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달아 열린 한미사이언스·한미약품 IR, 누가 더 잘했나?
애널리스트들, 한미약품 내용·짜임새 높이 평가
사흘 사이로 열린 한미약품과 한미사이언스 기업설명회를 두고 애널리스트들과 기관투자자들의 시선이 엇갈렸다.
최근 한미약품그룹에 2건의 기업설명회(IR)가 연달아 열렸다. 지난 8일에는 임종훈 대표가 이끄는 한미사이언스가, 11일에는 박재현 대표가 중심이 된 한미약품이 기업설명회를 진행했다. 두 행사는 모두 임시주주총회를 앞두고, 애널리스트·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여의도 내 호텔에서 열렸다는 점에서는 유사했지만, 콘텐츠 측면에서는 상당한 차이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선 두 행사는 전략부터 달랐다. 한미사이언스는 오전에 IR을 진행하고, 연이어 오후에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오는 28일 있을 임시주주총회를 대비해 주주들과 투자자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듯 보였다. 반면 한미약품은 처음부터 ‘거버넌스 이슈를 제외하고’ 회사의 사업 성과와 비전을 알리기 위한 자리라고 못을 박았고, 기자회견을 따로 열지도 않았다. 경영권 분쟁 이슈에 가려졌던 사업적 성과를 드러내는 동시에 전문경영인과 함께 굴러가는 회사의 시스템을 부각하려는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진행 과정과 내용에 있어서도 차이가 컸다.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는 지난해 기준 1조2478억원 매출을 2028년까지 2조3267억원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와 함께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도 10%에서 13.7%로 키우겠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를 위해 인수합병(M&A)과 연구개발(R&D) 등에 사용할 투자비용 8150억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자금 조달 방식은 어떤 방법인지 명확하게 내놓지 않았다. 기업설명회는 전체 1시간 남짓 진행됐다.
이런 모습은 설명회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자들이 질문하는 투자금 8000억원 재원 조달 계획이나 상속세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해서는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면서 상대편을 향한 비판은 서슴지 않았다. 게다가 계열사 대표를 대거 대동했지만, 그들에게는 발표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임종훈 대표와 김영호 경영지원 상무 두 명이 주로 입을 열었다. 회견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은 계열사 대표도 있다 보니 “저럴 거면 왜 계열사 대표들을 데려왔냐”는 이야기까지 나왔을 정도다.
반면 한미약품은 당장의 표 대결이 아닌, 회사가 사업을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설명회 장소에는 테이블마다 ‘거버넌스 이슈가 아닌 사업 소개를 위한 자리’라는 내용의 안내문이 올려져 있었다. 박재현 대표는 이날 10년 내에 매출 5조, 영업이익 1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고, 각 사업부의 임직원이 발표자로 나서 사업 현황과 세부적인 계획을 밝히며 그 근거들을 채웠다.
특히 애널리스트와 기관 투자자의 큰 호응을 받았던 건 Q&A 시간이었다. 이날 행사에는 20명 이상의 경영진과 실무진이 참석했는데, 질문에 따라 관련 부서 실무진이 직접 설명함으로써 답변의 전문성과 명확성을 높였다. 또한 질문에 한 임원이 답변을 했더라도, 다른 사업부에서 보충하고자 하는 내용이 있다면 적극 나서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조직의 유기적인 협력관계와 결속력을 엿볼 수 있었다는 평가다. 이날 설명회는 4시간 가량 진행됐는데 그 중 Q&A만 1시간 30분가량 진행됐다. 애널리스트와 기관투자자들이 던진 다양하고 예리한 질문에도 답변은 모호하거나 흔들림이 없었다는 반응이다.
두 행사에 모두 참여했다는 한 애널리스트는 “형제 측과 모녀 측 모두 정통성을 주장하려는 의도는 같았지만, 콘텐츠나 형식에 있어서 한미약품 쪽이 더 나았다”며 “한미사이언스 설명회는 억지스러운 느낌이 이었다면, 한미약품은 자신들이 잘하는 것을 확실히 보여줬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한 기관투자자는 “한미사이언스는 8000억원 투자의 필요성을 밝힘으로써 외부에서 백기사를 찾는 걸 정당화하고, 또 백기사를 설득하기 위해 한미의 가치를 부각하는 분위기였다”며 “반면 한미약품은 모녀 측이 경영을 잘하고 있다는 걸 제대로 보여주는 자리였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특히 한미약품은 비만치료제 ‘에페글레나타이드’ 하나만으로도 기업가치가 충분히 반영돼야 하는데 경영권 분쟁으로 눌려 있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아쉬웠다”며 “이번 설명회를 통해 기술이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부분이 반영되면 주가도 많이 오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다른 애널리스트는 “한미약품은 Q&A가 굉장히 재밌었다. 연구 위주이기도 했고, 궁금했던 부분들에 대해 확실한 대답이 나와서 만족스러웠다”며 “반면 한미사이언스는 연구에 대해선 거의 말을 안 했고, M&A나 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는데, 시간도 1시간밖에 안 돼 디테일한 질문과 답변이 오가기엔 너무 제한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JVM 등 계열사 관련해 많이 다뤘지만, 정작 중요한 한미약품 관련한 내용은 없었다”고 했다.
한편 한미약품그룹 3자 연합(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송영숙 회장·임주현 부회장)과 형제(임종윤 이사·임종훈 대표)는 이번 달과 다음 달 경영권을 놓고 임시주총에서 표 대결을 벌인다. 28일 한미사이언스 주총에선 이사회 정원 확대 관련 정관 변경과 신동국 회장·임주현 부회장의 이사 선임 등을 안건으로 놓고 표대결을 펼친다. 한미약품 임시주총에는 박재현 대표 해인 건이 상정돼 있으며 다음 달 19일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