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4주 아기에게 기적처럼 맞은 인공판막
[서동만의 리얼하트 # 18 ] 하나 반 심실과 단심실 (갈림길)
[증례 1]
아이는 걸음마를 할 수 있을 때부터 언제나 할머니의 손을 잡고 진료실에 들어섰다.
호기심이 많아 이것 저것을 만져보고 깡총거리며 컸다.
이제 도수 높은 안경을 끼고 목소리가 제법 굵어지면서 점잖아졌다. 중학생이 된다고.
심장 수술을 이미 다섯 차례나 받았으며, 네 번째(!) 인공판막을 가지고 있다.
아기는 태어난 지 열흘 만에 병원에 왔다.
심장이 마치 피부 바깥으로 튀어나올 듯 심하게 뛰고 있었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중환자실로 입원하여 인공 호흡기를 거치한 후[증례1-사진1-가] 시행한 심장 초음파 검사[증례1-동영상1]에서, 선천성 승모판막 폐쇄부전증(Grade 4/4)과 크게 늘어난 좌심실과 좌심방, 동맥관 개존증, 그리고 심한 폐동맥 고혈압을 가지고 있었다. 좌심실의 크기(이완기말 내경 28 mm, 수축기말 내경 20 mm)가, 체표면적을 감안하면 성인의 정상치를 훨씬 넘는 수준(Z-score +3)이었다. 다행히 좌심실 기능은 유지되고 있었다(EF 57%). 통상적으로는 동맥관이 막히기를 기다리다가 승모판막에 대한 치료를 결정하면 된다. 그러나 보름이 넘게 인공 호흡기에 의지하고 있고, 동맥관의 크기가 줄어들었음에도 승모판막 폐쇄부전은 호전되지 않았다. 이 아기의 승모판막은 통상적이지 않은 것이다. 이제 수술로 문제 해결을 해야만 인공 호흡기를 제거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수술이라면 판막 성형술과 인공판막 대치술 두 가지 중 하나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증례1-동영상1]
1. 판막 성형술을 한다면,
A. 백일도 안된 아기의 승모판막은 잠자리 날개처럼 얇고 약하다. 따라서 잠자리 날개를 자르고 이어 붙이는 일의 성공은 장담할 수 없다. 성형술이 만족스럽지 못하게 되면 인공판막을 넣어 주는 수 밖에 없다.
2. 인공판막을 넣어야 한다면,
A. 이렇게 백일도 안된 심장에 맞는 크기의 인공판막이 있을까? 있다 하더라도 아기는 자라고 인공판막은 자라지 않을 텐데?
B. 조직판막을 쓴다면, 수명이 너무 짧을 텐데?
C. 기계판막을 쓴다면, 수술 후 혈액응고 방지제를 어떻게 적은 용량을 투약하고 관리할 것인가?
3. 인공판막 조차 넣어줄 수 없다면?
A. 좌심실을 포기하고 단심실 상태로 만들어 줄 수 있다. 즉, 동맥관 개존증을 해결하고, 기능을 기대할 수 없는 승모판막은 폐쇄하여 좌심실은 기능을 아예 하지 않게 만들어준다. 주 폐동맥은 상행 대동맥과 문합하여 우심실이 체순환을 감당하도록 하는 것이다(일종의 Norwood 술식, 증례1-사진2).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폐동맥 고혈압이 있는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4. 모든 대책이 통하지 않으면? 심장 이식 밖에 없다.
아기는 생 후 4주에 수술을 받았다.
승모판막의 기형이 심했지만 판막 성형술을 시행했고 다행히 인공 심폐기를 제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술 후 회복은 여의치 못했고, 여전히 승모판막 폐쇄부전이 문제였다. 그런데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심하게 늘어난 승모판륜 (19 mm, Z-score +3) 덕분에 구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기계식 인공판막 삽입이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는 사실이었다.
수술 후 한 달이 지난 시점에 재수술이 시행되었다. 성공적으로 인공판막 대치술을 마칠 수 있었다[증례1-동영상2].
생 후 두 달 밖에 안된 아기 심장에 ‘Size 17’ 인공판막이 들어 맞다니!!! [증례1-사진1-나].아기는 순조롭게 회복되었다. 온전히 기능하는 좌/우 양심실을 가진 심장을 가지고...그러나 예견되었듯이, 아기가 커가면서 인공판막의 크기와 여러 문제들이 발생하여 세 번의 판막 교체가 필요했다.
전쟁 같은 시간이었다. 생후 2년 4개월, 마지막 수술 후 지금은 ‘Size 19’ 의 제법 큰 인공판막을 가지고 초등학교를 졸업할 나이가 되었다.
바라건대 앞으로 한번의 재 수술로 성인 크기(Size 21~23) 판막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증례 2]
아기는 재태 24주차 산전 초음파 검사에서 좌심실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증례2-사진1-가].
이후 필자의 병원으로 전원 되어 산부인과 W 교수의 극진한 진료를 받다가 재태 36주차에 제왕절개로 3660 그램의 체중으로 태어났다. 출생 직후 시행한 심장 초음파 검사에서 심한 승모판막 폐쇄부전, 좌심실 류를 동반한 늘어난 좌심실의 기능 저하[증례2-사진1-나], 대동맥 판막 협착 및 폐쇄부전, 심방중격 결손, 동맥관 개존 등이 진단되었다.
단순 흉부 사진에서 어마 무시한 크기의 심장을 보였다[증례2-사진2-가]. 들어 보기 힘든 조합의 선천성 심장병이다. 요약하면 좌심실이 있으되 좌심실 기능을 기대할 수 없는 단심증이었다.
게다가 대동맥 판막의 역류까지 있으므로 동맥관이 자연 폐쇄되는 순간 심장 기능이 정지될 위험이 있는 상황이었다. 만약에 산전 초음파 검사에서 이상을 발견 못했다면, 산부인과의 적절한 대처가 없었다면, 튼실한 체중을 갖고 태어난 아기를 원인도 모른 채 잃어버렸을 것이다.
출생 3일째에 수술을 시행했다.
과도하게 늘어난, 기능을 못 하는 좌심실 일부를 제거하고, 승모판막을 막고, 동맥관 개존을 차단하고, 주 폐동맥과 상행 대동맥을 합쳐주고, 우심실과 원 위부 폐동맥은 도관으로 연결해 주었다.
우심실이 좌심실 기능을 하도록 만들어 주는, 길고 긴 과정이었다. 세상에 두 번 있기 어려운 진단과 수술 이었으리라. 아기는 순조로운 회복을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대동맥 판막의 폐쇄부전이 악화되어 보름이 경과한 시점에 다시 수술로 대동맥 판막을 막아주어야 했다.
다행히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두 살 반에 폰탄 수술을 받고 이제 중학교 졸업반이다.
@ 양 심실, 하나 반 심실 그리고 단심실.
길고 복잡한 여정이었다.
두 개의 온전한 심실을 갖느냐, 하나의 심실로 살아가느냐, 아니면 그 중간의 선택지를 찾을 수 있느냐 하는 갈림길까지, 선천성 심장병의 큰 흐름을 함께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이제 더 큰 문제인 단심실을 가지고 살아가는 단심증 환우들의 경우들을 살펴보고 공유하는 시간을 갖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