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 대가 김동욱 교수 "CML 표적항암제 정교한 처방 중요한 이유"

[김동욱 강남을지대병원 혈액암센터 교수 인터뷰]

최근 코메디닷컴은 만성골수성백혈병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김동욱 강남을지대학교병원 혈액내과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골수와 혈액에 발생하는 악성 종양 만성골수성백혈병(CML)은 '개별맞춤치료'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환자마다 특정 유전자 발현율에 차이가 크고, 같은 약이라도 환자에 따라 치료 효과는 물론 부작용도 다르다. 개개인별로 치료법을 달리해야 한다는 전문가 조언이 나오는 이유기도 하다.

더욱이 2001년 세계 최초의 백혈병 표적항암제 '글리벡(성분명 이매티닙)'의 등장을 시작으로 현재 4세대 항암제까지 처방권에 진입했다. 말 그대로 쓸 수 있는 '탄환'도 더 많아진 셈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환자 연령, 성별, 동반질환 등을 고려해 약물과 용량을 선택하는 정교한 처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오랜 기간 치료를 진행해야 하는 만큼 이들 표적항암제에서 야기되는 뇌, 심장 혈관 부작용 등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성골수성백혈병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김동욱 강남을지대학교병원 혈액내과 교수(사진)는 최근 코메디닷컴과 만난 자리에서 "효과가 좋더라도 부작용이 심하면 이것 역시 치료 실패로 볼 수 있다"며 "국제 치료지침에서도 모든 환자에 특정 약을 추천하지 않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현재 김 교수는 전 세계 80% 이상의 병원과 의료진이 백혈병 진료와 연구에 활용하는 유럽백혈병네트워크(이하 ELN, European Leukemia Net) 국제표준지침 제정위원회 패널위원으로 활동하며, 가이드라인 개정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골수이식이 유일한 치료법으로 여겨졌던 과거 CML 치료 패러다임은 2000년 들어 큰 변화의 시기를 맞았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표적항암제로 평가되는 글리벡이 개발되기 전에 연구자들은 급성 백혈병이나 다발골수종, 림프종 등과 같은 혈액암에 자가조혈모세포이식을 시도했다. 자가조혈모세포이식이란, 환자의 골수를 추출해 냉동 보관했다가, 다시 환자에게 제공해 치료하는 방법이다. 특히, CML 환자들은 평균 발병 연령이 50세~60세 사이로 동종이식이나 비혈연이식을 하게 되면 면역 후유증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가조혈모세포이식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글리벡이 처음으로 사용됐다. 이 약물이 만성골수성백혈병 세포를 매우 선택적으로 공격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는데, 이후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도 뛰어난 효과를 보였다. 글리벡은 2001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최초 사용 승인을 받으며 새로운 치료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우리나라에서 글리벡 임상 개발과 치료제의 무상 공급을 이끈 게 김 교수였다. 2001년 5월 FDA 승인 이후, 한국에서도 글리벡 임상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동정적사용승인계획(EAP) 프로그램을 통해 약 300명의 환자들에게 글리벡이 무료로 제공됐다.

김 교수는 "당시 유럽백혈병네트워크(ELN)에서 발표한 전 세계 표준지침에 따라, 골수이식과 글리벡이 동등한 1차 요법으로 인정되면서 치료 패러다임이 크게 바뀌었다"며 "이후 골수이식은 점차 3, 4차 요법으로 밀려났고, 글리벡과 같은 표적항암제가 주류로 자리잡게 됐다"고 설명했다. ELN 국제표준지침은 글리벡이 등장하고 5년 뒤인 2006년에 처음으로 만들어졌으며, 김 교수는 2011년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패널위원에 선정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환자에서 돌연변이 내성이 발생해 글리벡의 약효가 떨어진다는 이슈가 제기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2세대 약물 개발이 시작된 배경이다.

효과 셀수록 부작용 크다?...같은 약도 부작용 달라 "용량과 치료 강도 고민해야"

현재 널리 처방되는 2세대 약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글리벡이 결합하는 'ATP(아데노신3인산)' 부위를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약물로, 노바티스 '타시그나(닐로티닙)'와 국산약인 '슈펙트(라도티닙)' 등이 포함된다. 두 번째는 '스프라이셀(다사티닙)'과 '보술리프(보수티닙)' 등과 같이 ATP 결합 부위뿐만 아니라, 암세포 성장과 대사에 관여하는 'SRC' 티로신 키나아제(인산화효소)도 동시에 억제하는 약물들이다.

여기서 보술리프는 15년 전에 임상시험을 시작한 2세대 치료제로, 뛰어난 약효와 함께 같은 세대 약물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부작용이 적어 높은 안전성이 강점으로 평가된다.

