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울제 처방기준 완화에 엇갈리는 기대와 우려
[오늘의 키워드] SSRI 항우울제
2세대 항우울제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의 처방 기준이 12월 1일부터 완화했다.
우리나라에선 2002년 3월 이후 '비정신과 의사들은 SSRI 항우울제를 60일 이상 처방하지 못한다'는 고시가 유지됐다. 이로 인해 외국에 비해 항우울제 사용률이 낮다는 지적이 있었다. 10년간 논의 끝에 20년 만에 규정은 완화됐지만 의학계에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개정한 SSRI 항우울제 처방·급여 기준에 따라 2주 이상 우울 증상이 계속되고 '정신건강의학과의 자문 의뢰가 필요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으면 다른 진료과에서도 상용량으로 1회 처방 시 60일 범위 내에서 환자 상태에 따라 반복 처방할 수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자문 의뢰가 필요한 경우는 △한두 가지 약물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경우 △치료 1년 이내에 재발한 경우 △양극성 장애가 의심되는 경우 △환자 또는 가족이 전과를 요구하는 경우 △자살 생각이 지속되는 경우 △알코올 또는 약물남용, 인격 장애 등 공존 질환이 있는 경우 △중증 우울 증상을 보이는 경우 △자기 관리가 안 되는 경우 등이다.
특히 '지체 없이' 정신건강의학과의 의뢰가 신속하게 필요한 경우를 △자살 계획이 있는 경우 △정신병적 증상이 있는 경우 △증상이 심하고 심한 불안이 동반된 경우 △자기 관리가 심하게 안 되는 경우 △타인을 위험하게 할 수 있는 경우 등으로 명시했다.
이 지침은 SSRI 처방권을 놓고 정신건강의학계와 타 학계의 의견이 맞서는 상황을 반영했다. 정신건강의학과 방문을 기피하는 국내 정서를 감안했을 때 내과, 소아청소년과, 외과, 산부인과, 가정의학과 등 접근성이 좋은 1차 의료기관에서 항우울제를 처방받을 수 있다는 점이 지침 개정에 찬성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실제 우울증 환자들은 만성피로, 소화불량, 가슴 답답, 두통, 요통 등 우울증으로 발생한 2차 증상을 호소하며 정신과 외에 소아과, 내과, 가정의학과에 방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건강의학계는 이번 기준 완화의 의미가 과도하게 해석되면 우울증 환자의 적절하고 전문적인 치료에 대한 접근을 방해해 오히려 자살률이 높아질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지난 7일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1차성 우울증의 경우 정신건강의학과에서 SSRI를 처방받으라는 권고는 여전하다"면서 "복지부 권고가 우울증을 비전문가에게 처방받으라는 의미가 아님에도 잘못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어 안타깝다"는 입장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번 권고가 'SSRI를 모든 전문의학과에서 처방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특정 질환으로 인한 2차성 우울증에 대해 비정신건강의학과의 SSRI 처방이 가능하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비정신과에서 우울증이라고 바로 진단하거나 SSRI를 처방할 수 없고, 정신건강의학과에 의뢰가 필요한 경우를 명시해 우울증 환자를 정신건강의학과로 보내야 할 의무가 생긴 것이라고 해석한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이번 처방 기준 변경과 관련한 여론의 호도를 막고 정확한 해석을 알리기 위해 의사회 차원에서 대응에 나설 예정이다.
SSRI는 항우울 효과가 있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재흡수를 선택적으로 억제해 신경세포말단에서 세로토닌 작용을 강화하는 약물로 우울증, 공황장애 등 불안장애에 쓰이고 있다. 1988년 릴리(현 일라이릴리)가 프로작(플루옥세틴)을 출시하며 처음 등장한 이후 항우울제 시장에서 절반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