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기반 의료, 누군가 흔들어도 정책분야까지 확대해야”

[수요라운지] 취임 1년 이재태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

이재태 NECA 원장은 "신의료기술 평가는 기업과 의료계, 환자를 함께 돕는 제도"라고 강조했다.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kormedi.com]
“보건의료연구원이 15년 동안 발전시킨 ‘근거 기반 의료 연구’는 환자, 의료계, 산업계 모두에게 도움이 됩니다. 이제 ‘근거 기반 연구’가 보건의료 정책 수립과 실행에도 적용되기를 바랍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 이재태 원장(66)은 취임 1년을 맞아 서울 광진구 중곡동 보건복지행정타운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의료산업 선진화를 위해선 ‘근거 기반 연구’가 필수적이며 이는 관료적 규제가 아니라 산업발전을 돕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연구원은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의 기관 신설 방침에 따라 보건의료기술진흥법이 개정되며 2009년 개원했어요. 선진화위원회가 결정한 정책이 연구중심병원 지원, 첨단의료복합단지 설립 등입니다. 네카(NECA)의 풀네임이 ‘National Evidence-based healthcare Collaborating Agency’인데 번역하면 ‘국가 근거 기반 의료 협력기관’입니다. 의료계나 산업계를 ‘규제’하는 기관이 아니라 과학적 선진 의료를 위해 ‘협력’하는 기관이란 뜻입니다.”

이 원장은 의료산업선진화정책에 따라 설립된 기관 중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이사장에 이어 네카 원장을 맡은 ‘2관왕’이다. 그는 경북대 의대를 졸업한 내과, 핵의학과 전문의로 모교의 핵의학과 교수, 경북대병원 기획조정실장·진료처장, 대한핵의학회장, 대한갑상선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인문학적 깊이를 아울러 갖춘 ‘의사 수필가’로도 알려져 있으며, 종(鐘) 수집가로 세계 각국의 종 1만여 점을 모았고 종과 관련한 책을 펴냈으며 전시회도 열었다.

"신의료기술 신청 62%가 통과... 장벽 높지 않다"

-네카가 근거 기반 의료를 위한 협력기관이라고 했지만, 아직 의료계나 산업계에서는 기술 발전 속도를 감속하는 규제기관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고, 일부는 무비판적으로 동조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과학적 통계는 그렇지 않다고 입증한다. 첫째, 일부 개발자와 산업계에서 많은 의료기기들이 네카의 ‘신의료기술 평가’ 장벽 탓에 환자에게 적용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지난해 의료기기 허가 7065건 가운데 2%가 채 안되는 135건만 신의료기술 평가 신청을 했다. 나머지는 이와 상관없이 기존 제품과 비슷하거나 일부 성능이 개선된 제품으로 바로 시판할 수 있다는 뜻이다. 둘째, 신의료기술 평가의 장벽이 지나치게 높다는 주장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14년의 데이터를 분석했더니 신의료기술 신청의 62%가 통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탈락한 38%의 상당수도 자진 취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세계 7개국의 의료기술 평가제도를 비교 분석했더니 우리나라의 규제 정도가 가장 약한 편이었다. 우리가 운영하는 산업체 친화적인 길라잡이 프로그램은 개발도상국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었다. 물론, 평가 기간의 단축과 평과 과정의 개방성 등에 관한 지적은 경청하여 개선하고 있다. ”

-그렇다면 왜 이런 부정적 목소리가 크다고 보는가?

“신의료기술 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기업 중 일부의 반발이 큰 듯하다. 이는 심사평가의 순기능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안전, 유효성, 잠재적 가치 등의 종합평가를 통해 안전하고 유효한 기술로 평가를 받으면 상품 또는 의료행위가 건강보험체계에 포함돼 판로가 보장될 가능성이 있다. 또 현장에서 신뢰도에 대한 평판이 상승하기 마련이고 미국 식품의약국(FDA)을 비롯한 해외 기관의 인허가 및 수출에도 도움이 된다. 반면 연구단계 기술이라는 평가를 받은 기업은 섭섭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기업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려고 하는데 극소수 기업은 다른 방법을 쓴다. 일부는 상업적 언론을 이용해서 심사의 부당성을 알리기도 하고, 맘카페를 비롯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동원해 여론전을 펼치기도 한다. 어떤 기업은 정치권을 이용하기도 한다. 최근엔 한 국회의원이 심의위원의 구성과 자질이 적절한지 검증하겠다며 ‘심사위원 명단을 달라’고 요구한 적도 있다. 심의위원이 노출되면 심의 전 사전 접촉 시도에 시달리고, 신청자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위원을 인신공격하는 경우를 경험했기 때문에 완전 개방을 하지 않고 있다. 국회의원실 담당자가 비밀 보장을 약속하며 회의록을 달라고 해서 제출했다가 한 방송 뉴스 화면에 회의록이 유출된 적도 있다. 이런 행위는 근거 기반 의료를 위해 소액의 수고비만 받고 귀한 시간을 내준 각계의 권위자들인 심사위원들을 간접적으로 압박하는 행위이면서 그들의 공익적 공헌 활동을 폄훼하고 공정한 심의에 지장을 주는 일이어서 몹시 아쉬웠다.”

