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시보 효과 vs. 노시보 효과
[차 권하는 의사 유영현의 1+1 이야기] ⑫ ‘내분비 요법’ 받는 유방암 환자라면
플라시보(Placebo)와 노시보(Nocebo)는 심리적 기대가 신체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설명한다. 이 둘의 개념은 상반되지만, 의학과 심리학에서 중요한 연구 주제이다.
플라시보는 라틴어 ‘placere’에서 유래한 단어로 "기쁘게 하다" 또는 "즐겁게 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라틴어 성경의 시편 116편 9절에도 나온다. 중세 유럽의 장례식 때, 유가족을 위로하는 데 사용하면서 점차 "나는 기쁘게 할 것이다"라는 뜻으로 사람들을 위로하거나 달래는 말로 널리 쓰였다. 더 나아가 실제 효과는 없지만, 환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약을 의미하게도 되었다.
하지만 프라시보 효과가 기대되더라도 실제 치료에는 사용하지는 않는다. 환자를 속인다는 윤리적인 문제, 실제 병의 원인을 치료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효과가 일관되지 않는 점 등이 원인이다. 그러나, 약물 효과를 조사하는 임상시험에서는 대조군으로 반드시 사용된다.
반면, 노시보는 해를 끼친다는 의미가 있는 ‘nocere’에서 유래한 말이다. “나는 해를 끼칠 것이다”는 뜻으로 플라시보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용되게 된다. 노시보 효과는 환자가 부정적인 기대를 할 때 실제로 해로운 결과가 나타나는 경우를 의미한다.
프라시보 효과는 심리적 기대가 긍정적으로 작용하므로 건강개선에 도움이 되지만, 노시보 효과는 심리적 기대가 부정적으로 작용하므로 건강 악화로 나타난다. 노시보 효과는 내분비 요법을 받는 유방암 환자에서 흔히 고통을 일으킨다.
젊은 나이에 유방암 발병이 높은 이유는
유방암은 한국인 여성암 중 발병 1위이다. 환자 수는 꾸준하게 증가하고 젊은 나이에도 안심할 수 없다. 지난 20여 년간 발병률이 3배 가까이 늘었다.
젊은 나이에 유방암 발병이 높은 이유 중 하나는 결혼과 출산 나이의 증가이다.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 노출 기간이 늘어나 유방암 발생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임신과 모유 수유 감소도 원인의 하나이다. 임신과 모유 수유 기간에는 에스트로겐 영향을 덜 받을 수 있는데, 이런 기회가 줄어들어 유방암 발생이 늘고 있다.
유방암 여러 종류 중 여성호르몬 양성 유방암이 흔하다. 여성호르몬 양성 유방암은 에스트로겐 수용체가 단독 양성 혹은 프로게스테론 수용체와 함께 이중 양성인 경우를 의미한다.
여성호르몬 양성 유방암에서 호르몬을 조정하는 내분비 요법이 사용된다. 에스트로겐은 유방암 세포의 에스트로겐 수용체에 결합하여 세포 증식을 촉진하는데, 내분비 요법은 이 과정을 차단함으로써 암의 진행을 억제한다.
오랜 기간에 걸친 연구 결과, 내분비 요법은 재발률을 낮추고 생존율을 향상하는 효과가 30%나 된다. 내분비 요법은 보조요법으로 불리지만 이제 여성호르몬 양성 유방암 환자에는 없어선 안 될 필수요법이 되었다. 내분비 요법은 크게 세 가지다.