김 교수는 "특히, 스프라이셀은 글리벡보다 325배 더 강력한 약물로 알려졌지만 강력한 효과를 가질수록 부작용이 크다는 양면성을 가진다"며 "폐에 물이 차는 부작용이 3명 중 1명 꼴로 생기고 5년 이내 폐동맥고혈압(PAH)이 5~10%로 생기는데, 이럴 경우엔 더 이상 약을 사용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보술리프는 스프라이셀과 같은 계열의 약물로, 주로 SRC 키나아제 억제를 통해 효과를 발휘한다"며 "세포 신호전달에 관여하는 LYN(린) 키나아제를 억제하는 효과가 낮아, 폐에 물이 차는 부작용이 거의 없는 것이 특징"이라고 평가했다.

올해 1월부터는 이러한 혜택을 인정받아 건강보험 급여 목록에 등재되며 삼성서울병원 및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등 주요 상급종합병원과 전국 21개 의료기관에서 본격적인 처방이 이뤄지고 있다. 김 교수는 2세대 약물의 안전성과 관련해, 심장 혈관 부작용 문제를 고려한 약물 사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CML 환자들은 대체로 고령이며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하기에 혈관 부작용이 치명적일 수 있다"며 "3세대 약물인 '포나티닙'의 경우 고혈압과 같은 심각한 부작용이 있으며, 2세대 약물인 스프라이셀, 타시그나, 슈펙트 등은 콜레스테롤을 올려 동맥경화를 유발하거나, 혈당 상승과 간 기능 저하를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보술리프는 이러한 부작용이 상대적으로 적기에 혈관질환, 고혈압, 당뇨가 있는 환자들에게 첫 번째 선택지로 고려될 수 있다"며 "고령 환자들에게는 1세대 글리벡이 더 나을 수 있지만, 보술리프는 혈관 부작용 측면에서 타시그나나 스프라이셀에 비해서는 훨씬 안전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보술리프는 2세대 약물 4가지 가운데 효과는 두 번째로 강력한 편에 속한다. 아울러 같은 세대 약물들의 공통된 장기 부작용인 혈관 관련 부작용, 특히 동맥경화로 인한 심장혈관, 경동맥, 뇌혈관 동맥 등의 막힘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평가다.

치료제들의 임상적 근거가 쌓이면서 유럽백혈병네트워크(ELN) 국제표준지침도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패널로 참여한 김 교수에 의하면, 4차 개정판에는 환자의 특성을 고려해 약물 사용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다양하게 논의됐다.

김 교수는 "일단 CML 치료에서 어떤 약제를 우선 사용할 것인가에 논의가 있었지만, 특정 순서를 정하지 않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며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노인의 대표연령을 70세로 보고 있으나, 이번 개정에서는 연령이 약물 선택에 있어서 절대적인 변수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 의견이 모아졌다"고 말했다.

안전성과 관련해선 "환자의 생명 연한에 따라 치료 목표가 달라져야 한다"는 내용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20대 환자가 CML에 걸렸다면 60년 이상 약을 복용해야 하지만, 70대 환자는 10년 정도만 복용해도 된다는 차이가 있기에 용량과 치료 강도를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최근 몇 년 간 전 세계적으로 허가를 받거나 임상시험을 진행한 약물 용량이 과도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며 "임상현장에서는 용량을 줄이려는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는데, 보술리프와 같은 약물은 효과가 강력하기 때문에 초기 진단 환자에게 적절한 용량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며, 나이나 유전체 등 여러 요인을 고려한 더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사진 : 지난해 9월 의정부을지대병원에서 열린 제12회 CML 데이 행사 뒤 김동욱 교수(의정부을지대병원 혈액암센터)와 루산우회 회원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코메디닷컴 황태원 피디]
한편, 김 교수는 올해로 13회를 맞는 ‘만성골수성백혈병의 날(CML Day)’ 행사 준비에도 여념이 없다. 2011년부터 '루 산우회'(의정부·강남·대전을지대병원 CML 환우회)와 함께 진행해온 기념 행사는 학계 최신 임상 결과나 연구 동향을 소개하고 표적항암제의 올바른 복용법, 부작용 대처법 등에 대한 교육이 이어진다. 올해 행사는 오는 28일 대전을지대병원에서 열린다.

김 교수는 "최근 변경된 유럽백혈병네트워크 가이드라인에 대해 환자들에게 설명할 계획"이라며 "환자들에게 얼마나 빨리 약물을 줄일 수 있는지, 그리고 어느 시점에 약물을 중단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이 과정은 환자마다 다르기 때문에 모든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해석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병원에서 진료할 때 환자들을 짧은 시간 볼 수 있어 환자의 모든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며 "최적의 진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환자마다 맞춤형 도구가 필요한데, 최근 유럽과 미국에서는 ‘Patient Reported Outcome(환자 보고 결과)’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환자 스스로가 기록한 부작용, 삶의 질, 치료 경험 등을 반영하는 시스템으로, 임상시험 결과만으로는 충분히 반영될 수 없는 실제 진료현장에서의 경험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원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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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la*** 2024-09-16 15:05:08

      '김동욱 교수 인터뷰'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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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la*** 2024-09-16 15: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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