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영 박사의 ‘눈물 한 방울’

[유영현의 의학 논문 속 사람 이야기]

논문 33: Kim HY, Kwon WY, Park JB, Lee MH, Oh YJ, Suh S, Baek YH, Jeong JS, Yoo YH. Hepatic STAMP2 mediates recombinant FGF21-induced improvement of hepatic iron overload in nonalcoholic fatty liver disease. FASEB J, 2020; 34:12354-12366.

■사람: 김혜영(여섯 번째 연구교수)
■학문적 의의: FGF21의 간 내 철과부화 감소 통한 지방간 완화

이 연구 초기에 얻어진 자료들은 ‘네이처’(Nature)급 잡지에 한 번만이라도 논문을 내고 싶은 나에게 강한 희망을 주었다. 주연구자 김혜영 박사도 초기 발견에 만족하지 않고 더 큰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고 싶어했다.

그런 욕심이 이 연구의 운명을 뒤틀리게 한다. 김 박사의 가정사도 이 연구의 운명에 영향을 미쳤다. 한참 자료를 내던 중 김 박사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첫 몇 년 동안의 헌신적인 간병은 보통의 가족이면 들일 만한 노력이었다. 그러나 해를 더해가며 지칠 만한데도 가족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였다. 그 노력이 무모해 보였지만, 나는 김 박사의 간병을 위해 최대한 편의를 봐주었다. 자료 산출이 늦어졌다.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연구 진행이 주춤하는 사이 우리가 초기에 얻어 낸 자료들은 다른 연구자들에 의하여 이내 추월당했다. 초기 연구의 가치는 독창성을 잃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때 연구를 마감하고 논문을 써야 했지만, 목표하였던 최정상 잡지를 포기하기는 어려웠다.

나는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보태어 논문의 질을 높여 보기로 하였다. 무모한 발버둥이었다. 적진성산(積塵成山)! 먼지를 모아 산을 이룬다. 옳은 철학이다. 연구에서도 작은 발견들을 모아 큰 이야기를 쓴다. 그러나 잡지 게재 측면에서 이는 맞는 교훈이 아니다.

“먼지를 모아 산을 이룬다” 했지만…

연구에서 6+6+6+6은 6이다. 인용지수 6 정도의 잡지에 게재할 논문 4편을 모아도 6 정도의 논문 한 편이 될 뿐이다. 먼지를 모아 산을 이룰 수 없다. 나는 이를 잘 알았지만, 멈추지 못하였다.

연구를 마감할 때 판단해 보니 꽤 좋은 잡지에 낼 논문 4편에 이르는 자료들은 모였으나 최정상급 잡지에는 어려워 보였다. 새로운 자료가 더해진 반면 초기 자료의 가치는 더 떨어졌다. 그때라도 정신을 차리고 몇 편의 논문으로 쪼개어 발표하였어야 옳았다.

그러나 애초 의도를 포기하지 못하였다. 많은 자료를 쳐내고 한 편의 논문으로 묶어 정상급 잡지들에 논문을 제출하였다. 충분히 익지 않은 여러 이야기가 모인 논문이라는 평가가 거듭 돌아왔다.

욕심 때문에 포기하지 못했던 탓에 결국은…

이때라도 여러 논문으로 쪼개어야 하였지만 멈추지 못하였다. 자료 획득이 지체된 데 미안하였던 김 박사는 군말 없이 잡지를 바꾸어 논문 제출하기를 거듭하였다.

13종 정상급 잡지에서 모두 거부되고 나서야 비로소 멈추었다. 6+6+6+6은 6이 됨을 다시 확인하였다. 결국, 논문을 인용지수 6점 정도 되는 ‘FASEB-J’에 보내었다. 그래도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 논문을 쪼개지 않고 한 편으로 실었다. 논문의 정보가 방대하다.

김혜영 박사의 ‘눈물 한 방울’
‘눈물 한 방울’ 표지 (바오로딸 출판).[사진=유영현 제공]
결과는 애처롭지만, 이 논문에는 ‘눈물 한 방울’이 묻어 위안을 준다.

“리에비는 어느 날 의식을 잃고 응급실로 옮겨진다. 의료진은 희망을 포기하고 방치한다. 리에비는 여러 날 뒤 의식을 회복하지만 아무런 의사 표현을 할 수 없었다.

의식회복을 알아내지 못한 의료진은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리에비에게서 호흡기를 떼어내려는 논의를 시작한다. 리에비는 간절히 희망한다. 자신을 흠뻑 적시는 눈물이 내면에서 밖으로 솟아 나왔으면….

마침내 그녀는 의료진 앞에서 눈물 한 방울을 흘렸다. 그 눈물 한 방울이 의료진에게 경종을 울리고 리에비는 마침내 치료되고 살아났다.”

르베 드 샬랑다르는 자신의 이야기를 구술한 앙젤 리에비와 공저로 책을 출판한다. 그 책 제목이 ‘눈물 한 방울’이다.

김 박사 어머니도 기적을 이루었다. 지금은 기대 이상으로 회복되었다. 어머니의 눈물 한 방울을 경시하지 않았던 가족들의 헌신 덕이다. 

김 박사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던 나도 보상 받았다. 이 논문은 정상급 잡지라는 영예 대신 받은 눈물 한 방울로 빛난다. 이 논문에는 생명을 존중하는 숭고한 사람 이야기가 깔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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