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티스는 방사성의약품으로 대박 났다는데"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Novartis)는 지난해 대박이 났다. 전립선암 치료제(플루빅토) 하나만으로 1조4천억원 매출을 올렸다. 전년 대비 262%나 늘었다. 신경내분비암 치료제(루타테라)로도 8,200억원 매출을 올렸다.

[사진=노바티스]
여기에 주목하는 것은 ‘방사성의약품’이 이제 시장에서 본격적인 성공 단계에 들어갔다는 상징적 의미 덕분. "방사성의약품을 통한 항암 치료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얘기다.

노바티스 성공을 계기로 다른 글로벌 거대 제약사들도 방사성의약품 신약개발 경쟁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사실, 의료 현장에서 이들 방사성의약품 수요가 빠르게 늘어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일부 암에서 치료 효과가 기존 항암제 치료보다 낫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국내 생산기반은 이를 못 따라가고 있다. 수요가 많은 전립선암, 간암, 갑상선암 치료제는 거의 전량 수입하고 있고, 그 원료에 해당하는 방사성동위원소(RI, Radioisotope)조차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 겨우 10% 정도만 자급하는 정도다.

과기정통부, “2030년 방사성동위원소 자급률 100%, 글로벌 신약 3개 내놓겠다”

이에 국내 바이오·제약업계에서도 대규모 투자를 서두르고 있다. SK바이오팜은 미국 투자를 통해 의약품 원료(Ac-225) 공급원을 확보했고, 퓨처켐은 전립선암 치료제(177Lu-FC705) 임상 2상을 한미 양국에서 추진하고 있다. 셀비온, 새한산업, 에스엔비아(SNvia) 등 벤처들 발걸음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정부 역시 최근 ‘방사선 바이오 성과창출 전략’을 내놓으면서 이를 뒷받침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2030년까지 핵심 동위원소 자급률을 100% 달성하고, 국제적인 신약(진단제+치료제) 후보 3개를 도출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수요 공급 전반에 걸친 지원·관리체계를 갖춰 세계 방사성의약품 시장을 선점하겠다“(과기정통부 이창윤 1차관)는 비전도 제시했다.

그런 방사선 바이오 생태계 구축의 핵심은 전국 권역별로 기업-대학-연구-병원(産學硏病)이 협력하는 클러스터(cluster)를 집중 육성한다는 것. ‘동남권’(동위원소산업: 부산 기장, 경북 경주)을 시작으로 ‘서남권’(유도체 연구: 대전, 전북 정읍)을 거쳐 ‘수도권’(신약 개발: 서울)으로 이어지는 3개 거점을 제시했다.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이홍제 연구센터장, "세계적인 RI 클러스터 만들자면"

마침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의학원장 이창훈)이 최근 ‘동남권 방사성의약품 GMP 제조소’를 준공하고 가동에 들어간 시점과 맞물린다. 전립선암 진단에 쓰이는 동위원소(Ga-68 PSMA-11)를 만들기 시작한 것. 부울경(부산, 울산, 경남)에선 처음이다.

이를 추진해온 이홍제 연구센터장(핵의학과)에게 정부의 방사선 바이오 전략이 나오게 된 의미, 동남권 동위원소 클러스터가 어떤 잠재력을 갖고 있는지 알아봤다.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이홍제 연구센터장. [사진=코메디닷컴]
- 2030년까지 RI(방사성동위원소) 자급률 100%를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RI는 의료, 산업,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는 중요한 물질이다. 특히 의료용 RI는 현재까진 주로 전립선암, 간암, 갑상선암 진단과 치료에 쓰여왔다. 앞으론 더 다양한 암 치료에 맞는 핵종들이 나올 것이다.

RI는 크게 3가지 채널로 만들어진다. 원자로(Nuclear Reactor), 가속기(Accelerator), 그리고 발생기(Generator)다. 현재 동남권은 경주에 ‘양성자 가속기’가, 여기 기장 동남권원자력의학원 GMP 제조소에 소형 ‘발생기’가 있다.