여성호르몬 양성 유방암 환자에 "필수"가 된 내분비 요법은
첫째, 항(抗)에스트로겐제(타목시펜). 타목시펜은 선택적 에스트로겐 수용체 조절제로, 에스트로겐이 유방암 세포의 수용체에 결합하는 것을 방지한다. 이 약물은 폐경 전후 모두에서 사용할 수 있으며, 특히 폐경 전 여성에서 널리 사용된다. 타목시펜은 유방암의 재발을 줄이고, 전이를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다. 일반적으로 5년 이상 장기간 복용하며, 최근 연구에서는 10년간 복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둘째, 아로마타제 억제제. 아로마타제 억제제는 주로 폐경 후 여성에서 사용된다. 이 약물은 에스트로겐이 남성호르몬으로부터 합성되는 것을 억제하여 혈중 에스트로겐 농도를 낮춘다. 아로마타제 억제제에는 아나스트로졸, 레트로졸, 엑스메스테인 등이 있으며, 이들은 타목시펜보다 재발 방지 효과가 더 뛰어난 편이다. 하지만, 뼈의 미네랄 밀도를 감소시킬 수 있어 골다공증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
셋째, 난소 억제 내분비 요법. 폐경 전 여성에게서 난소를 억제하여 에스트로겐 생성 자체를 줄이는 방법이다. 뇌하수체에서 나오는 성선자극호르몬을 억제해 난소에서 에스트로겐을 분비하지 못하게 투여하는 주사제 고세렐린이 가장 많이 사용된다. 난소를 떼어내는 수술도 같은 요법에 해당한다. 난소 억제 내분비 요법은 고위험군에서 타목시펜이나 아로마타제 억제제와 병행 사용할 수 있다.
여기서 ‘내분비 요법’은 다른 항암요법에 비하여 부작용이 현저히 적다. 하지만 여성호르몬 양성 유방암 환자라고 치료약물 부작용이 없지는 않다.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마친 뒤 안심하고 타목시펜이나 아로마타제억제제 치료에 들어가면 환자 중 상당수는 부작용을 호소한다.
환자 일부는 내분비 요법 중단을 고민한다. 부작용을 두려워하는 많은 환자가 내분비 요법 개시를 거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분비 요법을 받지 않으면 유방암에 의한 사망률을 증가시키므로 내분비 요법을 받되 부작용을 적절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
내분비 요법에 '노시보 예방 교육' 함께 필요한 이유는
내분비 요법은 에스트로겐이 줄어들어 나타나는 폐경기의 전형적인 증상과 유사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관절통, 얼굴 화끈거림, 체중증가, 감정 불안, 성욕감퇴와 질(膣) 건조 등이다. 이런 부작용은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내분비 요법을 받은 환자들이 흔히 호소하는 두통, 피부 자극, 어지럼증, 오심, 소화기 자극 등은 여성호르몬 억제와는 무관하다. 내분비 요법을 받는 유방암 환자가 이런 부작용을 경험하는 경우는 노시보 효과에 해당한다.
내분비 요법을 받는 환자가 부작용을 예견할수록 실제 부작용을 경험할 가능성은 크다. 이런 부정적인 기대가 높을수록 유방암 환자의 육체 회복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따라서 노시보 효과로 치료를 망치지 않기 위하여 긍정적인 기대를 하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 독일 연구진은 매우 의미 있는 무작위 대조시험을 해보았다. 환자에게 비특이적 부작용인 노시보 효과를 미리 설명하고 지도하면 예방훈련을 받지 않은 군보다 부작용이 덜 나타난다는 결과를 얻었다.
삶의 질에도 차이가 났다. 연구 결과는 부작용 예방 훈련과 같은 심리적 개입이 유용하다는 점을 가르쳐 준다.
특히 차 음용은 유방암의 내분비 요법과 관련된 주요한 이슈 중 하나였다. 차 애호가인 유방암 환자에게는 장기간 내분비 요법을 받는 동안 차를 마셔도 되느냐는 의문이 당연하였다.
이런 의문은 수많은 연구를 통하여 해소되었다. 연구들은 차가 내분비 요법과 충돌하지 않는다고 발표하였다. 더 나아가 차가 내분비 요법의 효능을 더 증강한다는 연구도 여럿 발표되었다.
차(茶)가 갖는 특별한 효능에 노시보 차단까지
그렇다면 차가 내분비 요법 관련 노시보 효과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아쉽지만, 그런 주제의 연구가 아직까진 발표된 적은 없다. 대학 병원에서 은퇴하고 암병원으로 옮긴 필자도 이젠 이 주제를 더 연구할 기회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추는 할 수 있다. 과거 연구들은 약물 효과에 대한 부정적 기대는 불안 혹은 우울과 관계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차는 불안과 우울증을 개선하는 효능이 탁월하다. 그러므로 차는 내분비 요법 관련 노시보 효과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차를 마시고 상담하면서 부작용 예방훈련을 지도한다면, 효과적인 노시보 효과 차단이 기대된다. 유방암 환자의 노시보 효과 예방 훈련! ‘차 클리닉’(tea clinique)에 개념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유영현 부산 엘앤더슨병원 진료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