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지권리, 어떻게 보장해야 하는가?

[박창범 닥터To닥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우리나라에서 2019년 헌법재판소가 임의로 임신중지를 한 여성과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임신중지를 시행한 의사를 처벌하는 조항에 대하여 위헌판결을 했다. 국회에서 낙태죄를 대신하는 법률을 개정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 2021년 1월1일 해당 조항의 효력이 상실되었다. 이에 따라 낙태를 하더라도 당사자나 의사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 다만, 판례에 따르면 태아가 스스로 생존할 수 있음에도 임의로 임신중지를 한 경우 살인죄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임의적인 임신중지가 합법화되었지만 후속 법률이 개정되지 않아 여러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첫째, 인공임신중절수술은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는 비급여항목이다. 다만 모자보건법에 의하여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본인이나 배우자가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이나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혈족 또는 인척간에 임신된 경우, 임신지속이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인공임신중절수술이 비급여항목이기 때문에 사용하는 의약품도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을 수 없고 의료기관마다 비용이 다르다.

둘째, 유산유도제로 일명 ‘먹는 낙태약’으로 알려진 임신중지의약품은 안전성과 효과를 인정받았고, 마취가 필요없이 사용이 손쉬운 이점을 가지고 있어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필수의약품으로 등재되었다. 2023년 기준 전세계 96개국이 임신중지의약품을 의사처방이 없이도 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임신중지의약품 도입 이후 핀란드에서 임신중절을 하는 환자의 96%(2015년 기준)가 해당 약물을 사용하고 있다. 2016년 기준으로 프랑스는 64%, 2023년 미국은 63%의 환자가 사용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임신중지의약품의 제조,수입 판매허가가 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국내에서 거래 및 유통은 모두 불법이다. 하지만 많은 임신부들이 임신중절을 위하여 인터넷에서 개별적이고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임신중지의약품을 구입하고 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약물을 구입하는 경우 의약품의 진위를 확인할 수 없고, 약물의 부작용이나 임신중지 실패한 경우 이에 대한 제조사에 책임을 묻기 어려운 등 건강상의 위험성을 임신부 스스로가 감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셋째, 정부는 의사의 인공임신중절수술 요청에 대한 의사의 진료거부권을 인정했다. 이 때문에 실제 임신부가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받을 수 있는 병의원을 찾기 어렵다. 예를 들어 2022년 보건복지부 의뢰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시행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 따르면 산부인과 의사 중에서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하고 있다고 응답한 경우는 40.5%에 불과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실제로 임신중단을 원하는 여성들이 인공임신중절수술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사를 찾는 과정에서 여러 번 거절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고 이로 인해서 임신중지가 지연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넷째, 현재 임신중절에 대한 법률이 부재한 상태로 임신중지수술 자체가 어디서부터 합법인지 명확하지 않다. 특히 수술을 임신 몇 주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공식적이고 정확한 지침이 없어 실제 의사들이 인공임신중절수술 가능여부를 결정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국가인권위원회는 2024년 9월25일 여성의 임신중지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낙태’, ‘중절’ 등이 부정적인 용어임을 감안해 ‘임신중지’ 혹은 ‘임신중단’으로 바꾸고 △현재 법령에 존재하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된 범위를 삭제하고 모든 임의적 임신중단수술에 대하여 건강보험을 적용할 것을 보건복지부장관에게 권고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장에게는 임신중지의약품을 도입해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할 것을 권고했다. (국가인권위원회 2024.9.25. 23진정0752100결정)

헌법재판소에 의하여 낙태죄가 위헌결정이 된 지 벌써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국회에서는 임신중지를 얼마나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회는 여성들의 임신에 대한 독립적인 결정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안전하게 임신중지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루 바삐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박창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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