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살 환자가 한국에서 왜 숨졌나?
[김영훈의 참의사 찐병원] 원격의료의 필요성
A는 러시아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는 심장에 이상이 있어 한국에서 시술을 받았고 몸 안에 심장 전기 충격기(Implantable Cardioverter- Defibrillator 체내 이식형 제세동기)를 삽입했다. 급사를 막기 위해 몸속에 충격기를 삽입한 것이다.
이 충격기에는 센서가 부착되어 있어 이상 징후가 발생하면 즉시 모니터에 나타난다. 그러면 병원에 가서 진찰과 조치를 받는다. 만일 그럴 상황이 되지 못하면 전화로 의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러시아에 머무는 동안 A의 센서는 잘 작동되었고, 이상 표시가 나타날 때마다 의사의 조치에 따라 비교적 건강하게 일상을 유지할 수 있었다.
1년 후 A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입국할 때 심장 충격기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센서가 문제였다. 우리나라 법에는 그 센서를 부착할 수 없기에 센서 작동기 기능을 꺼야 했다. 그는 계속 켜고 싶었지만 법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6개월 뒤 A는 사망했다. 74세였다. 나중에 센서 작동기를 살펴보자 사망 4~5개월 전부터 센서에 이상 신호가 계속 기록돼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가 죽음에 이른 직접적 계기는 그의 잘못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센서를 계속 모니터링할 수 있었다면 병원에 오거나 전화로 상담을 받아 조처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원격 진료가 가능했다면 그가 사망했을까?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다른 나라에서는 박동기 센서를 통한 원격 진료 및 모니터링이 가능하다. 센서에 이상 신호가 뜨면 곧바로 주치의에게 연락이 간다. 그러면 주치의는 필요한 조치를 알려 준다.
병원에 올 상황이 되지 못하거나 촌각을 다툴 때 의사의 지시는 큰 도움이 된다. 다른 나라에서는 허용되는 상황이 왜 우리나라에서는 허용되지 않았던 것일까? 원격 진료와 관련한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즉 원격진료,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의술은 세계 10위권 안에 든다. 그러나 몇몇 분야에서는 후진적 행태를 보인다. 필자 생각으로는 특히 원격 리모니터링 분야가 가장 뒤처져 있어 보인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줬다. 평생 학교에 직접 가야만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지만 온라인으로도 수업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온라인으로도 예배를 볼 수 있으며, 관중 없이 올림픽을 진행해 메달을 딸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또 언택트로도 우리 사회가 잘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음도 알게 되었다. 물론 이 상태가 권장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필요하면 어느 부분에서는 온라인과 언택트가 계속돼야 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 일부 분야에서는 계속될 것이다. 원격 진료도 그 분야 중 하나이다.
현재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이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재진 환자 중심으로 시행되고 있는데, 필요성에 대해 진단해서 꼭 필요한 곳으로 영역을 넓혀야 할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원격 진료(遠隔診療)를 ‘텔레비전이나 통신을 이용하여 멀리 떨어져 있는 환자를 진단하고 처방을 내는 일’로 정의한다. 따라서 원격 진료를 하려면 ‘통신’이라는 수단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통신이 갖추어 졌다 해서 진료의 모든 분야가 가능하지는 않다. 또 이것이 시대의 흐름, 세계적 흐름이라 하여 급작스럽게 시행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심장 충격기 사례에서 보았듯 원격 모니터링 분야와 같이 즉각적 규제 완화가 필요한 일도 존재한다.
또 지정된 병원에서 주치의에게 계속 진료를 받는 환자는 스마트폰을 이용한 원격 진료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굳이 병원에 갈 긴급 상황은 아니지만, 의사의 조언을 받고 싶을 때 휴대전화로 상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컨대 서울에 사는 사람이 대구나 광주로 출장을 가 몸에 이상 신호를 느끼는 상황이 많다. 휴대전화를 이용한 상담이 허용되지 않기에 그는 낯선 도시의 병원에 접수하고 진찰을 받아야 한다. 아니면 출장이 끝날 때까지 참아야 한다. 원격 진료는 이럴 때 큰 도움이 된다.
이전에 ‘사망 토론’이라는 개그 코너에서 ‘조선 시대로 돌아가 왕으로 살 것인가? 현재에서 대기업 과장 정도의 삶을 살 것인가?’라는 주제를 놓고 토론 대결을 벌였다. 당시 216:218로 ‘과장의 삶’이 ‘왕의 삶’을 이겼다. 평범한 사람으로서 ‘오늘날의 삶’을 살지, 막강한 권력을 지닌 ‘왕의 삶’을 살지,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분명한 것은, 아무리 과거가 좋았다 해도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비대면 진료의 시대가 본격화된다 해도 일부 사람들은 “직접 병원에 가서 의사의 진찰을 받는 것이 좋아”라고 옹호할 것이다. 그 말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비대면 진료가 우리 눈앞에 성큼 다가왔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