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괴롭다… “그냥 치질인 줄 알았더니”
직장이 항문으로 삐져나오는 직장탈출증… 변실금에 요실금까지 오면?
# 지하철 타고 가다 무척 당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아랫배가 조금 더부룩하다 싶었는데, 이내 바지 쪽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H 씨(여. 57)는 황급히 다음 역에 내려 화장실을 찾았다. 둘째 아이 출산 후부터 간간이 항문 쪽에 불편했지만, 약 먹고 좌욕하면서 버텨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화장실 가거나 기침을 크게 할 땐 항문 쪽에 살덩이 같은 것이 튀어나오고, 출혈도 생겼더랬다.
병원에서의 진단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몇 가지 검사에다 ‘배변조영술’까지 해보더니 조심스레 ‘직장탈출증’이라 했다. "단순한 치질인 줄 알고 그냥 내버려 둬온 것이 결국은 병을 키운 꼴이 됐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부산 웰니스병원 김지헌 원장은 “출산 경험이 있는 중년 여성에 많이 생기는 질환의 하나”라며
“골반저근육이 약화한 상태에서 만성 변비나 잦은 설사가 증상을 촉발하는 원인”이라 했다. “초기에는 증상이 가볍거나 불특정 적이어서 방치하기 쉽지만, 대변이 조금씩 새는 변실금까지 올 정도면 불안감과 우울감 탓에 집 앞 나들이까지 피하게 된다”고도 했다.
곤혹스런 직장탈출증, 변비와 잦은 설사가 핵심 원인
결장(結腸)과 항문을 잇는 직장(直腸)은 대변을 담아놓다가 배출하는 장기. 뒤쪽으론 ‘직장천골근막’에 의해 천골(엉치뼈)에 붙어 있으며, 양쪽은 측방인대에 의해 고정되어 있다. 또 앞쪽으로 남성은 정낭과 전립선, 여성은 질후벽이 자리 잡고 있다.
직장 벽이 항문 밖으로 삐져나오는 ‘직장탈출증’(直腸脫出症, rectal prolapse)은 변을 볼 때 과도하게 힘을 주면서 생긴다. 직장이 제자리에 있도록 지지해주던 인대 등이 헐거워지면서 직장 벽이 중첩될 때도 생긴다.
김지헌 원장은 “대개는 만성 변비, 대장무기력증 때문이지만, 잦은 설사를 유발하는 과민성 대장증후군, 임신과 출산, 마미증후군, 척추 이분증 등 다양한 원인이 있다”고 했다. 심지어 정신질환 때문에 올 수도 있다.
60대 이상, 출산력 있는 여성에서 많이 생긴다. 50세 이상만 따졌을 때, 여성이 남성보다 6:1 정도로 많은 편. 하지만 최근 들어선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도 꽤 발생한다. 주로 40세 이하 젊은층이 많다는 게 또 다른 특징.
문제는 이게 생기면 항문괄약근(또는 항문조임근)이 계속 약해진다는 것. 탈출증 자체로도 이미 불편하지만, 변실금이나 요실금 등 심각한 후유증들을 여럿 남기는 것은 그래서다. 김지헌 원장도 “특히 여성은 직장과 함께 자궁이나 방광이 같이 내려온 예도 있고, 요실금을 동반하는 예도 없지 않다”고 했다. 이를 '골반 장기 탈출증'이라고 따로 부른다.
치칠과 직장탈출은 어떻게 다른가?
언뜻 보기엔 치질(주로 치핵)과 비슷해 보이지만, 이 둘은 크게 다르다. 직장이 중첩돼 있으나 아직 항문 밖으로 튀어나오지는 않은 ‘잠복’ 형태이거나, 직장 본체는 나오지 않고 점막만 삐져나온 ‘직장점막탈출’인 경우엔 더 헷갈리기 마련.
