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만 많았지, 허송세월만?...그래서 새출발하겠다는데
바이오 후진(後進) 도시, 부산의 자기 점검
“부산은 지난 20, 30년간 말만 많았지 실제로는 허송세월 보냈어요. 30년 전으로만 돌아가더라도 부산에 괜찮은 제약기업들이 20개 정도는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들이 지금은 어디에 가 있느냐? 다들 서울로 올라갔죠. 그러는 사이, 부산은 뭘 했나요?”(신재국 부산백병원 교수·임상약리학)
사실 부산은 우리나라 제약산업 발상지 중 한 곳. 서울 못지않은 기반이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지금, 부산의 바이오산업은 허접하다. 제약사도 거의 없고, 임상연구 역량도 서울과 차이가 크다.
그렇게 침잠하면서 서울~경기~인천 수도권이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을 주도하는 것을 멀찌감치 쳐다만 보아왔다. 심지어 충북 오송, 강원 원주, 대구 등 다른 후발 도시들에도 밀리는 형국이다. 지난 2021년부터 초(超)고령사회에 진입, “이제 남은 것은 ‘노인’과 ‘바다’뿐”이라는 부산은 젊은이들에게 새롭고, 괜찮은 일자리를 주지 못하는 노쇠한 도시로 전락해왔다.
하지만 변화 조짐이 없지는 않다. 대학병원과 종합병원들을 중심으로 첨단재생의료나 방사성의약품 등에서 임상시험과 신약 개발 가능성을 탐지하는 노력이 잇따른다. 부산에 신약개발센터를 세운 글로벌제약사도 나왔다. 내재적 역량의 꿈틀거림은 미미하게나마 계속되고 있었던 셈이다.
이에 부산이 바이오헬스산업 육성에 다시 불을 붙인다. 밀집도 높은 1차~2차~3차 병원들 네트워크에다 서쪽으론 낙동강 하구 EDC(에코델타시티)부터 동쪽으론 기장 ‘동남권 방사선의·과학 산업단지’까지 이들을 유기적으로 엮어 실질적인 산업 활성화 방안을 찾아보자는 것.
부산, ‘BIG 바이오헬스포럼’ 만들어 새 출발
이를 위해 21일 오후 서면 롯데호텔부산에서 ‘BIG(Busan is Good) 바이오헬스포럼’을 발족하고, 첫번째 포럼을 열었다. 부산시와 부산TP가 함께 팔을 걷어붙였고, 주요 병원과 관련 기업, 전문가들을 두루 망라했다. 첫 포럼 주제도 ‘바이오경제 시대를 여는 글로벌 바이오헬스 허브도시 부산'으로 잡았다.
서울대 의대 지역의료혁신센터와 협업을 시작하면서 생긴 변화이기도 하다. 강대희 센터장(예방의학과)은 이날 기조연설('지역의료 혁신 및 부산 바이오헬스의 미래')에서 “부산 스마트헬스케어 클러스터가 들어설 낙동강 EDC부터 새로 만드는 해운대 센텀2지구, 기장 ’동남권 방사선의·과학 산업단지‘까지 특화 거점들을 잘 연계하면 부산도 가능성과 잠재력이 작지 않다”고 했다. 그는 또 “이를 더 강력하게 키울 바이오헬스산업 콘트롤타워를 구축해 관련 분야들 협력기반을 조성하는 일이 급선무”라면서 “창업투자 생태계를 조성하고, 전문인재들의 정주 여건을 조성해 연구 인프라를 키워나가는 것도 중요하다”고도 했다. 그는 부산시 바이오헬스 정책고문도 맡고 있다.
이날 포럼에선 특히 ▲스마트 헬스케어 클러스터 특화방안(정형구 부산과학기술고등교육진흥원(BISTEP) 정책연구본부장) ▲'부산 헬스케어산업 현황 및 산업 성장 활성화 방안'(신수호 부산테크노파크(TP) 라이프케어기술단장) ▲'지역기업 유치전략 및 지원방안’(배수현 부산연구원 미래전략기획실장) 등 여러 성장 전략이 제시됐다. 그동안 잠자고 있던 부산의 바이오헬스산업 잠재력을 다시 일깨우려는 방안들.
이어 패널토론(좌장: 강대희 정책고문)에선 ▲이홍제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연구센터장 ▲신재국 ㈜에스피메드 대표(인제대 교수) ▲강태흥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IDC 신약개발본부장이 나와 부산 바이오헬스산업이 지금껏 뒤처지고 있던 원인들을 짚었다. 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과 앞으로 집중 육성해 나가야 할 대안들도 제안했다.
선택과 집중....자본과 시간 욱여넣어야 한다는데
물론, 부산의 바이오산업 청사진은 아직 흐릿하다. 온갖 것들을 다 망라해놓고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추진하는 것은 없는, ‘탁상공론’에 그칠 가능성도 농후하다. 거대 자본과 오랜 시간을 고집스레 욱여넣어야만 하는 이 산업 특성 상, 짧은 호흡 탓에 ‘선택과 집중’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부산의 전철 때문이다.
이에 부산은 이준승 부산시 행정부시장과 강대희 고문을 공동 위원장으로 한 ‘바이오헬스포럼 운영협의체’도 새로 구성했다. 운영위원으론 ▲정성운 부산대병원장 ▲안희배 동아대병원장 ▲최종순 고신대복음병원장 ▲이연재 인제대 부산백병원장 ▲이창훈 동남권원자력의학원장 ▲김형균 부산TP 원장 ▲신현석 부산연구원장 ▲김영부 BISTEP 원장 ▲송복철 부산경제진흥원장 ▲박동석 부산시 첨단산업국장 등이 두루 참여한다. 여기서 부산의 바이오헬스산업 중장기 육성방안을 논의하고 지속적인 기관별 협력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것.
부산시 이준승 행정부시장도 이날 “바이오헬스산업 육성이 고령화와 인구 유출 등 부산이 직면한 현실에 대응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해결책이 될 것”이라 기대했다. “기업·대학·연구·병원(産學硏病)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부산이 '글로벌 바이오헬스 허브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맞춤형 정책을 새로 짜보겠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