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 주걱턱과 프렌치 불독
[박준규의 성형의 원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합스부르크가는 13세기부터 600여 년간 유럽의 패권을 쥐었던 가문입니다. 동로마 멸망 이후 나폴레옹 이전까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자처한 황실이기도 했습니다. 합스부르크가는 결혼을 통해 동맹을 다지며 가문을 번영시켜 전 유럽 왕가에 합스부르크의 피가 섞이지 않은 곳을 찾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성형 이야기에 왠 합스부르크가냐고요? 이 가문의 상징 중 하나가 바로 ‘주걱턱’입니다. 유럽 왕실가에 합스부르크의 혈통이 흔하다 보니, 주걱턱 형질이 누적되어 나타났습니다. 특히 ‘순수한 혈통’과 ‘권력의 독점’을 위해 근친혼이 거듭된 스페인의 합스부르크 왕실은 심한 주걱턱 때문에 몰락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입니다.
주걱턱은 요새도 '합스부르크 턱(Habsburg jaw)'으로 불립니다. 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아래턱이 나온 주걱턱(하악전돌증)과는 조금 다릅니다. 정확히는 아래턱이 앞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위턱이 뒤로 들어간 것입니다.
'합스부르크 턱'이 초상화를 통해 드러난 건 신성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Maximilian I)가 처음입니다.
막시밀리언 1세의 측면 초상화를 보면 아래턱이 돌출된 것이 아니라, 위턱이 뒤로 빠져있는 것을 확인할수 있습니다.
막시밀리언 1세의 증손자인 스페인 왕 펠리페2세의 초상화를 보면 눈 아래가 꺼지고, 광대뼈가 납작해 돌출이 부족하고, 삼백안이 보이는 등 위턱 결핍의 전형적 증상들이 두드러집니다.
펠리페2세의 손자이자, 벨라스케스의 그림으로 유명한 펠리페4세에 이르면 위턱의 결핍뿐 아니라, 아래턱의 돌출도 함께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근친혼으로 누적된 유전질환 때문인지 펠리페 4세의 자식들은 대부분 낳자마자 사망했습니다. 두 명의 부인과 13명의 자식을 낳았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 성장한 자식은 세 명 뿐이었습니다.
그중 막내이자, 유일하게 장성한 아들인 카를로스 2세는 위턱의 결핍과 아래턱의 돌출이 더 심했습니다. 주걱턱이 심해 입을 잘 다물지 못하고, 침을 늘 흘렸다고 합니다. 음식을 잘 먹지도 못해 영양섭취도 힘들었고, 수많은 질환을 앓았으며, 불임이었습니다.
결국 그를 마지막으로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현재는 성형수술의 발달로 위턱전진술이나, 양악수술로 이런 합스부르크 턱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성장기가 끝나기까지 기다리지 않고, 뼈를 늘리는 신연술로 성장기에 수술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위턱을 수술하면, 얼굴 모습 뿐 아니라 호흡이 개선되는 등 기능적인 효과도 있습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근친혼으로 인한 주걱턱과 비슷한 일이 현실에 또 있습니다. 바로 ‘순수 혈통의 견종’을 얻기 위한 근친교배입니다. 무는 힘이 좋으라고, 혹은 귀엽다는 이유로 근친교배를 거듭하여 짧은 턱과 코를 갖게 된 개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순종'이라는 개는 유전병을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불독의 경우 대부분 자연분만이 불가능하고, 숨을 쉬기 힘들며, 체온조절도 어렵습니다. 피부가 접혀 피부병도 흔하고, 고관절 질환까지 겪으며 수명도 짧습니다.
영국의 케넬 클럽(Kennel Club)은 견종을 관리하며 견종 간 교배를 금지해 왔습니다. 케넬클럽은 2021년 프렌치 불독에서 과도하게 납작한 코와 짧은 얼굴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이상적인 품종에서 제외하도록 표준안을 수정했습니다. 비록 뒤늦었지만 반길 만한 조치입니다.
합스부르크 턱이나, 짧은 턱의 개들, 모두 결국 근친교배의 결과이자, 인간 욕심의 산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