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미안해. 평생 고생만 시켰어”...중년·노년 남편이 변하는 이유?

[김용의 헬스앤]

현재의 50~60대는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50~60대 부부는 병치레가 잦은 양가 부모님에 신경 쓰고 아직 독립하지 못한 자녀들까지 지원하는 ‘낀 세대’다. 은퇴할 나이에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이 늙고 병들면 자녀들에게 의존할 마음은 없다. 아프면 늙은 부부가 서로 간병해야 한다. 노인이 노인을 간병하는 ‘노노 간병’ 시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70대 남편은 젊을 때에 비해 스트레스가 적다. 은퇴한 사람이 대부분이어서 직장 일이나 대인관계에서 치이는 일이 많지 않다. 만나기 싫은 사람은 안 만나도 생활에 지장이 없다. 반면에 이런 남편들과 함께 사는 중년-노년 여성들은 오히려 스트레스가 늘어난다. 특히 은퇴 후 “밥 달라”고 보채며 집에서 세끼를 모두 먹는 남편이 있다면 속에서 열불이 난다. 외출도 마음대로 못한다. 가사분담을 잘 하는 젊은 부부들을 보면 너무 부럽다. 자녀를 출가시켜 이제 좀 편해질 나이에 남편 시중으로 20~30년을 더 보내야 할까?

아내의 남편 만족도 높아진 가장 큰 이유... “가사분담 늘었다

통계청이 17일 발표한 ‘2024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배우자와의 관계에 만족한다’는 아내-남편이 75.7%나 됐다. 매우 만족 45%, 약간 만족 30.7%다. 지난 5월 가족관계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다. 2년마다 실시되는 이 조사에서 200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배우자 만족도가 높아진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일까? 가사분담 부부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통계청 조사에서 “우리 부부는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하고 있다”는 응답은 2008년만 해도 남편 8.7%, 아내 9%에 불과했다. 하지만 올해는 남편 24.4%, 아내 23.3%로 치솟았다.

배우자 만족도가 높아진 또 다른 이유로 올해 4월부터 8월까지 5개월 연속으로 혼인 건수가 1년 전보다 늘어난 것도 있다. 신혼부부가 증가해 전체 배우자 만족도를 끌어 올린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아내의 만족도를 보면 20대가 55.2%로 가장 높았다. 거의 신혼부부이고 맞벌이가 많아 가사분담 실천율도 높은 세대다. 이어 30대(36.8%), 40대(25.2%), 60대(19.5%), 50대(17.5%), 80세 이상(17.1%), 70대(16.6%) 등의 순이었다.

과거처럼 배우자의 여러 문제를 꾹 참고 억지로 혼인 관계를 이어가는 남녀가 줄어든 점도 배우자 만족도가 높아진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조사에서 ‘이유가 있으면’ 또는 ‘경우에 따라’ 이혼할 수 있다는 응답은 전체 남녀의 68.7%나 됐다. 2008년(39%)의 1.8배다. 결혼한 사람의 경우 이 비율은 2008년 33.4%에서 올해 64.5%로 급증했다. 나이 들었어도 ‘황혼 이혼’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80세 이상이 70대보다 남편에 더 만족, ?

나이별 분석에서 60대 아내 만족도가 50대보다 높고, 80세 이상이 70대보다 더 남편에 만족한다는 비율이 높은 게 눈에 띈다. 왜 그럴까? 직장에서 은퇴한 남편이 많은 60대가 아직 현업에 있는 50대 남편보다 가사 분담율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80세 이상은 아내가 노쇠한 데다 병치례가 잦으면 남편이 가사를 분담할 수밖에 없다. 병든 아내를 간병하는 노인 남편도 적지 않다.

남편이나 아내 중 간병이 필요할 경우 자녀와 함께 지내겠다고 생각하는 고령자는 2.5%에 불과하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복지포럼 최신호에 실린 보고서에 따르면 고령자들은 건강 악화로 독립적 생활이 불가능해도 자녀나 가족에게 기대지 않고 자신의 집에서 계속 살고 싶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나 형제·자매 집 근처에서 따로 살 것이란 답변도 4.3%에 머물렀다.

늙고 병들면 우리 부부밖에 없다

현재의 50~60대는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50~60대 부부는 병치레가 잦은 양가 부모님에 신경 쓰고 아직 독립하지 못한 자녀들까지 지원하는 ‘낀 세대’다. 은퇴할 나이에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이 늙고 병들면 자녀들에게 의존할 마음은 없다. 아프면 늙은 부부가 서로 간병해야 한다. 노인이 노인을 간병하는 ‘노노 간병’ 시대다. 코로나19 유행 중 ‘현대판 고려장’으로 소문난 요양시설에 배우자를 보내지 않겠다며 각오를 다지기도 한다.

80세 이상 아내가 70대보다 남편에 더 만족한다는 응답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 늙고 병든 부부가 기댈 사람은 배우자밖에 없다. 노쇠한 아내를 위해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는 노인 남편의 얘기는 이제 낯설지 않다. 지금의 50~60대는 부부 둘이서만 20~30년을 더 살아야 한다.

임종을 눈앞에 둔 상태에서 “여보, 너무 미안했어. 평생 고생만 시켰어...” 뒤늦은 후회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보다는 “우리 잘 만나서 너무 행복했다”라는 말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 부부 둘이서만 생활하는 20~30년은 길고도 짧다. 젊었을 때 후회되는 일이 있었다면 이를 만회하는 시간으론 충분하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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