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비 본인부담금상환제가 한 노숙인을 살렸다

부산 온요양병원 입원한 무연고자의 기막힌 사연

“선생님, 이제 경찰서 안 가도 돼요. 나라에서 나온 돈(진료비 본인부담금상환제)으로 피해 금액 갚고, 검찰에서 벌금형으로 처리해서 돈 내고 잘 마무리했어요. 이젠 자유의 몸이 됐으니 빨리 회복해서 다시 한번 멋지게 살아가세요!”

[사진=부산 온요양병원]
지난 14일, 병상에 누워서 눈만 끔벅끔벅하는 환자 H(남, 66) 씨에게 부산 온요양병원 권진영 행정실장이 말을 조금씩 끊어 천천히 설명했다. H 씨는 겨우 입을 딸막거리며 “응”, “예” 단답형으로만 대꾸했다. 하지만 입가엔 옅은 미소가 번져 나왔다.

거리 노숙인으로 지내다 배가 고파 편의점에서 식품을 훔친 죄로 경찰로부터 수배 중 거리에서 뇌출혈로 쓰러졌다. 무연고자인 그는 부산의료원에 후송돼 경막하 출혈로 진단받고 인근 온종합병원 뇌혈관센터에서 응급수술로 목숨을 건졌다.

온종합병원에서 20여 일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뇌출혈 후유장해가 남은 H 씨는 마땅히 돌아갈 집이 없어, 그해 12월 중순 온요양병원으로 옮겼다. 온요양병원 측은 H씨가 무연고자여서 가족 간병이 불가능한 데다 경제적인 능력이 되지 않아 월 40만 원에 달하는 간병비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병원서 뇌수술 입원 후 치매 겹쳐 강제수사 중단

그러던 중 올해 6월 중순, H 씨 사건을 담당하던 검찰로부터 “H씨가 현재 별도의 수용시설에서 생활할 수 있는지” 물어왔다. “뇌출혈 후유장해로 거동을 전혀 할 수 없고, 혈관성 치매 등으로 의사 표현조차 힘겨운 중증상황”이라는 병원 측의 설명으로, 그는 수감 위기에서 벗어났다.

H 씨의 입원 생활이 장기화하면서 보호자가 필요한 상황이 많이 생겼다. 입원 초기부터 H 씨를 상담해온 이 병원 사회복지사 이채영 씨가 그의 후견인이 되길 자청했다. 후견인으로 지정되는 과정에 H 씨에 대한 가슴 아픈 사연이 알려졌다.

가족 없이 노숙 생활하다 편의점 절도로 수배 중 뇌출혈

H 씨는 열 살 무렵, 시골 고향의 개울에서 다이너마이트로 물고기를 잡다가 잘못 터지는 바람에 왼쪽 눈을 실명하고 손가락 3개가 절단됐다. 이후 혈혈단신(孑孑單身)으로, 빵이나 플라스틱제조공장 등을 전전하며 부산역 등에서 노숙도 했다.

온요양병원 입원 이후 H 씨를 담당해오던 부산진구 당감2동 주민자치센터에 후견인으로 등록한 이채영 복지사는 최근 12월 초 담당 주민자치센터로부터 후견인으로서 H 씨의 ‘진료비 본인부담금환급금’을 신청하라고 안내받았다.

요양병원서 무료 진료하며 담당 복지사도 후견 자청

본인부담상한액은 건강보험 가입자가 일정 기간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부담해야 할 최소한의 금액으로, 이 상환액이 초과하면 이후의 의료비는 전액 건강보험공단에서 부담하게 된다. 본인부담상한액은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제도로, 특히 만성질환자나 고액 치료를 받는 환자에게 큰 도움이 되는 의료복지 제도이다.

H 씨는 온요양병원 측과 이채영 복지사의 도움으로 지난 4일 본인부담금 상환금 신청서를 제출했고, 12월 11일 건보공단으로부터 4년 치 환급금을 받았다. 이채영 복지사는 미납 간병비를 공제하고, 수배사건과 관련된 벌금까지 지급함으로써 ‘21세기 노숙인 장발장’ H 씨를 완전히 자유의 몸이 될 수 있게 도와줬다.

본인부담금상환제 환급금으로 벌금 정산 ‘자유인’

온요양병원 이채영 복지사는 16일 “H 씨처럼 무연고자들이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사례는 흔하다”며 “이번 H 씨 케이스도 현행 복지제도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도와주라는 병원 지침에 따랐을 뿐”이라고 했다.

한편, H 씨는 입원 당시 오래 노숙 생활을 한 탓에 연고자는 물론 주민등록증조차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병원은 담당 사회복지사를 통해 주민증도 새로 발급받아 의료급여 혜택을 볼 수 있게 했다.

    윤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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