이에 병원에선 자세한 문진(問診)과 함께 비디오 배변조영술, 항문 기능검사, 대장내시경, 에스결장경검사 등 여러 검사를 한다. 치질(치핵, 치열, 치루)이나 직장암, 대장암 등 다른 질환 때문인지도 잘 살펴야 하기 때문.
여기서 ‘비디오 배변조영술’이 꼭 필요한 이유가 있다. 일반적인 검사로는 직장이 탈출한 것만 확인할 수 있을 뿐, 실제로 골반 장기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동태적 상태를 알 수 없다. 이에 배변조영술은 대변과 비슷하게 생긴 ‘조영(照影) 물질’을 항문을 통해 직장에 넣고 특수 실내변기에 앉아 대변을 보게 하면서 방사선 촬영을 한다.
직장탈출증 환자가 대변을 볼 때 나타나는 골반 장기의 해부학적 이상 소견을 확인하는 데 유용하다. 또 수술 전에 촬영하면 수술법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되고, 수술 후 효과 판정에도 도움이 되기에 직장탈출증 치료에선 거의 필수적인 검사다. 웰니스병원 김지헌 원장은 “MRI를 이용해 골반 장기의 움직임을 살펴볼 수도 있는데 정확도 면에서는 우월하나, 비용적인 부담이 있다”고 했다.
직장탈출증 수술은 회음부접근법과 복부접근법 등으로 나눠
수술은 크게 회음부 접근법과 복부 접근법으로 나뉜다. 그중 회음부 접근법은 항문을 거쳐 들어가는 '경항문 직장에스결장절제술', 직장의 주름을 짧게 만드는 '델로름 술식'이 대표적.
나이가 많거나, 수술 위험이 큰 환자는 대개 회음부 접근법을 쓴다. 그러나 재발률이 높다는 단점이 있다. 해외 연구에 따르면 65세 미만 환자를 기준으로 해도 회음부 접근법의 재발률은 약 16.3% 정도.
반면, 복부 접근법은 '직장고정술'이 대표적. 기저질환, 변비, 변실금이 있는지부터 몸 상태나 직장탈출증의 여러 증상 등을 고려해 결정한다.
특히 복강경으로 배를 뚫고 들어가는 복부 접근법은 늘어진 직장을 당긴 후 인공막으로 감싸 다른 주변 장기와 함께 제자리에 있도록 돕는 수술. 골반 내 좁고 제한된 공간에서 진행해야 하는 정교한 수술이지만, 근본적인 치료법에 가깝기에 재발 위험이 낮다. 해외에선 복부 접근법 재발률을 6.1%로 보고 있다.
웰니스병원 김지헌 원장은 “탈출한 직장을 잘라내기는 비교적 쉽지만, 수술 후에 배변 조절 기능을 제대로 잘 살려낼 수 있느냐가 오히려 더 큰 숙제”라 했다. 자칫하면 변비의 만성화 등 직장 기능이 더 나빠질 가능성도 있어서다.
특히 복강경 직장 고정술의 경우 “직장을 끌어올려 얼마나 정확하게 다시 고정하느냐가 이 수술의 핵심”이라며 “여러 번 재발한 환자나 고령 환자라도 인공막으로 고정해주는 수술이 재발 방지엔 더 유리하다”고 했다.
수술하지 않고도 나을 수 있을까?
그래도 수술에 대한 두려움이 없을 수 없다. 수술하지 않고 나을 방법이 있다면 어떨까? 그는 “일단, 직장탈출증이 생기면 골반 내에서 직장을 고정, 지지하는 조직이 약해지고 늘어난 상태이므로 배변 습관을 교정한다, 약을 먹는다 하는 비(非)수술적 보존치료로는 사실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직장의 탈출이 반복되면 항문괄약근이 갈수록 약해지는 데다 일단 변실금이 왔을 정도면 수술을 해도 항문 기능이 잘 회복되지 않기 때문. 결국, 수술 후에도 좋은 항문 기능을 계속 유지하려면 가능한 한 증상 초기, 즉 변실금까지 가지 않은 단계에서 수술하는 것이 더 유리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