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근종 수술...자궁 다 들어내지 않아도 돼"

근종만 떼내는 로봇 브이노츠(vNOTES) 수술, 학회에서도 주목

서울아산병원에서 지난 3일 열린 대한산부인과로봇수술학회 ‘제10회 추계 심포지엄’. 이날 세미나장에선 새로운 스타가 한 명 탄생했다. 무명의 한 지방 의사가 특별한 증례를 들고나온 것. 자궁근종 환자는 전국적으로 빠르게 늘고 있지만, 의사들 사이에선 여러 이유로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접근법이었다.

자궁은 수정란과 태아를 보호하기 위해 두꺼운 근육으로 쌓여있다. 태아가 성장하면서 자궁 근육도 꿈틀꿈틀 활발히 움직인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을 하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면 역할이 없어진 자궁 근육은 점점 딱딱하게 굳고, 그러는 사이 종양이 생긴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특히 여성의 초경(初經)은 이전보다 훨씬 빨라졌고, 완경(完經)이 지나도 30년 이상은 더 산다. 여성 기대수명은 86.8세(2022년)다. 호르몬의 영향을 크게 받는 자궁근종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 35세 이상 여성 약 40~50%에서 진단될 만큼 흔해졌다.

자궁에 근종 있는 사람들 점점 더 많아져...10cm 넘는 거대 근종까지

크기가 7~8cm, 심지어 10cm 훨씬 넘거나 무게 꽤 나가는 거대 근종이 발견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개 양성(良性)종양이긴 하지만 근종이 생기면 골치 아픈 증상들이 여럿이다. 생리량이 너무 많거나 시도 때도 없이 출혈이 생긴다. 극심한 생리통도 온다. 그래서 빈혈에다 골반통, 요통으로까지 이어진다.

자궁근종은 또 난임, 유산, 조산, 제왕절개 가능성도 높인다. 가임기 젊은 여성들에겐 심각한 문제가 된다. 젊을수록 환자의 절반 이상이 평소 아무런 증상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까지 감안하면 정기 검진과 조기 진단이 무척 중요한 대목이기도 하다.

자궁근종은 종양 수와 종양이 생긴 위치, 크기 등에 따라 수술법도 달라진다. 개복수술, 복강경수술, 내시경수술, 로봇수술 등. 조금만 절개하는 최소침습을 선호하는 최근 경향 탓에 임상 현장에선 ‘브이노츠’(vNOTES, Vaginal Natural Orifice Transluminal Endoscopic Surgery)수술이 늘고 있다. 여성의 질을 거쳐 종양 위치를 찾아가는 내시경 수술의 하나다.

춘해병원 박성환 병원장(산부인과)이 학회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것도 브이노츠, 그중에서도 로봇을 이용한 수술법. 하지만 이게 더 특별했던 것은 자궁 전체를 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궁에 생긴 근종만 세밀하게 떼는 수술들 성공 사례였기 때문.

다른 의사들이 그동안 자궁을 적출하는 쪽에 초점을 맞춰온 것과는 달랐다. 근종만 떼는 것은 수술 난도(難度)가 확 높아진다. 세션에 참석한 의사들이 “그게 가능하냐?”며 주목했고, 질문도 쏟아냈다.

박 병원장은 “여성의 질을 통해 자궁 외벽에 도달하면 일단 수술 시야가 너무 좁다”면서 “종양 부위를 째고, 혹(종양)을 떼고, 수술 부위를 꿰매는 수술의 모든 과정도 정말 세밀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그냥 자궁을 적출하겠다면 한 시간 이내에 끝날 수술이 근종만 선택적으로 떼자면 두세 시간 넘게 걸린다”고도 했다. 상대적으로 고난도 수술이 되는 탓에 의사들로선 선뜻 시도하기 어려운 수술이 되어버리는 셈이다.

자궁근종 새 수술법, 국내 최초로 춘해병원서 도입돼

환자는 수술 다음 날 바로 퇴원할 정도로 회복이 빠르지만, 더 미세하게 수술해야 하는 의사로선 부담이 크다. 대신 출산 경험이 없거나, 질 내부 공간이 아주 작은 환자에게도 적용 가능해진다.

지난해 5월부터 본격적으로 시도해왔다. 대학병원을 제외하고 (종합)병원급에선 전국에서 처음. 1년여가 지난 올해 8월, 다빈치 SP(Single Port, 단일공) 로봇을 이용한 여성질환 수술만 이미 500례를 넘어섰다. 환자들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퍼져나간 결과다.

박성환 병원장이 다빈치 SP로봇으로 자궁근종 등 여성질환 미세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사진=부산 춘해병원]
한번은 50대 후반 여성 수술을 할 때 남편이 보호자로 따라왔다. 얘기를 듣더니 “자궁근종을 이번에 떼도 앞으로 또 생길 수 있으니, 이번에 아예 자궁을 들어내달라. 이제 아기 가질 것도 아니고…”라 했다. 그러자 박 병원장은 “선생님은 고환에 종양이 있다면, 선생님도 똑같이 떼실 겁니까”라고 물었다.

"여성성 지키겠다"는 아내 vs. "떼도 괜찮지 않겠느냐"는 남편

남편은 급히 손사래를 치더니 그제서야 계면쩍은 표정으로 “근종만 떼는 게 맞겠다”고 수긍했다. 자궁은 유방과 함께 여성성의 상징. 자칫하면 여성 환자에겐 자신의 근본을 없애는 것과 같은 깊은 상실감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궁 적출 수술을 많이 한다는 것은 병원으로선 부끄러운 얘기일 수 있다. 어떤 측면에서 환자의 속마음과 병원의 편의가 맞부딪치는, 미묘한 접점일 수 있어서다.

물론 모든 자궁근종에 이 방식을 다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론 어쩔 수 없이 자궁 전체를 적출해야 할 때도 있고, 아예 브이노츠 자체를 적용할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럴 땐 개복으로 가든, 복강경으로 가든 가장 좋은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 박 병원장은 “우리 몸은 사람마다 상황이 모두 조금씩 다 다르다”면서 “병증에 대한 정확한 검사와 의사의 오랜 경험이 만날 때 그 환자에게 맞는, 가장 적합한 치료법이 나오게 마련”이라고 했다.

    윤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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