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한반도에도 ‘티가든’ 있었다

[차 권하는 의사 유영현의 1+1 이야기] 16. 티가든(tea garden)과 음악

영어 가든(garden)은 집의 정원, 식물을 재배하는 농장, 더 나아가 식물원을 의미한다. 동명사 가드닝(gardening)은 정원 가꾸기 혹은 식물 재배를 의미한다. 가든과 가드닝은 최근 의학에서 주목을 받는다.

'치유 정원'은 환자들이 자연과 교감하면서 심리적 안정과 신체적 회복을 얻는다는 개념에서 세워진 정원을 뜻한다. 회복 중인 환자들에게 심리적 지원을 제공하고 말기 환자들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한다. 시설로서 치료 프로그램의 하나가 되었다.

'원예요법'은 자연과의 교감을 통하여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치료하고 뇌 손상 환자의 재활을 돕고 치매 환자의 인지 기능을 유지하는 치료법의 하나가 되었다. 영국의 정신과 의사 도널드 위니컷은 "항상 효과가 있는 비(非)약물적 심리치료 수단은 음악과 정원 가꾸기"라고 말했다. 그는 일찍이 정원 가꾸기가 심리적,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하고 스트레스를 완화하며 인간의 내적 평온을 증진한다는 점을 간파하였다.

정원은 어떻게 사람을 '치유'하고 '치료'해왔나

'재활치료 원예활동'은 관절염, 근골격계 질환, 뇌졸중 환자의 재활치료의 목적으로 도입되어 운동기능 회복에도 응용된다. '정원 비유'도 등장하였다. 심리치료에서 환자들이 감정과 정신 건강을 돌보는 방식을 정원의 지속적인 관리에 비유하여 표현하는데, 은유적으로 사용된다.

정원과 정원 가꾸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인류가 치료에 활용하였다. 고대 이집트에서 정원은 신성한 공간으로 여겨졌으며,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고 환자들의 치료를 돕는 역할을 했다. 정원은 의료용 허브와 식물들이 자라는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이러한 식물들은 다양한 질병을 치료하는 데 사용되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히포크라테스는 자연 속에서의 생활, 특히 정원에서의 시간을 통해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도 정원에서 자라는 약용 식물들이 치료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중세 유럽에서 수도원은 의료와 약초학의 중심지였다. 수도사들은 수도원 내 정원을 가꾸며 약용 식물을 재배했으며, 이를 통해 환자들을 치료했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정원 가꾸기는 정신적 및 신체적 건강을 위한 치료법으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정신병원에서 환자들의 재활과 심리적 안정을 위해 정원을 활용했다. 영국 정신과 의사들은 정원 가꾸기를 통해 환자에게 일상의 리듬을 회복시켜주었고,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스트레스와 불안을 줄여주었다.

'티가든', 관목 차나무들과 사람들 어울리는 특별한 공간으로

차를 재배하는 농장이 ‘티가든’(tea garden)이다. 주로 관목을 재배하는 차 농장을 일컫는다.

관목이란 교목과 대비되는 뜻이다. 자연상태에서 자라는 차나무는 키가 크고 주된 줄기가 분명하며 땅에서 높이 떨어져서 가지가 시작된다. 이런 차나무들을 교목이라 한다.

교목은 높이 10m 정도로 자라기도 하여 키가 크므로 대(大)수차 혹은 나이가 들었다고 노(老)수차라고 부른다. 수령이 300여 년 넘으면 고(古)수차라 부르기도 한다. 사람의 관리 없이 야생에서 자라는 차라는 뜻으로 야생차 혹은 야생에 내버려 두었다고 ‘야방차’로 부르기도 한다.

반면, 주된 줄기가 분명하지 않고 가지가 땅에 붙어서 벌어지는 나무를 관목이라 부른다. 세계에서 재배하는 차 대부분은 관목이다. 계단형 밭과 같은 차밭 농장에서 재배하여 ‘농장차’ 혹은 ‘대지차’라 부른다.

티가든은 차 농장이 없던 유럽에서 17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에 다른 의미로 쓰였다. 유럽의 티가든은 차나무 농장이 아니라 차를 마시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정원을 의미하였다. 왕실과 상류층에서 차를 마시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차를 위한 사교 활동을 위해 특별히 설계된 공간이 티가든이었다.

티가든은 주로 큰 정원이나 공원의 형태를 띠었다. 티가든에서는 차를 마시는 것 외에도 산책, 음악 공연, 사회적 교류 등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졌다. 18세기에는 런던을 중심으로 여러 유명한 티가든들이 생겨났으며, 특히 음악 연주와 함께 하는 차 문화가 번성하게 되었다.