아직은 생산 능력이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3년 후면 기장에 ‘수출용 신형연구로’(일명 ‘기장로’)가 완공되고, 여러 암 진단제, 치료제를 만들 수 있는 사이클로트론(cyclotron) 가속기까지 갖추게 된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 그러면 임상 현장에서 필요한 RI들 다 만들어낼 수 있다는 얘기인가?
“바로 그게 지금의 동위원소 생산 인프라를 빠르게 고도화하는 지름길이다. 폭발적으로 증가할 미래의 RI 수요에 대비할 핵심 역량이기도 하다. 원자로, 가속기, 발생기 제각각 만들어낼 수 있는 RI가 다르기 때문이다.

방사성동위원소(RI)의 채널별 주요 생산 품목. [표=코메디닷컴]
특히 원자로(연구로)~가속기~사이클로트론~발생기로 이어지는 촘촘한 공급망은 우리 동남권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이상적인 ‘RI산업 클러스터’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 시설과 장비, 전문인력이 함께 유기적인 성장을 하는 인프라다.

그럴 때 RI 100% 자급률이 잠깐 달성하고 마는 이벤트가 아니라 그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는 지속가능한 틀을 갖추게 되지 않을까 싶다. 여기에 부산시 바이오헬스 정책과도 시너지를 낼 수 있다면 규모가 더 큰 ‘방사선 바이오’ 분야에서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게 될 것이다. 방사선 바이오는 동위원소보다 부가가치가 훨씬 더 크다.”

- 그 구도에서 동남권원자력의학원 ‘방사성의약품 GMP 제조소’의 역할은?
“GMP(Good Manufacturing Practice, 우수 의약품 제조·관리 기준) 제조소는 전국에 25곳 정도 있다. 대부분은 제약사들이 만든 것들. 몇 곳 연구, 임상용 시설도 수도권에 몰려 있다.

반면, 동남권 방사성의약품 GMP 제조소는 연구용과 임상용 생산까지 가능한, 특별한 GMP 시설이다. 임상시험용 신약도 만들 수 있는 핵심 기반이란 얘기다. 현재는 전립선암 진단제만 만들고 있지만, 부산대 BK21사업단, 바이오벤처 에스앤비아(SNvia) 등과 간암 치료용 ‘방사성 미립구’(radioactive microsphere) 개발에도 착수했다. 여러 암종의 진단제, 치료제 등으로도 생산 역량을 차츰 넓혀나갈 계획이다.”

- 의학원 바로 옆이 ‘동남권 방사선 의·과학 산업단지’다. 큰 시너지를 낼 수도 있을 텐데.
“그렇다. 동위원소 대량생산이 가능한 ‘수출용 신형연구로’와 ‘동위원소 활용연구센터’가 구축되고 있다. 여기에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은 현재 암 치료 전문 ‘원자력병원’이 있고, ‘GMP 제조소’도 구비했다. 산업-연구-병원의 협력 구도가 이미 형성돼 있다.

최근 ‘한국 방사성의약품-헬스케어 협의회’를 창립해 방사성의약품 기관, 대학, 기업들과의 협력 네트워크도 만들었다. 방사성의약품 실용화, 융합연구까지 내다보는 장기적인 포석이 될 수 있다 기대한다.”

-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이 병원 임상과 방사선의학 연구라는 ‘투트랙(two track)’으로 달려온 것이 벌써 10년을 넘었다.
“오랜 준비 끝에 의학원 연구센터가 방사성의약품이란 큰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중요한 변곡점에 이르렀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 우리의 연구 경험이 충분하지 않고, 전문인력과 비임상·임상 연구 인프라가 부족한 것도 현실이다. ‘치료용’ 동위원소도 생산할 ‘사이클로트론’ 구축부터 병원 규모의 확대(500병상)에 이르기까지 가야 할 길도 아직 많이 남아있다.

이에 동남권이 세계적인 RI산업 클러스터로 힘차게 나아가기 위해선 관련 역량 강화에 가속 페달을 밟아야 한다. 그러자면 60년 역사를 지닌 본원(한국원자력의학원), 국책연구기관 한국원자력연구원은 물론 부울경의 여러 기관, 대학병원들과의 긴밀한 협력에도 박차를 가해야 할 때다.”

    윤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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