-언론인으로서 부끄럽다. 정치도 큰 문제인 듯하다. 하지만 일부 첨단 산업 영역은 심사위원보다 평가를 받는 연구자나 기업이 훨씬 전문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평가가 속도가 생명인 산업전쟁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데….

“이런 주장을 반영해서 2022년 11월부터 ‘혁신의료기술 신속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디지털치료제, 인공지능(AI) 정밀의료, 3D 프린팅, 로봇이식형 장치, 첨단재생의료, 가상·증강 현실 등 분야에선 인증 절차를 간소화하고 신속하게 하고 있으며 현재 29건이 혁신의료기술로 선정됐다. 그러나 빨리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2021년 미국 공공의료보험국(CMS·Center for Medicare and Medicaid Services)은 의료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혁신의료기술 분야 신속 도입제(MCIT. Medicare Coverage of Innovative Technology Plan)'를 시행했다. 그러나 폐 밸브 2종을 이식받은 환자 25%에게서 폐기종에 의한 기흉이 발생했고 기존 치료법에는 아예 발생하지 않았던 사망 사례까지 보고되자 이를 폐기하고 안전을 강화한 새 제도(TCET.Transitional Coverage for Emerging Technologies)를 시행했다. 안전과 유효성이 담보된 혁신기술이어야 시장에서도 유효하다는, 타산지석의 사례라고 본다. 우리나라에서도 최대한 안전성이 확보된 혁신의료 기술에 대한 ‘선시장 진입 후평가 제도’를 마련하고 있어 2025년부터는 산업계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하면서 안전성도 신뢰할 수 있는 적정하고 합리적인 새 정책이 도입될 것이다.”

"페이슨은 해외에서도 부러워하는 의료 인프라 연구"

-네카가 신의료기술만 평가하는 기관은 아닐 것 같다. 어떤 일들을 하고 있나?

“그렇다. 첫째, 보건의료 근거 연구사업에서 보건의료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위해 의료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의료기술의 안전성, 유효성, 경제성 등을 연구하고 있다. 근거가 약한 의료가 의료시장을 지배하면 정상의료에 들어갈 인적 물적 자원이 줄어들기 마련이다. 필수의료 정착을 방해하는 것도 이와 연관돼 있다. 의료자원의 건전한 배분을 위해 필요한 작업이다. 둘째, 의료기술 재평가 연구사업은 임상 현장에서 사용되는 의료기술의 안전성, 효과성, 경제성, 사회적 가치 등을 평가하고 있다. 셋째, 환자중심 의료기술 최적화 사업, 즉 페이슨(PACEN. Patient-Centered Clinical Research Coordinating Center) 사업을 통해 의료 현장에서 환자진료를 위해 검증이 필요한 주제에 대해 답을 찾는 공익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페이슨 사업은 의료계의 가장 뜨거운 주제에 대해 정부가 선택적 지원을 해서 좋은 연구결과를 거두고 있는, 그야말로 모범이 될만한 연구다.  다만 이런 연구들을 지원하는 업무에 대해 체계적 보완은 필요한 것 같다. 네카가 보건의료기술진흥법에 법적 근거를 두고 있지만 대부분의 업무는 보건의료정책관 아래에 있어서 효율을 고려한 법적, 제도적 교통정리도 필요하다.”

-페이슨은 환자에게 직접 도움이 될 듯한데, 한시적 연구사업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페이슨 사업은 눈에 안보이지만 진료 현장에서 환자에게 직접 도움이 되는 연구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국가가 해야 하는 대표적 의료 인프라 연구다. 해외에서도 부러워하는 연구이지만 현재로선 2026년 말에 사업이 끝나도록 돼 있다. 급변하는 의료환경 때문에 필요한 연구가 계속 발생할 것이고, 기존 연구의 후속 연구도 필요하므로 계속 진행해야 마땅하다. 만약 사업단이 해체되면 공들여 구축한 연구 인프라와 축적된 방대한 임상자료도 같이 사라질 수 있어 이를 지키고 살릴 방법을 전력을 다해 모색하고 있다.”

-옛날에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3, 5년마다 강산이 변한다니 네카가 설립한지 3~5번 강산이 변하는 셈이다. 지금 시점이면 연구원의 새 역할에 대한 논의도 나올 만한데, 앞서 언급한 보건의료 정책 영역이 그것인가?

“15년 동안 허대석 초대 원장부터 한광협 전 원장까지 역대 원장과 임직원들이 ‘근거 기반 의료’의 확산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잘 수행했다. 그 결과 복지부의 기관 경영평가에서 6년 연속 A등급을 받았다. 이제는 ‘근거 기반 연구 노하우’를 보건의료 정책에 적용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가 커지고 있다. 현재는 정부가 필요에 따라 용역과제로 정책을 연구하고 있어 한계가 있다. 의료자원 배분 같은 중요한 과제는 전문적이고 연속적인 연구가 절실하고, 이를 네카가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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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ik*** 2024-08-08 11:25:03

      아주 좋은 말씀 입니다.정부정책에 꼭 반영되기를 희망 합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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