는

10년 동안 단 5%에 불과했다”면서 “혹여 재발하더라도 그에 따른 치료를 하면 되기

때문에 적극적인 수술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요구한 또 다른 대학병원 교수는 “수술 후 재발사례에

대한 조사가 객관적인지 의문”이라면서 “재발하지 않은 환자의 상당수는 수술을

받지 않아도 자연 치유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담당하는 치질

환자의 수술비율은 개원가의 10% 정도에 불과하다”면서 “환자 입장에서도 신중히

수술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박규주 교수는 “의사들이 수련의 과정에서 외과에 지원하지 않는

추세에서 그나마 외과에 지원한 의사도 대부분 치질 항문 분야에만 지원하면 나중에

암 환자를 수술할 의사가 부족해질 수 있다”며 “의료 자원을 어떻게 적절히 배분해야

할지 고민하는 차원에서 치질 수술의 남발 문제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조경진 기자 nice2088@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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