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에서 노는 사람들보면 더 침울”...여름 우울증의 실체
[권순일의 헬스리서치]
우울증은 여름보다는 주로 겨울에 많이 나타나는 증상이다. 해가 짧아 날이 일찍 어두워지면 기분을 좋게 만드는 멜라토닌이나 세로토닌과 같은 신경 전달 물질의 분비가 줄어들어 기분이 침체되기 때문이다.
우울증은 겨울이라는 특정한 계절에 집중적으로 발생해 계절성 정서 장애(SAD)라고 부른다. 그런데 겨울에도 활발하고 쾌활했던 사람이 오히려 여름이 되면 의기소침하고 우울해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햇볕이 강렬한 여름철에 우울감이 나타나는 원인은 무엇일까.
미국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 우울증 연구 프로그램 책임자인 이안 A. 쿡 박사는 “여름을 즐겁게 보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여름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며 “어떤 사람들에게는 여름철 우울증의 생물학적인 원인이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여름의 특정 스트레스가 쌓여서 우울감을 갖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름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이 특히 힘든 것은 다른 사람은 다 즐거워 보이는데 자기는 그렇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남들은 물에서 첨벙거리고 캠핑 의자에서 땀을 흘리며 너무 행복해 보이는데 왜 나는 너무 힘들기만 할까….
여름 우울증에 대한 이해
그렇다면 왜 어떤 사람들은 여름에 더 우울해질까. 그 이유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계절성 정서 장애”=인구의 약 4~6%에 영향을 미치는 계절성 정서 장애라는 것이 있다. 이 장애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일반적으로 낮이 짧아지고 추워짐에 따라 우울증을 유발한다.
하지만 계절성 정서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의 약 10%는 반대로 여름이 시작되면 우울증을 앓는다. 연구에 따르면 인도와 같은 적도 부근 국가에서는 계절성 정서 장애가 겨울철보다 여름철에 더 흔하다.
계절의 변화가 우울증을 유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확신하지 못하지만, 낮이 길어지고 더위와 습도가 높아지는 것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여름철 우울증의 구체적인 증상으로는 식욕 부진, 수면 장애, 체중 감소, 불안 등이 있다.
“일정에 차질이 생겼을 때”=이전에 우울증을 앓은 적이 있다면 확실한 일상을 사는 것이 종종 증상을 피하는 비결이 된다. 그러나 여름에는 일상이 사라지고 그 혼란은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경우 방학으로 인해 하루 종일 자녀와 함께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자녀가 타지에서 공부하던 대학생이라면 몇 개월 동안의 공백 후 물건이 한가득 든 가방을 갖고 집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또한 휴가는 업무, 수면, 식습관에 지장을 줄 수 있으며, 이 모든 것이 여름철 우울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남들은 날씬한데 나는…”=전문가들은 “기온이 올라가고 옷이 얇아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 끔찍한 자의식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반바지나 수영복을 입는 것이 부끄럽다고 느끼면 덥다는 것을 말할 것도 없고 삶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여름철 모임이 해변과 수영장을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부끄러움 때문에 사교 모임을 피하기도 한다.
“돈이 너무 많이 드네”=여름에는 돈이 많이 든다. 휴가철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하는 부모라면 직장에 있는 동안 자녀를 계속 활동할 수 있도록 여름 캠프나 베이비시터에게 많은 돈을 쏟아야 할 수도 있다. 이런 비용은 여름철 우울증을 악화시킬 수 있다.
“더위를 못 참겠네”=많은 사람들은 더위를 즐긴다. 그들은 하루 종일 해변에서 노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여름 더위가 정말 억압적일 수 있다.
주말마다 에어컨이 설치된 침실에서 눈이 아플 때까지 TV만 시청할 수 있다. 또한 평소 저녁 식사 전 하던 산책을 못할 수도 있다. 요리하기에 너무 숨이 막히기 때문에 건강에 좋지 않은 배달음식에 의존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여름철 우울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여름철 우울증 대처 요령
그렇다면 기분이 나아지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이번 여름을 다르게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여름철 우울증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들을 알아봤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라”=간단하다. 우울증에 걸렸다고 생각되면 연중 어느 때라도 도움을 받아라.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또는 사회 복지사와 같은 치료 전문가와 상담을 하라. 또한 우울증 약이 적절한지 평가할 수 있는 일반 의사나 정신과 의사를 만나라.
우울증의 징후를 결코 가볍게 여기서는 안 된다.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가정하고 기다려서는 안 된다. 전문가들은 “이는 여름 우울증으로 시작된 것이 더 오래 지속되는 만성 우울증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미리 대비하라”=여름 우울증은 언제 우울증이 올지 짐작할 수 있다. 여름에만 발생하는 여러 가지 상황이 있기 때문이다. 7월부터 본격적인 여름에 접어들기 전에 대비를 할 수 있다.
방학을 맞은 자녀들을 위한 여름 프로그램이나 캠프를 알아본다든지 언제 휴가를 가면 좋을지 미리 짜놓는 것이다. 계획을 잘 세우면 여름을 훨씬 더 즐겁게 잘 보낼 수 있다.
“잠을 충분히 자라”=휴가, 여름 바비큐, 짧은 밤 등 이 모든 것이 평소보다 늦게까지 깨어 있도록 부추길 수 있다. 하지만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는 것은 우울증을 유발하는 흔한 원인이다. 그러므로 제시간에 잠자리에 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운동을 계속하라”=많은 연구에서 규칙적인 신체 활동이 우울증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따라서 더위 속에서도 활동적으로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여름철 운동은 너무 덥지 않은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에 해야 한다. 시원한 지하실에 있는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헬스장 연간 회원권이 너무 비싸다면 여름을 보내기 위해 몇 달 동안만 가입하면 된다.
“과도한 다이어트에 집착하지 마라”=작년 수영복을 입기 위해 다이어트로 여름을 시작하지 마라. 대신 현명하게 운동하고 적당히 먹어야 한다.
너무 과도하게 제한적인 식이 요법을 시도하면 꾸준히 유지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실패했을 경우 더 의기소침하게 만들고 여름철 우울증을 악화시킬 뿐이다.
“여름마다 우울해지는 이유를 생각해 보라”=해마다 여름철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다면 이유가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여름을 과거의 어려웠던 시기와 연관 짓는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나 관계의 이별을 겪었는지 등등….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여름을 슬픔과 연관 짓기 시작했을 수 있다. 여름과 불행한 관계가 있다면 그것을 파악하고 정리하는 것이 악순환을 끊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휴가를 신중하게 계획하라”=여름에는 연례행사처럼 휴가를 꼭 가야하는 것일까. 휴가 계획을 짜기 전에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의무감에서 하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휴가가 나를 행복하게 해 줄까. 아니면 비용이 많이 들어가 스트레스를 받게 될까. 대안을 고려해 보는 건 어떨까. 예를 들어, 한 번에 일주일 전체를 쉬는 것보다는 여름 내내 긴 주말을 여러 번 쉬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휴가를 내지만 집에 머무는 것, 즉 ‘스테이케이션’이 더 편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휴가처럼 느껴지지 않는 휴가에 얽매이지 마라”고 말한다.
“자책하지 마라”=여름철 우울증에 대해 힘든 한 가지는 자신이 너무 부적절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너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 않다. 그러면 계속해서 자신에게 “내게 무슨 문제가 있지?”라고 묻는다.
전문가들은 “그런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자신이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 걱정하지 마라”고 말한다. 휴가철을 맞는다고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라는 것이다. 대신에 여름철 우울증을 유발하는 요인과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집중하라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