유명 티가든들은 지금도 회자된다. '복스홀가든'(Vauxhall Gardens)은 18세기와 19세기 초 영국 런던의 가장 유명한 티가든 중 하나였다. 이곳은 음악 공연, 연극, 불꽃놀이, 춤 등 다양한 오락 활동을 제공하는 엔터테인먼트 공간이었다.

'래니엘리가든'(Ranelagh Gardens)도 복스홀 가든과 마찬가지로 18세기 런던에서 인기 있던 또 다른 티가든이었다. 래니엘리 가든은 고급스럽고 정교한 정원 디자인으로 유명하였다.

티가든에서의 음악회가 특별했던 이유는

음악은 티가든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작곡가들에게는 자신들의 작품을 대중에게 소개할 수 있는 무대가 되었고, 관객들에게는 일상적인 사교 활동 속에서 예술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했다.

모차르트, 헨델, 하이든과 같은 작곡가들은 티가든에서의 연주를 통해 대중과 소통했고, 이는 그들의 음악이 널리 퍼지고 사랑받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몇 음악들이 티가든에서 초연되었다고 알려졌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모차르트(1756-1791)가 런던에 머물던 시기(1764-1765)에 피아노 소나타 여섯 곡(K 10~15)을 작곡하였고 복스홀가든과 같은 티가든에서 연주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이 곡 중 일부의 초연 무대가 티가든이라는 글이 떠돌지만 이를 입증하는 사료는 없다. 이들의 초연 장소는 궁정이나 히클링스 음악회라고 판단된다. 모차르트의 실내악과 소나타는 티가든 분위기에 어울려 자주 연주되기는 하였다.

왼쪽은 복스홀 티가든 그림, 오른쪽은 헨델 '수상음악', '왕궁의 불꽃놀이' 음반. [사진=유영현 제공]
헨델의 야외음악 ‘수상음악’이 복스홀가든에서 초연되었다는 글도 있으나 이도 틀렸다. 조지 1세를 위해 작곡된 '수상음악'은 1717년에 처음 공개되었는데 공식 초연 장소는 템스강으로 헨델이 직접 배에 탑승하여 수상 행렬과 함께 연주한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헨델 ‘왕국의 불꽃놀이’는 복스홀가든에서의 리허설로 오래 회자된다. 1749년 런던 그린파크에서 초연되기 6일 전 리허설에 1만 2천명 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다리가 무너지고 마차가 길을 막아 교통 정체를 일으켰다. 헨델의 '수상 음악'과 ‘왕국의 불꽃놀이’는 야외음악들로 티가든에서 자주 연주되었다.

토마스 아르네의 “Rule, Britannia!”가 1740년 복스홀가든에서 초연되었다는 글도 있다. 이도 사실이 아니다. 이 노래는 웨일즈 공 프레드릭의 시골별장인 클리브든 하우스에서 초연되었다.

바이킹을 물리치는 이야기로 영국의 해상력을 찬양하는 이 노래의 가사는 제임스 톰슨이 썼다. 현역 왕보다 일찍 죽어 왕위에 오르지 못했지만 프레드릭 왕자는 왕자 시절 이 음악의 탄생을 후원하였다. 이후 이 음악은 해양대국 영국의 국가적 자부심을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고 영국 국가에 버금간다. 지금도 연주되면 청중들은 영국기를 흔들며 환호한다.

그때 조선은 숙종, 영조 시기...여기에서도 차 마시며 음악 들었다

영국인들이 티가든에서 위 음악들을 들으며 차를 마실 때, 조선은 숙종 말기와 경종의 짧은 재위 기간을 거쳐 영조의 초중반 재위 기간을 지나고 있었다.

차는 조선에서 불교 문화로 취급받아 그다지 흥행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한정된 자리에서는 조선인도 차를 마셨고 음악도 들었다.

당시 조선 땅에 살던 이들은 어떤 음악을 듣고 어디서 차를 마셨을까? 그 무렵 조선에 살았던, 필자의 조상 ‘강릉 유(劉)씨’ 20대 세손부터 22대 세손들이라 가정하면 더욱 실감이 난다.

큰 벼슬을 하던 조상들은 궁중에서 정악, 아악 등 궁중음악을 들으며 차를 마셨을 것이다. 조선통신사 일행으로 일본에 갔던 조상들은 대마도 영주의 저택, 에도성에서 조선과 일본의 궁중과 전통 민속 음악을 번갈아 들으며 차를 마셨을 것이다.

큰 벼슬이 없던 사대부 조상들은 자신의 집 마당에서 정적이며 아주 느린 선율에 맞추어 시를 읊던 형식의 조선 가곡을 부르거나 들으며 차를 마셨을 것이다. 당시 판소리도 연주되었으나 활기차고 감정 표현이 풍부한 판소리가 정적인 차와 어울려 보이지는 않는다.

그 당시, 조선에서는 궁정이나 사대부 집 앞마당이 티가든 역할을 한 셈이다.

유영현 엘앤더슨병원 진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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